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음반사 휫셔뮤직 유지연(61·영어명 데이빗) 대표를 처음 만났다. 지난 1일 LA에 막 도착했다는 그의 모습은,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회색 중절모를 멋스럽게 눌러 쓴 영락없는 중년 신사다. 특징이라면 사물에 대한 통찰력이 예사롭지 않다고 할까. 그리고 가슴 언저리에 있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 모양의 작은 배지가 유난히 인상적이다.
그는 한때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7,80년대 한국 최고의 어쿠스틱 기타리스트로 인정받으며 정태춘과 박은옥, 신형원, 김범룡, 이선희, 임지훈, 윤형주, 김창완, 김종찬, 길은정 등 포크&팝 장르 가수들의 음반에 프로듀서 및 편곡과 연주로 참여했던, 실력있는 뮤지션이다. 싱어송 라이터로서 1980년대 초반 인기를 모은 '사랑과 평화'라는 곡을 제작해 직접 부르기도.
이렇게 '잘 나가는' 아티스트였던 그가 돌연 하나님 일을 하는 기독사업가로 전향하게 된 건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난 그는, 일신의 부귀영화에 안주하기보다 사람들에게 음악이라는 자원을 제공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고 싶다는 비전을 지니게 됐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그래서 89년 '두란노 경배와 찬양'의 초대 뮤직디렉터로 사역하며 '전하세 예수' 1-4집 음반 편곡과 연주를 담당했다. 이때 '예수전도단'과 '다윗과 요나단' 등 1백여 앨범이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그의 이러한 헌신이 밑거름이 돼 그간 복음성가로 일관돼오던 한국 교회음악의 패턴과 흐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의 족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1994년 크리스천 음반사인 휫셔뮤직을 전격 설립해 전 세계 워십뮤직을 한국에 알리고 배급하는 일에 매진했다. 힐송과 빈야드, 인테그리티, 킹스웨이, 지저스 컬쳐, 새들백처치, 벧엘처치, 디스커버리 하우스 등 내로라하는 외국 메이저 레이블을 처음 한국에 소개한 이가 유 대표다. 한국교회에서 주로 불리우는 곡들 가운데 7할이 외국 번안곡인데, 이 중 9할이 휫셔뮤직을 통해 보급됐으니 말 다했다.
뮤지션으로서뿐 아니라, 한 회사를 경영하는 CEO로서도 성공한 그에게도 시련은 분명 있었다. 워낙에 기독음반 시장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터라 17년간 음반회사 대표 자리를 사수해 온 것만 해도 어찌보면 용하다. 하지만 위기 때마다 다른 그 무엇이 아닌, 오로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로 뚝심있게 버텨내는 그만의 근성이 한몫 했지 않았을까. 아무리 환경이 어렵다 해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성공하게 돼 있다는 것이 그의 비지니스 철학이다. 그래서 회사 이름도 기독교적인 색채가 물씬 풍기는 '휫셔(Fisher)'로 정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Fisher)가 되게 하리라'(마4:19)라는 구절에서 땄다.
LA를 방문한 건 기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년 전부터 미국의 다양한 기독 컨텐츠들을 기획, 제작하는 일은 물론 배급, 유통하는 사업을 위해 자주 왕래해 왔다. 그런 유 대표의 눈에 비친 현재 LA 기독문화의 현주소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지도. 최근 오랜만에 기타연주와 말씀노래를 담은 앨범 <오 할렐루야>를 발표한 그는 미주 한인교회내 기독문화의 활성화를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곳 LA에도 커피 마시면서 젊은 기독 청년들이 음악을 들으며 마음껏 예배 드릴 수 있는, 말하자면 '크리스천 멀티카페' 개념의 문화공간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높은뜻푸른교회 예배담당 장로인 그는 올 하반기 가요앨범을 발표할 계획이란다. 또 2013년 들어 한국의 모던워십과 연주음악 등 K-CCM을 개발해 아시아 10개국의 기독음악 시장과 현지 교회들을 타킷으로 이미 런칭을 시작했다. 한류열풍과 K-POP의 흐름에 발 맞춰 K-CCM의 한류 프레임을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꼭 휫셔뮤직의 아티스트가 아니더라도, 크리스천 뮤직에 열정과 비전을 품은 역량있는 음악인들을 하나둘씩 발굴해 나감으로 K-CCM의 세계화 비전을 현실화(化)해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