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카운티한인교회 남성수 목사

1989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라이프찌히 시의 니콜라스교회는 구 동독의 공산정권 하에서 억압당하고 있었던 동독 백성들의 피난처였다.

당시 동독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도 자기의 의견을 발표하거나 논의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공산주의 정권 아래에서도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한 공간이 있었다. 바로 성 니콜라스 교회였다. 그곳에서는 말씀이 강론되고 있었고, 하나님 앞에 자신들이 원하는 그 무엇이든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80년대 초 어느 월요일에, 약 20여명의 사람들이 라이프찌히 교회에 모여서 자신들의 원하는 바를 하나님 앞에 고하는 첫 기도회를 시작한 이후,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소문이 퍼져나가기를 시작했다. 이 억압의 상황 속에서도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소문이었다. 바로 성 니콜라스 교회가 "자유의 공간(Space Freedom)"이라는 소문이었다.

이 소문이 점차로 퍼져나가자,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교회 안에서 참된 자유함이 무엇인지를 서로가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들의 가장 큰 소원이었던 통일에 대한 염원을 함께 기도하기를 시작했다.

기도회가 끝나면, 저들은 손에 촛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며 통일에 대한 저들의 염원을 알렸다. 매주 월요일마다 이루어졌던 기도회와 촛불행렬은 횟수를 거듭할 때마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불어났다. 만 명, 이만 명, 나중에 1989년 10월 모임에는 12만명이라는 숫자가 운집해 기도회를 개최했다. 결국 이 기도회 후 약 한 달만인 1989년 11월 9일에 베를린의 장벽은 무너지고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후에 역사가와 정치인들은 독일이 이룬 통일의 과업이, 바로 성 니콜라스 교회에서 이루어졌던 월요일 기도모임 때문이었다는 사실 앞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어떻게 한 도시의 작은 교회에서 일어난 기도회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염원을 해소하며 통일에 대한 열매를 이룰 수 있게 한 것일까? 그것은 성 니콜라스 교회의 월요기도회를 사람들이 정치적인 힘으로 잘 이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어느 누구도 그 월요기도회가 그처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은 바로 성 니콜라스 교회가 그 땅에 억압받고 있던 동독 백성들의 유일한 피난처였기 때문이다.

말과 생각과 행동이 통제된 체 수 십년을 공산국가 아래서 살던 저들에게는, 마음과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자신들의 불안과 절망을 잠시라도 해소해 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교회였다. 왜 교회가 저들의 불안과 절망을 해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을까?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거하는 것은 바로 주의 품에 거하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평안의 근원이시다. 불안과 절망은 죄 때문에 왔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인생의 진정한 평안을 주실 수 있다. 그래서 교회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루신 진정한 쉼과 평안을 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이 시대에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 교회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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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니콜라스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