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조치
방역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유행으로 하루 확진자가 1000명대로 늘어나면서 매일 수십명의 소중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 데도 정부와 우리 사회가 이 같은 현실 앞에서 심각할 정도로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결과 거리두기 격상 기준을 초과했는데도 매번 경제 논리를 앞세워 적절한 방역 대책을 시의적절하게 내놓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인명 피해를 우리사회가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하지만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런 안전불감증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면서, 국민의 기본권인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으며 건강불평등 또한 심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달 들어 3차유행이 본격화된 이후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을 나타내는 치명률은 1.4~1.5%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일일 사망자 수는 보름 넘게 두 자릿수를 기록 중이다.

31일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지난 30일 오전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5만9773명 중 사망자는 879명이다.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인 치명률은 1.47%다.

최근 치명률은 지난 2월20일 국내에서 첫 사망자가 나온 이후 치명률이 가장 높았던 지난 5월 2.3~2.4%대보다 1%포인트 가량 낮은 비율이지만, 일일 신규 사망자 수는 16일째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2~3월 1차 유행, 8~9월 2차 유행 때도 일일 사망자 수가 두 자릿수를 보인 적은 없었다.

이처럼 이전 두 차례의 유행 때보다 사망자가 월등하게 증가했지만, 사망자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예전보다 둔감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국민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감염병"이라며 "장기화될수록 정부와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심화되고, 생명에 대한 인본주의적 태도가 둔감해졌다"고 평가했다.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1차 유행이 본격화된 지난 2월20일 청도 대남병원에서 첫 사망자가 나온 후 정부와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만성폐질환을 앓고 있었던 첫번째 사망자는 코로나19 감염 이후 폐렴이 악화돼 며칠 만에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는 코로나19에 감염돼도 치료받으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졌던 때다. 첫 사망자 발생 보름 전인 2월5일 국내 두번째 확진자가 확진 13일만에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한 뒤 2주간 총 16명이 퇴원했다. 그러나 고령자와 기저질환자를 중심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코로나19가 무서운 감염병이라는 사실이 부각됐다.

이후 정부의 감염병 위기경보 '심각' 단계 격상,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요양병원시설 면회 제한, 해외입국 검역 강화 등 다양한 방역조치가 실시됐다. 그러나 이 같은 방역 조치에도 코로나19 유행은 계속되고 있다. 종교시설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퍼진 감염이 고위험군이 모인 요양병원·시설로 이어졌다. 이달 들어 본격화된 3차 유행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29일 0시 기준 일일 사망자는 역대 가장 많은 40명을 기록했다. 정부는 성탄절 연휴 기간 병원에서 방대본에 보고하고 집계하는 과정에서 지연이 발생했다면서, 지난 26일 이전 사망자 16명, 27일 사망자 11명이 포함된 수치라 설명했다.

정부의 설명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이달 들어 사망자가 대폭 증가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달 하루 평균 신규 사망자는 11.77명이다. 국내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발생한 2월20일부터 11월30일까지 하루 평균 신규 사망자는 1.83명이었다. 무려 6.4배 늘어난 것이다. 최근 일주일간 하루 평균 신규 사망자는 22.42명이다.

천은미 이화여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11월까지 한자릿수였던 사망자가 12월 10배 가까이 늘었다는 것은 결국 의료체계에 과부하가 일어났다는 것인데, 정부는 이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며 "확진자가 줄지 않으면 우리나라도 해외처럼 사망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코로나19로 헌법상 기본권 중 하나인 '건강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도 나왔다.

천 교수는 "앞서 요양병원 집단감염 사례 등으로 많은 환자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유행이 1년 가까이 지속된 지금 시점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정부와 방역당국의 늦은 대처에 요양병원 사망자들은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지적했다.

천 교수는 치료받을 권리 대조군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확진 이후 리제네론, 렘데시비르, 덱사메타손 등을 투약한 것으로 전해진다. 천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기저질환을 가진 고령 환자지만, 조기 진단 후 신속한 치료 덕분에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이라는 신분 때문에 조기 진단과 빠른 치료가 가능했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천 교수는 "코로나19 등으로 발생하는 폐렴은 갑자기 상태가 악화하지만, 고치기 힘든 암이나 불치병이 아니다. 제때 적절하게 치료받으면 회복할 수 있다"며 "미리 준비하지 못한 정부와 방역당국 때문에 다수가 건강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일갈했다.

건강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건 코로나19 사망자 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병상 확보를 위해 전원 조치되는 일반 환자들, 공공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사회 취약계층도 건강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노숙인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서울 6개 병원이 모두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노숙인 등의 의료시설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코로나19로 고인과 유가족의 마지막 역시 큰 상처로도 남고 있다. 감염 전파 우려로 임종 및 화장 참관은 개인보호구 없이 불가능하고, 고인의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하고 '사랑한다'는 말조차 전하지 못한 채 보내야 한다. 장례식장에선 다 같이 모여서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환경조차 조성될 수 없다.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지난 2월23일 공개한 '코로나19 사망자 장례관리 지침'에 따르면 코로나19 사망자 장례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유가족의 동의를 받은 후 '선(先) 화장 후(後) 장례' 순으로 진행된다.

환자의 임종이 임박해지면 의료기관은 즉시 가족에게 연락해 임종 참관 여부를 묻는다. 참관을 원하는 가족은 개인보호구를 착용하고 병실에서 환자를 면회할 수 있다.

의료기관에서 수시(시신을 깨끗하게 닦고 방부처리하는 절차) 후 밀봉 처리된 시신은 장례식장에서 그대로 입관하고, 관 뚜껑을 덮어서 밀봉한다. 개인보호구를 갖춘 의료진이 밀봉된 시신을 화장시설로 옮긴 뒤 화장이 진행되고, 화장 종료 후 유족 협의를 거쳐 장례 절차가 진행된다. 유족은 개인보호구를 착용한 후 참관할 수 있다.

특히 고인이 요양병원·시설에 있었다면, 고인의 마지막 길은 더 쓸쓸할 수밖에 없다. 요양병원·시설 방역을 강화하면서 외부인 면회가 제한됐다.

김우주 교수는 "감염병으로 바뀐 일상을 결코 남의 일로 봐선 안 된다"며 "그간 안전불감증으로 다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에는 분개하고 안타까워 하지만, 같은 안전불감증 때문에 1000명이 희생된 코로나19에는 유독 둔감해졌다"고 비판했다.

천은미 교수도 "코로나19 사망자에 무감각해지면 안 된다"며 "코로나19는 조기 진단과 빠른 치료로 극복할 수 있는 감염병"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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