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이 어디 쉬운가요. 남편과 저는 괜찮은데 아이들 생각하면 이 동네, 이 단지를 떠날 수 없어요. 그런데 집주인이 원하는 추가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기도, 대안으로 얘기한 월세를 맞춰주기도 너무 어려운 상황이네요."
16일 서울 송파구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주부 A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전세계약 갱신을 앞두고 집주인이 보증금 1억8000만원 인상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지난 6년간 큰 무리 없이 살아온 집이었다. 부동산을 통해 조건을 완화해달라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보증금 5000만원 인상에 월세 100만원'이었다.
맞벌이지만 두 아이 교육비와 전세대출금 상환으로 빠듯한 살림에 당장 1억8000만원을 마련할 방법도, 매달 100만원을 추가로 부담할 재간이 없는 상황이다.
7·10부동산 대책으로 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늘린데다 임대차3법(전월세신고제,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시행을 앞두고 집주인들이 서둘러 전셋값을 올리고 있는 모양새다.
가뜩이나 공급부족으로 54주째 전셋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해오던 차에 정부의 잇딴 규제는 서울 전세시장에 악재로 작용했다. 규제의 본질은 집값을 안정시키고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시장에선 반대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임대차3법을 소급적용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집주인들의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임대차3법이 통과되면 임차인은 계약 갱신을 통해 최소 4년(2년+2년)간 거주기간을 보장받고, 임대료도 5% 이내에서 증액된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개정안 통과 전에 미리 보증금을 올리려는 것이다.
A씨의 전세계약을 중개한 B공인중개사는 "최근 단지 내 전세 재계약 사례를 보면 아직 재계약 날짜가 남은 상태에서 임대인이 보증금 인상을 요구한 경우도 있었다. 최대 3억원까지 인상한 사례도 있다"며 "전세 매물 자체가 너무 귀하다보니 오히려 세입자가 먼저 전셋값을 올려준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임대인도 임차인도 고민이 많은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국회 여당도 가세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전날 임대차계약을 최대 6년(2+2+2)까지 보장하고, 증액상한율은 기준금리+3% 이내에서 정하도록 명시하며, 이를 계약갱신 뿐 아니라 신규계약 시에도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전월세상한제를 더욱 강화해 임차인의 거주 권한을 확대한다는 취지다. 이 의원은 임차인의 거주권을 담보하기 위해 정당한 사유 없이 임대인이 계약 갱신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차임 등의 증액 기준을 현행 법령보다 엄격하게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 임대차3법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같은 법안이 발의되는 건 시장의 혼란을 더욱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부동산전문가는 "과열된 부동산 시장에서 정부의 규제는 찬물을 끼얹기보단 오히려 불을 지피게 된다"며 "임대차 관련한 법안이 통과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소급적용을 언급하는 건 시장의 혼란을 부추길 뿐이다. 피해를 보는 건 결국 보증금을 올려주거나 월세를 내야하는 세입자가 된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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