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사망한지 16일로 딱 100일째가 된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을 둘러싼 수사는 여전히 난항이고, 그러는 사이 피해자의 고통만 커지고 있다.
박 전 시장은 성추행 피소 사실을 알게 된 직후인 지난 7월9일 유서를 남기고 잠적했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채로 서울 성북동 야산에서 발견됐다.
전 비서 A씨가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상태였지만 피의 당사자가 사망함에 따라 이 사건은 수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여론의 규명 요구가 높아지자 경찰은 극단 선택의 경위와 원인을 밝혀야 하는 변사사건 수사, 서울시 관계자들의 성추행 방조·묵인 의혹 수사를 통해 본 사건인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한 실체도 자연스럽게 밝혀지는 방식을 기대했다.
하지만 100일이 지난 현재 기대와 다르게 수사는 진전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서울 성북경찰서가 담당하는 박 전 시장의 변사 사건 수사는 현재 잠정 중단된 상태다. 이 사건 조사를 위해 진행 중이던 휴대전화 디지털포렌식은 유족 측이 진행한 법적 조치로 법원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서울경찰청이 수사 중인 서울시 관계자들의 박 시장 성추행 방조 등 의혹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전현직 서울시 관계자들의 진술도 A씨 측과 엇갈리고 있다.
정작 수사는 잠잠한데 피해자에 대한 무분별한 2차 가해는 심각한 수준으로 보인다.
경찰은 A씨에 대한 악성댓글 등과 '고소장'이라는 문건의 유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유포자와 댓글 작성자 각각 5명과 17명을 입건했다.
A씨는 지난 15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도경은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의 대독을 통한 편지에서 2차 가해에 대한 심각성을 밝혔다.
A씨는 "저는 현재 신상에 관한 불안과 위협 속에서 거주지를 옮겨 지내고 있다"며 "거주지를 옮겨도 멈추지 않는 2차가해 속에서 다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에 괴로워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특히 그 진원지가 가까웠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뼈저리게 몸서리치며 열병을 앓기도 했다"며 "해소할 수 없는 괴로움과 믿었던 사람들에 의한 아픔 때문에 숨을 쉬는 것도 어려운 날들을 겪고 있지만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 매일을 살아내고 있다"고 했다.
또 "아직도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책임과 권한이 있는 인사들이 이제라도 자리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도 말했다.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 상담소장도 기자회견에서 2차 가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소장은 "사건의 1차적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은 '피해호소인'이란 모호한 명칭을 사용하고, 정부 역시 입장표명이나 개선조치 방안을 세우지 않고 있다"며 "그 사이 일부 세력은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피해자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 2차 피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경찰수사가 진척이 없고, 피해자의 고통이 커지는 상황에서 여성단체들은 힘을 모으기로 했다.
전국 288개 여성단체들은 '서울시장위력성폭력공동행동(공동행동)'을 출범하고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과 2차 가해에 대한 대응을 조직적으로 해나가기로 했다.
/뉴시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