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10월 17일 선포한 '유신시대'의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인 정치형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유신의 추억-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가 민주통합당 유승희 국회의원과 M2픽처스 주최로 23일 오후 2시 국회시사회가 국회도서관 지하 강당에서 열렸다. 부제로 붙은 '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의 다카키 마사오는 일본 제국주의 군인으로 지원해 부역한 박정희 전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이다.
국회 상영이 끝나고, 저녁 7시 시청 서울광장에서 열린 '만민공동회-우리시대의 유신' 행사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시사회가 열렸다. 이 다큐 영화는 10월 유신선포 40년을 맞아 유신독재의 폭압성의 본질을 조명했다.
이날 저녁 서울광장 잔디밭에 모인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컵라면, 막걸리, 과자 등을 먹으며, 편안한 상태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져 주최 측 예상 인원과 빗나갔지만, 나름대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관람한 듯했다.
영화가 상영된 잔디밭 주변에는 가방, 스카프, 신발, 액세서리 등을 파는 중고 벼룩시장이 열렸고, 유신관련 그림(회화, 즉석에서 회화를 그리는 퍼포먼스 등), 사진 전시회 등도 선보였다. 벼룩시장 부스 하나에 1만원의 후원금을 내고 왔다는 한 상인의 말이 솔깃하게 들리기도 했다. 영화제작 후원금을 의미한 것이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첫 스크린에 나타난 요즘 청소년들의 '유신'에 대한 상식이 전무하다는 사실이었다.
한 젊은이는 유신에 대해 묻자 '김유신 장군의 시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현 시대를 살아가면서 40년 전의 역사인 박정희 '유신 독재' 정치에 대해 전무한 요즘 젊은이들이 꼭 봐야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해도 했다. 지금 현재 40살인 사람들도 당시 한살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한마디로 50살이 넘지 않고서는 역사시간 등을 이용해 배우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50대인 나에게도 40년이 지난 유신의 추억이 생생히 자리잡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으로 기억된다. 어쩌면 인간의 뇌가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0년 전의 기억을 생생히 되살릴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교실 옆 자리에 앉은 친구는 생각나지 않는다. 뇌는 작위적으로 기억해야할 부분들만 메모리에 저장해 놓는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새삼 느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쯤의 일이다. 겨울 방학을 마치고 3월 봄개학을 했다.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맞았고, 그 선생님은 풍금을 잘 치는 여선생님이었다. 당시 3월 중순 정도 됐을까 선생님은 아침 조회를 끝내고 노래를 가르쳐야 한다며, 풍금 앞에 앉아 한 대목 한 대목을 크게 복창하라고 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무조건 따라 했다.
바로 영화 '유신의 추억'을 보면서 40년전 시골 초등학교에서 경험했던 '유신의 추억'이 생각난 이유였다. 뭘 모르고 철없이 불렀던 노래가 성인이 돼 유신 찬양 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부터 10까지 가사를 붙여 부르는 노래였다. 노래를 잊을 수 없어 지금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노래 가사를 적어 본다.
1, 일하시는 대통령
2, 이 나라에 지도자
3, 삼일정신 받들어
4, 사랑하는 겨레위해
5, 오일육(5.16) 이룩하니
6, 육대주에 빛나고
7, 70년대 번영은
8, 팔도강산 뻗쳤네(8.15 못지않네)
9, 구국의 새 역사를
10, 시월유신 정신으로
유신 하면 생각 나는 어릴 적 추억의 노래이다.
이날 서울광장에서 영화가 시작되기 전 무대로 나와 발언을 한 <유신의 추억> 제작자 이정황 감독은 "유신이 갖는 폭압성과 야만성에 대해 유신을 모르는 젊은 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이 영화를 기획했다"면서 "오늘 2시에 국회에서 여러 국회의원을 상대로 시사회를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국회의원들의 특권 때문에 먼저 보여준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유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도록 하기위해서이다"면서 "국민들의 대표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보고한다는 의미에서 시사회를 했다"고 전했다. 그는 "시사회에서 여러 의견들을 모아 영화를 보완할 생각"이라면서 "많은 조언과 의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유신의 추억>은 말 그대로 박정희 정권이 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하면서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인 정치형태에 대해 꼬집은 영화다. 유신시대 국가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과 신민당사 YH 여공 농성사건, YH농성 해산과정에서 김경숙 열사 사건, 이 사건으로 인한 김영삼 의원 제명 사건, 고 장준하 선생 사망사건 등의 유신시대의 야만적인 행태들이 하나하나 조명해 간다. 특히 유신정권에서 조작된 인혁당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이 처형을 당하면서 '가족이 보고 싶다' '억울하다' 등의 마지막 유언(자막으로 보여줌)이 가슴을 울컥하게 했다.
이철 전 코레일사장, 이부영 전 국회의원, 박형규 원로목사, 서중교 성균관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김지하 시인, 백기완 선생, 인혁당 사건 관련자 미망인 등의 당시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증언은 충격 그 자체였다. 유신시대 국가권력이 인위적으로 조작한 인혁당 사건 관계자들이 감옥에서의 폭력과 고문 그리고 처형될 때까지의 소름끼친 과정들이 증언을 통해 보여준다.
심한 고문으로 창자가 삐져나왔고 항문이 빠졌다는 생생한 증언은 충격 그 자체였다. 고문을 받은 것도 부족해 조작에 의한 사건을 사형 언도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다. 박정희 정권의 폭압적이고 광기 어린 독재정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영화 제목 '유신의 추억'은 영화 '살인의 추억'을 기억 나게 한다. 배우 송광호가 형사로 나온 '살인의 추억'을 패러디해 영화 제목을 붙였는지 모르지만, 두 영화의 공통점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직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앞으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꼭 알아야할 과거라는 사실이다. 바로 영화가 끝나고 울적한 마음이 든 이유이다. 다시 '유신'같은 독재시대로 회귀하지 않으려면 현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특히 젊은이들에게) '역사 바로 알기'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해야 하고, 이 영화를 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신 권력 조작에 의한 고문과 처형은 끔직했다.
"40년 전 고인이 된 인혁당 관련 8명의 열사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가족들에게도 그동안의 고통을 헤아리면서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