제가 목사지만 목회를 하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이 뭐냐고 하면, 저는 지체없이 기도라고 대답합니다. 기도는 설교보다도 제 삶의 에너지를 더 많이 요구하는 사역입니다. 그래서 저도 꾀를 내고 싶고 게을러지고 싶은 제 1순위가 기도입니다. 아마 많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매우 힘든 일일 것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왜 기도가 이렇게 힘든 일이 되었을까요?
여러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기도하면서 갖는 최우선적인 관심이 [기도응답]이기 때문에, 그래서 기도가 이렇게 힘든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기도응답 – 내가 기도한 게 이루어지느냐 아니냐, 사실 기도응답에 관심이 없는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기 기도가 응답되었는지에 큰 관심을 갖습니다.
기도가 응답되면 물론 기쁘고 기도한 보람도 있고 하겠지만,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면, 또는 전혀 원하지 않는 대로 일이 진행되기라도 하면, 누구라도 상심하게 되고 기도할 의욕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이런 질문을 하겠지요?
도대체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도 아니면서 왜 기도하라고 하나?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다 이루어진다면, 도대체 내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 등등.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가 뭘까요? 무슨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실까요?
기도에 응답해주실 때도 있고 때로는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거나 내가 원하는 거하고는 전혀 반대로 응답하시기도 하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내게서 원하시는 것은, 기도를 통해 내가 조금씩 조금씩 바뀌는 것입니다. 이게 기도하는 이유에요!
아이가 부모를 졸라대면 어떤 때는 한번만 이야기해도 부모가 들어주고, 어떤 때는 조금 끈기를 갖고 이야기해야 들어주고, 또 어떤 때는 아무리 졸라도 부모님이 꿈쩍도 안하시고 때로는 회초리가 날아올 때도 있고 – 이런 과정을 거쳐서 아이는 부모가 어떤 분인지를 깨달아가고, 조금씩 조금씩 부모님의 바램을 따라 성장해 갑니다.
그런데 아이가 부모의 마음을 알고 부모님가 원하는 대로 성장해가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을 부모가 해주었네, 안 해주었네 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면 – 부모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는 부모를 원망하면서 점점 더 부모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모든 것을 자기 힘대로 하겠다고 하면서 뻐팅기기라도 한다면…
하나님은 내 기도에는 무관심하시다고, 하나님은 내 기도에는 응답 안 하신다고 하면서 기도는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는 성도와 같겠지요? 어떤 기도가 응답될까요?
부모님의 뜻,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하는 것은 물어보나마나 응답될것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그럽니다. 공부하는데 필요한 거라면 뭐든지 다 이야기하라고! 이미 응답받은 거지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이미 주어졌음을 믿고 구하라고 성경도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무엇이든지)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한일서 5:14)
불교 용어이기는 하지만,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있지요? 부부가 서로 잘 통하면 눈빛만 보아도 서로를 알 수 있듯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서로 마음이 통하는 그런 정도로 우리가 성숙해지면,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마치 거울을 들여다 보는 것과 같습니다. 아침에 나오면서 거울을 보며 뭔가 잘못된 부분을 고치듯이, 기도를 통해 나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 나는 나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갑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너무 닮아서, (내) 얼굴이 (예수님의) 얼굴을 마주하고 보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라고 (고린도전서 13:12)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성숙해지고 자라나면, 교리적으로 말해서 성화의 단계를 거쳐서 영화롭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기도가 힘든 까닭은 기도 속에서 내가 얼마나 꾀가 많고 잔머리를 굴리는지를 알아가며, 또한 기도가 나를 바꿔가기 때문입니다. 나의 악함이 거울을 보듯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나의 악함을 내가 직면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기도는 힘들고 어렵습니다.
기도가 응답되느냐 아니냐 하는 근시안적인 안경을 벗어버리고, 저 멀리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켜서 다듬어 가시고자 하는 [나의 그 아름다운 모습, 예수 닮은 그 모습]을 꿈꾸며 오늘도 묵묵히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성도님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가 함께 하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