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6시45분. 고교 2학년생 A(16)군은 서울 영등포본동의 한 아파트 19층 계단 창틀에 다리를 걸친 채 몸을 떨고 있었다.
A군은 중학생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동시에 여의었다. A군은 형제도 없다. 그는 이 아파트에 혼자 살며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나갔다. 유일한 버팀목은 여자친구였다. 여자친구와 다투고는 삶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루 전인 4일 낮에는 서울 가양동 한 아파트에서 B(52·여)씨가 수건으로 목을 매달았다. B씨는 자신의 이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어 남편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안방에는 유서가 있었다.
'우리 아들·딸, 엄마가 너무너무 미안하다. 용서하지 마라.'
지난해 의욕적으로 주점을 개업한 B씨는 장사가 너무 안돼 빚이 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6월10일 새벽에는 서울 대림동의 5층짜리 건물 옥상에서 10대 중반의 C양이 펑펑 울면서 뛰어내리겠다고 소동을 벌였다. C양은 어릴 적 의붓아버지한테서 성폭행당한 아픔이 있다. 최근에는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아 상처가 겹쳤다.
세 사람은 모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설득과 만류로 현재도 삶을 영위하고 있다.
10일은 올해로 10번째를 맞는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생명의 소중함과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2003년 제정했다.
자살하려다 삶의 의지를 되찾은 이들도 있지만 전국적으로 하루 수십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2010년 한국에서 자살한 사람은 1만5천566명으로 하루 평균 42.6명꼴이다.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31.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위다.
9일 보건복지부의 '2011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15.6%는 평생 한번 이상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하고, 3.2%는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 자료를 보더라도 2010년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단연 자살(13%)이다. 청소년 10만명당 1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셈이다. 노인은 10만명당 81.9명으로 일본(17.9명), 미국(14.5명)과 비교가 안 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대부분 우울증이라는 질병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자살예방협회 대외협력위원장)는 "우울증으로 인한 마음의 분노가 외부로 표출되면 최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된 '묻지가 범죄'가 되고 내부로 향하면 자살로 표출된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한국 사회가 성장 일변도로 가며 풍족해졌지만 개개인의 정서는 오히려 피폐해진 것 같다"며 "단기적으로는 자살 고위험군을 잘 관리해 전체 절반에 이르는 충동적인 자살을 막고,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반의 성장 일변도 가치관을 감성적·철학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