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규 은퇴목사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났다.
돈을 빼았고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다.

때 마침 제사장이 그 길을 내려가다 강도만나 죽어가는 자를 보았다. 피하여 지나 간다.

또 레위인이 그 길에 나타났는데 역시 피하여 지나 갔다.

제사장이 누구인가?
레위인이 누구인가?

백성을 위하여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제사 의식을 행하는 자다.
하나님과 사람의 중보자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백성에게 전하는 자다.
백성의 정신적 지도자라 추앙 받던 자다

레위인은 또 누구인가? 제사장의 아래 지위에서 종교적 행사 일체를 맡아 보던 자다.
성전에서 일할 때 이외에는 백성들의 교사가 되기도 하였다.

그들이 강도만난자 곁에 있었다.
강도 만난자에게 천운의 기회가 온 것이다.
달려가 온정과 동정을 베풀어야 마땅한 그들이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외면하고 '피하여 지나 간다'

사방을 돌아보니 보는이가 없었다. 그래서 모른척하고 지나갔을 꺼라고 누군가가 꼬집었다.
정말, 그랬을까 ... 아니라면 왜! 그랬을까?

말로는 가르치나 행동하지 않는 속 다르고 겉 다른 이중인격자.
제사장, 레위인을 보며 구역질을 느끼는게 당연하다.

그런데 거기 한 사람이 나타났다.
천대받고 멸시받던 사마리아 인이다.
그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버리고간 강도 만난자의 신음 소리를 듣는다.
그냥은 지나칠수 없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준다'
자기 짐승에 태우고 자신은 걸어 주막으로 데려간다.
밤새워 '돌보아 주고' 다음날 아침 떠날 때 그를 위해 사용할 돈을 주인에게 주고 '더 필요하면 돌아와 갚겠다' 고 한다. ,

사랑이 이론이 아니다.
그럴듯한 구호나 듣기 좋은 캠패인이 아니다.

사랑 할만하니 사랑한다면 그게 또 무슨 사랑인가! 그건 누구나 하는 상식이다.
사랑이 give and take가 아니다. 사랑은 give and give 이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데, 사랑해서 유익이 안되는데, 손해를 볼텐데, 그래도 사랑해보는 그것이 사랑, 아가페 사랑 아닌가?

주님은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시려고 그 귀한 생명까지 주셨다.
그리고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알고서도 행치 않는 것이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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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