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변증가인 짐 데니슨(Jim Denison)은 25일(현지시간) "태초의 하나님은 어디에서 왔는가?(Where did God come from?)"라는 크리스천포스트 기고글을 통해 대답하기 어려운 난해한 주제를 다루었다. 바로 "태초의 하나님은 어디에서 오셨을까?"라는 질문이다.
이성을 통해 모든 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이성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만 진리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자신의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나 신의 부재를 증명하는 것, 그 어떤 것도 정확한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그저 평행선만 달리게 된다.
하나님의 존재의 문제는 이성의 문제도 아니고, 비이성, 반이성의 문제도 아니며, 초이성의 문제다. 이것은 믿음, 신앙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성적 논쟁으로도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그저 이성의 한계를 깨닫고 인정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는 것은, 신 앞의 단독자로서 본인이 해결해야 할,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개인적인 문제다.
본지는 전문을 번역해서 독자들과 나눈다.
성경 저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지만 비공식적이고 실험을 거치지 않은 이 신념은 하나님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우리는 생각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는 실제로 교제할 수 없다. 물론 그들에 대한 꿈, 환각 또는 환상을 가질 수 있지만, 우리는 그저 우리의 상상 속 친구들을 예배하거나 섬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정신분열증 환자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정확히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은 오직 꿈, 환각, 환상으로만 존재한다, 신념은 입증되거나 합리적으로 옹호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창조주 하나님 없는 창조?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고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반응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들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창조주 없는 피조물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냐고. 이것을 신의 존재에 대한 우주론적 논증(cosmological argument for God's existence)이라고 한다.
만약에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었다면, 빅뱅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생명체가 물에 떠 있는 세포로 시작했다고 생각한다면, 그 물은 누가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우리는 모든 결과가 이전의 원인을 가지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어딘가 또는 누군가로부터 왔다는 것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인 이 '처음원인(근본원인, First Cause)'을 우리는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접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많은 것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우주가 소멸되고 있다고 말한다(열역학 제2법칙). 언젠가, 아마도 미래의 1만150년 후에, 모든 에너지는 물질로 전환되고 모든 것이 스스로 붕괴될 것이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열사(heat death)라고 하면서, 이것이 온 우주를 하나의 블랙홀로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열역학 제3법칙이 말하는 다소 비관적인 방식이다.
회의론자들은 이것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힘을 사용해 빅뱅이 시작되게 한 방법일 수 있느냐고 묻는다. 또는 우주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았을 때, 역사는 빅뱅의 팽창과 수축이 연속으로 이어지면서 직선이 아니라 원형적으로 움직이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물론 회의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우주를 만드셨다는 우리의 신념을 우리가 증명할 수 없는 것처럼, 이것의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분께서 어느 날 역사를 영원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언한다(벧후 3:10, 계 21:1-5). 하지만 우리가 태초나 역사의 마지막 끝 날에 있지 않는 한, 이러한 주장들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는 것은 사전적 정의로 순환 논법(circular reasoning)이다.
설계자 하나님 없는 설계?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다른 방법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설계)로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을 신의 존재에 대한 목적론적 논증(teleological argument)이라고 한다. 헬라어로 텔로스는 "디자인" 또는 "끝"을 의미한다.
이 논증에 대해 고전적 의미에서 진술하면, 당신이 산을 걷다가 바위를 우연히 발견했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더 걸어가서 땅 위에 놓여 있는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시계 중심 부분과 시계 손목띠, 그리고 시계의 다른 구성 요소들이 그 장소에 우연히 그런 방식으로 함께 떨어졌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주는 분명히 시계보다 더 복잡하지 않은가?
