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크리스천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구절이다. 그것은 본문에 ‘권세’ 곧 국가의 권력 앞에 언제나 억압당한 역사적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악하기도 했던 권력 앞에 그리스도인들이 복종해야만 하는지, 그것은 우리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본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고 명령을 한다.
우리 기독신자들에게 국가와 권세와 정치에 대한 태도를 가르쳐 준 말씀이다.
또한 주권의 근본은 다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본문의 권세란 말이 정부나 국가를 의미 한다. 그리스도인은 국가에 복종 할 의무를 지닌다.
때로 국가는 개인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복종하라고 하신다.
예를 들면 운전하고 가는데 경찰차가 자꾸 따라온다. 그냥 계속 가면 싸이렌 소리를 내며 쫒아 온다. 어떻게 해야 하나? 경찰차가 서라면 서야지 별 수 있나?
혹 내가 잘못이 없다 해도 서야한다.
파란 불 이라도 서야하고 빨간 불 이라도 서야 한다. 왜 그러해야 하나? 사람이 정부에게 교통질서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권세를 위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 할 수 있다. 서라고 해서 섰는데 힘이 없어 보여 한 대 치고 갈 수도 있고 뺑소니 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어떤 사람에게는 굴복이라는 단어가 반갑지 않을 수 있다. 자유는 좋아 하지만 굴복이란 단 어는 반갑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본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굴복 하라고 한다.
왜 이렇게 해야 하나? 예를 들어보자.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해서 그 후보자에게 투표를 했던 아니면 싫어서 투표를 하지 않았던 일단 그가 당선되면 나라가 그에게 위임해 준 것이다.
모든 국민들은 그 통치권자에게 순응해야 한다. 예로 다윗은 그 악한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끝까지 해하지 아니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사울을 세우셨기 때문 이라고 한다.
복종은 영어로 subejection 이라고 하는데 순종보다 더 범위가 넓고 엄격한 관계를 표현 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분의 임기 동안에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요즘 권세에 대해서 윗사람에 대해서 굴복을 하지 않는 풍조가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 되어 있다.
학교에 가도 옛날 같지 않다고 한다. 학생들이 선생님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상실해서다. 예전에는 부모님처럼 또는 임금님처럼 귀하게 여길 줄 알았는데 스승의 권위는 증발 한지 오래이다. 남편이 좀 모자란 듯해도 하나님이 세워 주신 머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부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남편은 하나님이 세워주신 가정의 가장이다.
교회에서도 마찬 가지 교회는 직분 자들이 좀 못 마땅한 면이 있더라도 순응하고 따를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법과 권세를 거역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따 먹지 말라한 선악과를 먹지 않았더라면 에덴동산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그러나 먹지 말라한 하나님의 권세에 도전해서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에덴에서 쫓겨났다.
권세의 자격을 논하기 전에 남편다우냐 부모다우냐를 논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권세를 허락 하셨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하자. 왜 그러할까?
◈ 질서 있는 삶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지럽고 질서 있는 삶을 요구 하신다. (고전 14:40 14:33)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는 참으로 조직 적이고 질서 있는 체계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신체를 보아도 얼마나 정교한 조직인가를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국가 안에서 질서 있는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굴복 한다는 말은 인간에 대한 복종이아니라 이 복종을 통해서 ’나는 주님을 섬긴다는 신앙 고백이 요구된다.
그래서 바울은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말고 그리스도의 종처럼 마음으로 하나님님께 하듯 하라고 하였다 (엡6:6-7)
그런데 악한 지도자가 이 성경 구절을 근거로 성도들에게 자기의 말에 복종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암울 했을 때에 이 성경 구절을 가지고 민주화 운동에 선봉에 섰던 분들을 회유하고 핍박 했던 때가 있었다. 이에 대해 본문은 “권세는 사랑을 따라 행하라”고 권한다. 여기 사랑을 따라 라는 말은 상대방의 유익을 생각하라는 의미이다.
모든 권세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던 것처럼 국가는 국민을 위하고 상급자는 하급자를 주인은 종을 남편은 아내의 유익을 구하라 하신다. 권세자들이 새겨야 할 말씀이다.
그래서 3절에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여기서 말하는 선이란 의미를 살펴보자.
보통 착한일 하는 것을 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 선행이란 나 중심 아닌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말한다.
우리나라가 왜 세계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 하는 민족끼리 싸우고 지금까지 이산가족이 되어 이념적 갈등으로 고통을 겪어야 하나 북한의 통치자가 국민들이야 죽건 말건 자기 정치적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하여 핵을 만드는 개인의 이기주의가 국민들에게 불안을 주고 있다.
그 뿐인가 선거 때만 되면 하는 말들이 비슷하다. 개혁, 개방, 민주, 경제발전 등 미사여구의 말잔치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던가? 누구를 위하여 하는 말들인가? 자기들의 정권을 잡기위한 방편으로 사용하는 말들이다.
나만 좋으면 된다는 극히 이기적인 생각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사람들에게는 그럴 듯하게 공약을 하고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있는 정치인들이다.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렇게는 못 할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는 문명이나 민족이 망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권력층이 독재 할 때 이고 다음은 국민 다수가 애국심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사회 분위기가 결속되지 못할 때라고 하였다.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다.
십시일반 이라는 말도 있다. 열 사람이 모였는데 밥이 아홉 그릇 뿐이라면, 그럴 때 한 수 가락씩 덜어주면 10 그릇이 만들어 지는 것을 말하지 않는가?
우리 민족은 단결 할 줄 아는 민족이다. 보릿고개를 넘겨야 할 때 두레를 하고 품앗이를 하여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살아왔다.
만일 통치자가 하나님을 경멸하고 성도의 올바른 신앙을 박해한다면 성도들은 마땅히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결단해야 할 것이다. (왕상 18:1-46)
우상 숭배나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같이 극단 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통치자들의 불의한 행위를 묵인하고 그대로 굴복 면 목숨 걸고 신앙의 지조를 지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하늘로서 온 권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일제 식민지 시대에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순교까지 도 달게 감수했던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사랑으로 행하라고 권면한다.
“사랑은 이웃에게 결코 악을 행하지 않는다.”(10)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는 것, 이것이 선이다. 용암이 지나간 자취를 보았는가? 화산 용암이 지나 간 자리에는 풀 한포기도 보이지 않는다.
용암이 시속 30마일로 흐른다고 한다. 그 불에 남을 것이 하나도 없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핍박을 받아 사도 요한은 밧모 섬으로 끌려가서 종신토록 노역을 하다 죽게 되었다.
그런데 주후 96년 9월 18일 집사장 테파누수가 도미티아 누수를 암살하고 정권을 잡으면서 사도 요한은 18개월의 유배 생활을 끝내고 주후 79년 2월 자유의 몸이 된다.
그 후로 그는 나이가 많고 힘이 없어서 주로 않아서 설교를 했는데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 하십니다”가 말씀의 주제였다고 한다.
어느 날 제자들에게 삽을 가지고 땅을 파자 하고는 땅 속에 자신의 옷을 깔고 기도하고 마지막으로 성도들에게 여러분 “서로 사랑 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이 나에게 가르치라고 분부 하신 말씀입니다” 하고는 조용히 눈을 감고 하늘나라에 갔다고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이다. 이 말의 의미는 자신을 낮추시어 인간이 되시고 종이되 시고 죽음의 자리까지 간 것이다.
아가페라는 단어는 사랑으로라는 말로 다 표현 하지 못한다.
굳이 번역을 한다면 becom(되다)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 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 되어보자. 하늘 나라왕국의 실현하는 시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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