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성 목사

나무를 화분에 심어서 줄기나 가지를 보기 좋게 가꾸는 것을 말합니다. 예전에 분재된 나무를 접하면서 보기엔 좋지만 실상 높이 자랄 수 있는 나무를 조그만 화분 속에 강압적으로 가두어 놓은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재를 전문으로 하시는 분의 말씀을 듣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분재는 계속 가지를 쳐줌으로써 작고 아기자기하게 자라도록 만드는 기술입니다. 언뜻 보기엔 자연에서 높이 자랄 수 있는 나무를 화분 속에 가두어 성장을 막아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분재된 나무는 자연목에 비해서 굉장히 강인하다고 합니다. 분재 기술자는 잔가지를 계속 쳐내버리고 나무의 생명력이 결집된 부분만을 남겨 놓습니다. 이렇게 분재된 나무는 언뜻 보기에는 조그맣고 갸날픈 생명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연속에 자라는 나무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분재되어진 나무는 소량의 수분으로도 생명을 유지하며, 각종 해충이나 병충해에도 끄떡하지 않는 강인함을 특징으로 합니다.

분재된 나무가 잔가지 치기를 당함으로써 결국은 핵심에 집중하는 생명체가 됩니다. 그런 나무는 자연목과는 비교되지 않는 강인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에서 참 좋은 영감을 얻게 됩니다.

삶도 강인함을 필요로 합니다. 강해지지 않으면 넘어질 수 있는 요소가 삶의 주위에는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강인하지 못한 자연목이 각종 자연재해와 병충해에 시달리다 까맣게 말라 죽어가듯 강인하지 못한 삶도 각종 요소에 의해 서서히 무너져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과 조건, 건강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재정의 문제, 그리고 도덕의 문제 등등… 이런 병충해적 요소는 시도 때도 없이 삶을 괴롭힘으로 결국 강인하지 못한 삶은 쓰러지는 순간을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강인함이 필요합니다. 이 강인함은 결국 핵심에 집중함으로 형성됩니다. 계속 잔가지를 쳐내면서 결국 핵심만을 남겨놓은 분재된 나무처럼 인생의 핵심으로 역량을 집중시킬 때 강인함은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삶의 핵심은 먹고 사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핵심은 '고유한 목적'의 실행에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인생을 만드실 때 목적을 품으셨습니다. 아무 목적없이 창조된 개체는 없습니다. 인생에 부여된 고유 목적이 바로 핵심입니다. 이 핵심에 집중하기 위해서 과감한 주변가치에 대한 가지치기 작업은 필수입니다. 주변가치가 제거될 때 비로소 핵심가치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핵심가치에 집중한 자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그렇기에 예배를 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성도와의 깊은 친교,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증거의 삶은 강인한 자의 특권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을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만 이해하지 맙시다. 신앙생활 그 자체가 바로 강인함을 이룬 증거입니다. 신앙생활에 대한 개념이 새로와 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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