이런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우리는 거의 모든 곳에서 놀라운 설계의 예를 발견할 수 있다. 무신론자 카이 닐슨(Kai Nielsen)과의 토론에서 J. P. 모어랜드(J. P. Moreland)는 몇 가지 제안을 했다:
우주의 형성에서, 물질과 반물질의 균형은 우주가 탄생하기까지 100억 분의 1까지 정확해야 했다. 100억 분의 1보다 더 크거나 훨씬 더 크다면, 우주는 생길 수 없었다. 그리고 빅뱅의 팽창률이 10억 분의 1보다 더 크거나 작았다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우주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캠브리지의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Fred Hoyle)은 단순한 기회를 통해 생명이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을 1 x 10.40로 계산했다. 호일은 이것이 토네이도가 폐차장을 가로질러 갔을 때 저절로 보잉 747이 만들어지는 확률이라고 비유했다.
이 값들, 이 우주적 상수들은 서로 독립적인데, 이것들이 훨씬 더 크거나 작았다면 우리와 비슷한 생명이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생명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설계논증에 의해 설득된 사람들은 생명이 자연스럽게 진화되기에는 우주의 나이가 충분히 오래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의 현재 세상이 랜덤하게 진화했을 가능성이 너무 낮다.
그런데 이 논증에 대해 회의자의자들이 가장 쉽게 응답하는 방법은 생명은 적자생존을 통해 진화한다는 다윈의 주장을 호출하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생명은 폐차장의 토네이도를 통해 생겨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보잉 747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부품을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진화되었다. 랜덤으로 또는 우연히 발생할 가능성이라는 것은, 이런 선택의 과정을 통해 진화된 세계에서는 부적합하다.
일부 진화론자들은 자연선택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생명을 만들어낸 것이 틀림 없으며 자연선택은 생명이 탄생했을 가능성에 대해 불리하기 보다 오히려 훨씬 더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주가 우연의 일치(random coincidence)를 통해 진화되는 데는 15억 년 이상이 걸렸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자연선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생명 창조의 과정을 가속화했었다.
학자들은 다윈의 진화론의 장점을 계속 토론한다. 당신이 다윈이 탁월하다고 생각하던지 속았다고 생각하던지, 당신은 왜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이 설계 논증에 대해 감명을 받지 않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도덕적 하나님 없는 도덕성?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논증하는 세 번째 방법은 인간이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옳고 그름, 선과 악의 감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의 양심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부모님이요" 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의 부모는 그것을 어디에서 얻었는가? 부모님의 부모님은? 그렇게 끝모르게 계속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거룩하시고 자신의 성품을 반영하는 도덕성이라는 감각을 가진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유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접근 방식도 회의론자들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우리의 도덕성은 다윈의 자기보존의 원칙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쉽게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래왔다. 우리는 종의 생존을 보장하는 방법으로서의 도덕성을 권장하는 자연선택에 대해 인정할 수도 있다.
자신의 신앙을 위해 순교하는 기독교인들처럼 자기 보호를 위한 본능을 위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도덕적 선택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내세에서의 자신의 삶과 영광을 구하는 이기적 추구로 설명될 수도 있다. 낙원에서의 상급을 추구하는 무슬림 지하디스트, 자살폭탄 테러범이 비극적으로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신의 이유들
결국,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고전적 논증들 중 어떤 것도 우리가 그분을 믿도록 강요할 수 있는 수준은 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 나쁘게, 그러한 믿음을 거부하게 하는 여러 이유들도 존재한다.
첫째로,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진화론은 설계자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다른, 세상의 설계에 대한 설명으로 이용될 수 있다.
둘째로,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신다면, 우리가 그분이 실재임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저명한 무신론자요 저자인 샘 해리스(Sam Harris)는 다음과 같이 명백히 합리적인 진술을 하고 있다: "무신론자는 단지 '하나님의 존재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2억6천만(전체 인구의 87%)의 미국인들이 그분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의 요구를 따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아야 한다.
셋째로, 일부 무신론자들은 더 나아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말은 무의미하며 앞뒤가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피조물을 창조주로 만드는 것은 우상숭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피조 세계에서 어떤 것도 하나님의 존재의 증거로 지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유한한 생각으론 무한한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정의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이성적 개념 안에 있는 어떤 것도 지적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이성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분을 믿을 수 있겠는가?
