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인 이준석 당대표가 대선을 78일 앞둔 21일 선대위에서 전격 사퇴하기로 하면서 당수가 선거에서 손을 떼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이 대표가 이 같이 사퇴를 걸고 배수진을 친 배경에는 표면상으로는 선대위 공보단장인 조수진 최고위원과의 갈등이 자리잡고 있지만, 매머드급 선대위 체제와 여전한 '윤핵관(윤석열 후보 측 핵심 관계자)'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다는 관측이다. 갈등을 빚었던 이 대표와 조 최고위원이 선대위 직책을 사퇴했지만 이들의 대립의 단초를 제공했던 윤핵관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어 향후 선대위의 잠재적 뇌관이 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선대위 내에서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겠다"며 조 최고위원이 어떤 형태로 사과하든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서 "어떤 미련도 없다","복귀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조 최고위원을 향해선 거침없이 직격탄을 날렸다. "후보 말만 듣겠다면 후보 비서실에 가서 일을 하라", "건강 이상이 있었다는 건 알지만, 선대위는 참석하고 최고위는 참석하지 않는 선택적 행동조차 해석하기에 따라 잘못된 행동" 등의 날 선 발언을 쏟아냈다.
이 대표와 조 최고위원의 갈등은 지난 20일 선대위 비공개 회의에서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후보측 핵심 관계자)'을 인용한 일부 언론보도에 대한 대응을 놓고 서로 다른 시각차를 드러낸 것이 발단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가 윤 후보이 아내 김건희씨 관련 의혹에 대한 선대위 차원의 대응이 혼선을 빚자, 이 문제를 당일 선대위 회의에서 다루자는 제안을 했지만 선대위 안에서 사실상 '묵살'당한 것도 이 대표가 사퇴를 결심하는데 일정부분 영향을 끼쳤다는 후문이다.
이 대표가 "어제 선대위에서 제가 선대위에 책임 있는 관계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최근 중차대한 사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한 것은 거부됐다. 심지어 조 단장은 윤 후보 이름을 거론하며 굉장히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며 "상임선대위원장 지시를 듣지 않겠다는 공개 발언을 하고, (조 단장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선대위는 기능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언급한 것도 상임선대위원장으로서의 권위가 훼손된 것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대목이다.
이 대표는 지난번 당무 태업과 마찬가지로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윤핵관'을 거론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울산에서의 회동이 누군가에게는 그래도 대의명분을 생각해서 할 역할을 해야겠다는 책임감을 안겨줬다면, 일군의 무리에게는 한번 얼렁뚱땅 마무리 했으니 앞으로는 자신들이 마음대로 하고 다녀도 부담을 느껴서 지적하지 못할 것이라는 잘못된 자신감을 심어준 모양"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때다 싶어 솟아나와 양비론으로 한마디 던지는 윤핵관을 보면 어쩌면 이런 모습이 선거기간 내내 반복될 것이라는 비통한 생각이 들었다"며 선대위직 사퇴 이유를 밝혔다. 이 대표는 "정권 교체를 위한 마음은 있으나,. 일부 (윤 후보의) 핵심 관계자를 자처하는 사람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분들이 당내에 많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사퇴 후 이날 저녁 SNS에도 "핵관들이 그렇게 원하던 대로 이준석이 선거에서 손을 떼었다. 카드뉴스 자유롭게 만드시라"며 "복어를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고 누누히 이야기해도 그냥 복어를 믹서기에 갈아버린 상황이 되었다"고 불만이 담긴 글을 올렸다.
일각에선 이 대표가 지난번 '울산합의'와 마찬가지로 극적 봉합이 이뤄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사안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본인이 불만이 있을 때마다 갈등을 노출하고 선대위 직까지 던지면서 긴장관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자체가 무책임한 처사 아니냐는 불만섞인 기류도 당 내에 감돌고 있다.
이 대표가 당대표로 취임한 지 6개월도 안 된 시점에 태업, 사퇴로 매번 사안이 있을 때마다 '도발 수위'를 점점 끌어올려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는 것을 두고 벼랑 끝 전술과 유사하다는 의견도 있다. 윤석열 대선 후보 중심으로 당내 권력구도가 급속도로 재편되는 시점에 이 대표가 배수진을 쳐 존재감을 높이는 한편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장악력을 키우려는 고도의 전략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 대표가 상임선대위원장과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 직책을 던지면서도 당대표로서 당무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중을 내비치자, 결국 공천권을 놓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이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당대표로서 해야 할 당무는 성실하게 하겠다"며 당직 사퇴에는 선을 그었다.
이 대표의 초강수에 결국 조수진 최고위원이 당일 저녁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조 최고위원은 "저는 이 시간을 끝으로 중앙선대위 부위원장과 공보단장을 내려놓는다"며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과 당원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이·조 갈등'은 하루 만에 이 대표의 개운치 않은 판정승으로 끝났지만 선대위 내부 갈등이 완전히 봉합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일단 국민의힘은 대선을 70여일 앞두고 중앙선대위의 핵심 포스트인 상임선대위원장과 공보단장이 한동안 공석으로 남을 수도 있는 위기에 빠졌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도 이 대표가 선대위 내 모든 직책을 내려놓은 데에 "복귀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일단 윤 후보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에게 이 대표와 조 최고위원 사이에서 불거진 갈등 문제를 일임하기로 했다. 이날 낮에만 해도 공보단장직 사퇴에 신중한 입장이었던 조 최고위원이 저녁에 돌연 사퇴로 입장이 급변한 것도 김 총괄선대위원장이 압박에 나섰을 가능성이 낮지 않다. 하지만 당 주변에선 선대위 규모가 매머드급으로 커지면서 김 위원장의 장악력도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 한동안 국민의힘이 선대위를 둘러싼 극심한 진통을 연말까지 계속 끌고 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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