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누가복음 9:51)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요한복음10:17)
한국의 어떤 시골 마을에 조그만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 옆에는 무척이나 단란한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집은 허술했지만 가족들이 화목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의 가장이 그만 폐결핵3기라는 판명을 받았습니다. 계속해서 피를 쏟는 것에 지친 나머지, 환자는 신경질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아내가 아무리 잘 해주려고 애써도 남편은 화만 내고 신경질만 부렸습니다. 이를 견디지 못한 아내는 남편과 한바탕 크게 싸우고, 급기야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습니다. 이 환자는 아무도 없이 혼자서 고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병마때문에도 슬프고 괴로웠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이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는 현실이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교회의 여전도사님이 비록 그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매일 같이 그 집에 들러서 음식도 갖다주고 어지러운 방을 치워주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이 환자의 뒤치닥거리를 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환자는 전도사님께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불쌍한 사람 돕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소? 이런 구제는 사치입니다. 당신이 예수 믿는답시고 선한 일 하려는 모양인데, 언제까지 갈는지 어디 한 번 두고 봅시다."라며 비꼬았습니다. 얼마나 비난을 하는지 옆에서 보는 사람들조차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나오는 환자에게서 험한 말을 들으면서도 전도사님은 묵묵히 이 사람을 돌보아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어김없이 방문하여 방을 치우고 있는데, 그 사람이 전도사님께 무언가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침을 하고 각혈을 해서 엉망이 되어버린 이부자리 밑에 감추었던 사과 한 개였습니다.
"늘 저희 집에 오시지만 드릴 것이 없었는데 좀 시들시들하더라도 이것 한 번 잡수어 보십시오. 그나마 전도사님께서 제게 주셨던 것이지만요." 전도사님은 "고맙습니다"라고 공손하게 인사한 후 씻지도 않은 채 앉은 자리에서 그 사과를 맛있게 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 사람이 갑자기 전도사님의 손을 잡으면서 목놓아 울었습니다.
"나는 나쁜 놈입니다.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시는 분을 괴롭혔으니 나는 정말 천하에 없는 못된 놈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까? 그렇다면 저도 예수 믿겠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펑펑 울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후에 그의 온 몸이 뜨거워지면서 병균 이 다 없어지고, 그의 병이 나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고단하고 피곤한 이유가 있다면, 현실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 가슴을 뛰게 하는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결심하신 주님의 마음(눅9:51, 요10:17)을 우리가 깊이 묵상할 때, 그 사랑의 생명력이 우리의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들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