네 번째로, 무고한 고통당하는 자들의 문제는 상황을 매우 복잡하게 한다. 사랑으로 가득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악과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믿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해리스가 지적한 것처럼, "무신론자는 한 소녀의 살인은, 그것이 백 만 년에 한 번 일어났다 할지라도, 자비로운 신에 대한 사상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신앙의 이유들
그럼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의 해답은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존재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종교적인 책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가지고 있다. 쿠란은 알라 외에 하나님이 없다고, 그리고 무함마드만이 알라의 선지자라고 말한다. 몰몬경은 놀랍지 않게 몰몬교의 교리를 지지한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옹호하지 않는 경전을 가진 종교를 발견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겠는가?
성경은 신뢰할만한 경전이라는 뛰어난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본, 고고학적 증거, 내적 일관성, 그리고 예언의 성취 등을 가지고서도 성경이 신성하게 영감된 책이라거나 하나님께서 실제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명백하게 증명할 수는 없다.
두 번째 반응은 우리의 주장을 증명하지 않고도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이다. 피조물을 창조한 창조주나 피조물을 설계한 지적설계자에 대한 주장까지, 그것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것은 명백하게 논리적인 생각이다. 회의론자들이 우리가 맞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우리가 틀렸다는 것도 증명할 수 없다.
이 사실은 중요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적어도 이성적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면, 기독교 신앙은 분명히 거부될 것이다. 우리가 화성인의 존재를 설득할 수 있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데 화성인 숭배에 참여해야 한다면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논리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고 설계하셨다고 주장할 수 있다. 비록 회의론자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생명을 위한 설명으로 진화론적 자연선택을 신뢰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그들의 이론은 그럴 듯 해보이지만, 그것은 우리도 그렇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의 무게다.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보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에 더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이성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사람들을 증거에서 경험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도록 초대할 수 있다.
다른 모든 관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는 스스로 유효성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을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그분의 존재는 우리가 그분을 만나기 전에도 이성적이었고, 지금은 더 설득력이 있다.
세 번째 방법은 다음과 같이 질문함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무엇을 더 하기를 원합니까? 이것을 다르게 어떻게 하실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앞서 언급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네 가지 공격을 생각해보라. 첫 번째는 진화론자들이 설계자 하나님 없는 생명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선택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손으로 컴퓨터 타자를 하는 것은, 침팬지가 바나나 껍질을 까는 것과 유사해보일 수 있다. 진화론자들에 따르면, 이 사실은 우리가 공통조상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다양한 종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진화의 증거라고 우리는 들어왔다. 유사성과 적응은 세상이 하나님 없는 진화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하나님이 생명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라. 이 경우, 적응은 설계를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명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는 컴퓨터 타자를 칠 수 있기를 원하시고 침팬지는 바나나를 먹을 수 있기를 원했고, 그래서 그분께서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유사한 방법으로 손을 설계하셨을 수 있다.
대부분의 차는 바퀴가 네 개인데, 이것이 모든 차들이 같은 공장에서 나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두 번째 공격은, 하나님께서 우주를 만드셨다면, 우리가 그분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뭘 행하시기를 원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능력과 설계의 천재성의 증거를 지닌 세상을 만드셨다. 우리는 적응을 통해 생명을 설명할 수 있지만, 그 놀라운 적응력은 그분의 빛나는 계획의 일부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 차례 자신의 피조물에게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천사를 사람들에게 보내셨다. 꿈과 환상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그분은 자신의 전능성을 접고 태아가 되셨고,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다. 그분은 무덤에서 일어나시고 하늘에 오르심으로 자신의 신성을 증거하셨다. 그분은 이러한 사건들이 기록된 책을 우리에게 주셨다. 여기에는 놀랍고 믿을만한 신빙성 있는 자세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그분이 무엇을 더 하기를 원하는가? 그분은 2천 년 전에 우리에게 육체로 나타나셨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나타나실 수 있다. 하지만 2천 년 전의 많은 사람들은 그분의 기적을 보고 그분의 부활을 알면서도 그분의 신성을 믿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당신의 경험을 그저 환각이나 꿈으로 무시할 수 있다. 그러면서 당신의 감각이 당신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분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면, 심판 날에 당신이 그분의 존재 앞에 설 때일지도 모른다.
