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 왜 하필 나지요?'그리고 꼭 부탁드렸다. 눈을 고쳐 달라고. 당시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을 안 하고 계신다고 생각했다. 정말 꿈에도 하나님의 대답이 '노(No)'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이다"
이 글은 올 2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 강영우 박사가 이생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저서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의 한 대목이다.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도미해 피츠버그대학에서 교육학 철학 박사학위를 따 한국 장애인 최초의 박사가 된 그이지만, 그도 처음에는 그의 장애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기독교 방송의 <인생 상담>이라는 프로그램에 왜 도대체 하나님은 자신의 기도에 응답을 안 하고 계신지 묻는 그의 편지에 대한 진행자의 답변은 그의 고난을 극복하는 열쇠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대답하셨습니다. '노(No)'라고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준비하신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부터 자신의 고난에도 주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그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위해 그의 고난을 사용했다.
대학 입학도 쉽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기독교 대학에서조차 원서를 받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아는 목회자의 도움으로 다행히 입학시험을 볼 기회를 얻어 전체 10등으로 입학했다.
입학 후라고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강의실에서는 장애인과 함께 수업을 받아야 하느냐는 학생들의 무시, 교수의 편견을 극복해야했다. 동아리에서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입회 거부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열심히 공부해 장학생이 됐다. 그렇게 친구들의 무시를 줄여 나갔고 직접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며 친구들을 사귀며 미팅 빼고는 대학생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 할 정도로 살아냈다.
그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그렇게 나는 정안인들의 세상에서 내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으로 그들의 마음속에 뿌리 박혀 있는 편견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고.
그는 교육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하고 피츠버그대학 대학원에 합격해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그러나 학생 여권 수속을 하다 보니 문교부 법적 조항에 신체장애가 유학의 결격 사유가 되는 것이 아닌가.
장애물에 부딪혔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한미재단 유학지도부의 이유상 박사를 찾아갔고, 이 박사는 연세대학과 힘을 합해 문교부에 건의안을 제출했다. 이에 그 법적 조항은 없어지게 됐다.
법은 바뀌었지만 이제 문화가 문제였다. 그가 유학을 위한 종합 진찰을 받았지만 의사가 진찰서 소견에 "해외여행에는 지장이 없음"이라고 쓰지를 못했다. 그는 "눈이 안 보이는데 지장이 없다는 게 말이 되어야 말이죠"라며 어려운 기색을 내보였다.
그 순간 강 박사는 재치를 발휘해 "그러면 시각장애 외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써 주십시오"라고 말해 유학길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미국에 가서 한국 시각장애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자신의 나약함 속에서 능력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책을 쓰게 됐다.
또한 그의 말을 빌리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인간 천사들'로부터 받은 것이 너무 많아 이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봉사를 시작해 로터리클럽(Rotary Club)에 들어가 글로벌 리더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에 대해 "어느새 국제적 명성을 가진 저술가요 대중 연설가가 된 나는 세계 지도자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수백, 수천, 수만의 장애인들을 돌아보게 하였음은 물론, 장애인 인권 보장과 복지를 위한 장치들을 마련하게 하였다"고 썼다.
또 "과연 나의 기도에 하나님이 '예스'라고 답하셨으면, 내가 사반세기 동안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봉사하고, 한국 대통령 다섯 분, 미국 대통령 네 분을 포함한 13개국 정상 스물두 분을 만나 활동할 수 있는 영광과 특권을 가질 수 있었을까?"라고 적었다.
그는 또한 이렇게 회고한다.
"확실한 건 그때 내가 눈을 떴다면, 지금 내가 이루어낸 모든 것의 십분의 일도 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나의 눈을 가져간 대신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다. 하나님은 나의 실명을 통해 나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셨다. 실명을 하기 전 나는 딱히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이 없었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이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겠다는 생각 같은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실명을 하고 나서야 나는 꿈을 가졌다"
지적 장애를 가진 누나를 뒀던 케네디 상원의원은 청각장애를 가진 남동생을 둔 톰 하킨 의원에게 장애인들을 위한 법안을 작성하자고 제안, 공화당의 밥 돌 상원의원, 민주당의 톰 하킨 의원, 케네디 상원의원은 의기투합해 법안을 함께 작성하고 제안했다.
톰 하킨 의원은 장애인이 고용에서 차별 받지 않고 모든 공공서비스, 편의시설, 통신 및 교통시설 이용에 권리를 보호받는 장애인 민권법을 1990년 작성해 상원에 소개했다.
이렇게 미국 장애인 민권법은 1990년 7월26일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서명으로 채택됐다.
이 책은 자신의 장애를 인생의 ‘축복’이요, 세상의 '축복'으로 만든 이들의 삶을 통해 ‘고난’과 ‘약함’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