그 날이 올 것이다
사실, 기독교는 절대 확실성으로만 입증될 수 있다. 미래의 어느 날, 당신은 모든 의심의 구름이 사라지고 하나님은 실재이며 예수님은 주님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이전에 믿음으로 당신을 신뢰할 수 있는, 당신과 인격적 교제를 하며 자신을 만나는 이들에게 증명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은혜의 날을 당신에게 주고 계신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모든 무릎이 무릎 꿇고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라고 고백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실 그 날이 올 것이다(빌 2:10-11).
그 날이 올 때까지, 초자연적인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자연적인 수단은 안타깝게도 없다. 우주의 무한하고 완전한 하나님께 우리의 유한하고 타락한 마음에 당신을 증명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분에게 사각형으로 된 원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께서 행하셔야 할 의무는 없다.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세 번째 주장은 경험이나 사유를 통해 하나님을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거나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잘못인가? 그분이 다르게 행하도록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의 피조물을 통해 그분을 정의하거나 묘사할 수 없다는 것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유한하고 타락한 생각으로는 사유를 통해 그분을 이해하거나 묘사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닐 것이다. 만약에 우리의 두뇌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데 충분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아주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우주의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그러하겠는가! '톰 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은 자신이 성경의 모든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이 썼을 것이라고 믿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존재에 반대하는 네 번째 논증은 무고한 고통의 문제다. 이 비극적인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전지전능하고 사랑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이 도전에 대응하는 많은 합리적인 방법들이 이미 있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던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미국의 대통령과 영국의 여왕은 존재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우리는 언론의 그들에 대한 모든 언급에 대해서 의심할 수 있다. 당신이 그들을 만났다고 주장해도, 우리가 당신을 믿기를 거부할 수 있다. 결국, 오직 자신이 직접 그들을 만난 때, 그들이 실재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
사랑과 우정은 존재하는가? 우리는 당신에게 우리의 아내가 우리를 사랑하는지, 우리의 진구가 진정한 친구인지 증명할 수 없다. 우리는 당신에게 우리에게 보여준 그들의 헌신이 어떠했는지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그들의 헌신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했던 모든 놀라운 일들을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그들이 우리를 조종하거나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당신은 우리가 진짜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리의 결혼과 우정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개인적인 관계의 본질이며, 우주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실재를 증명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신 것처럼 보인다. 그분의 존재에 대한 합리적 논증은 신앙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분은 인류의 역사 내내 우리의 세상과 상호작용해오셨고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기까지 하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창조의 사역에 대해 신뢰할만한 기록된 문서를 주셨다. 그분은 자신을 기꺼이 믿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나타나신다. 그 결과, 당신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나 조지 워싱턴보다 더 많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 무신론자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그러한 믿음이 그들에게 초자연적인 존재를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유물론자라면, 초자연적인 실재가 존재할 수 없다고 확신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증거나 설득도 당신에게 초자연적인 존재를 확신시키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지구는 평평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면, 당신이 틀렸다는 것을 논리적으로나 경험으로 증명할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없다. 전제가 결론을 결정짓는다.
초자연적인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도 하나의 신앙이다. 유물론도 헌신된 믿음이다. 초자연주의자들이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해 증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유물론자들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증거를 조사하고 그것으로 초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이 실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분에게 당신의 삶 속에 실재가 되어달라고 요청할 때.
*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인 짐 데니슨 박사는 현재 구독자가 16만 명이 넘는 '데니슨 포럼'의 대표로,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에서 M.Div와 Ph.D 학위를 받았으며, 이 대학에서 종교철학을 가르쳤다. 침례교 목회자로 다수의 목회 경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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