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학부 신학생을 위한 애큐매니칼 TAS 강연이 11일부터 2박 3일간 장신대 세교협 새문안 홀에서 개최됐다. 크리스천 아카데미(원장 이근복)가 주관하는 강연으로, 2박 3일간 인문, 사회, 과학자들을 초청해 성경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자 이번 강연회가 진행됐다. 첫 번째 강연으로는 청파교회를 담임하고,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김기석 목사가 진행했다.
강연 서두에서 자신이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로, 그는 “신학적 사고는 하나의 답을 지향하는데, 이는 내게 맞지 않았다”며 “그러나 문학은 답을 미리 상정하기보다 질문을 계속 던지는 행위를 통해 인생의 핵심에 도달하려는 게 좋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인간은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려 하지만, 특정 상황에 맞닥뜨리면 동일성이 해체됨을 목도할 수밖에 없다”면서 “문학이란 결국 인간의 나약함을 정직히 직면하는 것”이라 밝혔다. 하여, 그는 푸엘 바하의 말을 빌려 “신학은 인간에 대해 아는 것”이라며 “신학과 문학은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그는 “주류 담론이 ‘인생이 이런거야’라고 주장 한다면, 문학은 밑줄을 긋고 ‘정말 맞어?’라고 되묻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그는 “문학은 답을 찾기보다, 구체적 상황을 부여하고 ‘답이 달라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진리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동일성이 해체될 수 있음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라 역설했다.
이를 놓고, 그는 영화 밀양을 제시했다. 그는 “용서는 진리”라면서, “그러나 밀양은 가해자와 피해자 도식 속에서, 용서를 해야 하는 당위와 용서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나 사이의 갈등”이라고 전했다.
영화의 개략적 줄거리를 제시하며, 그는 “범인은 아람이를 납치해 살해했는데, 그는 아람이가 다니던 주산학원 원장 이었다”며 “아람이 엄마는 슬픔을 안고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아람이 엄마는 성경 진리에 따라 용서를 해야겠단 생각에 범인을 만나러 갔다”며 “그녀는 범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아람이 엄마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갔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범인은 이미 ‘교도소 안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받았다’며 평온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하여, 그는 “아람이 엄마는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누가 용서를 할 수 있는가’”라며 “용서의 주체로서 갔는데, 주체를 빼앗겼기에 미칠 것 같은 괴로움에 시달린다”고 밝혔다.
따라서 그는 “신이 범인을 용서했다면, 신을 용납할 수 없는 아람이 엄마였다”며 “아람이 엄마가 택한 신에 대한 복수는 바로 자살이었다”고 전했다. 영화 밀양은 이창동 감독이 소설가였을 적, 쓴 ‘벌레 이야기’에서 각색한 영화다. 실제 벌레 이야기는 영화 밀양과 달리, 주인공 엄마는 자살을 택한다. 이에 그는 “신 앞에서 인간은 벌게 같은 존재”라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남도 출신 이창동 소설가는 5.18 광주사태를 목도하고 이 소설을 썼다”며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보상도, 참회도 안하는데, ‘함부로 용서를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그는 소설을 통해 던지는 것”이라 했다.
나아가 그는 가인과 아벨이야기도 덧붙여 설명했다. 그는 “선악과를 따먹는 유혹은 결국 ‘내가 스스로 신처럼 되는 것’”이라며 “신처럼 되는 건 내가 타자에게 전능한 존재가 되려는 유혹”이라고 강조했다. “이게 바로 권력의 달콤함”이라며 “이는 또 다른 성경적 언어로 ‘우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그는 전했다. 아울러 그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빌려, “출세, 돈은 유사전능성을 지닌다”며 “우리 시대 갑질 하는 사람들은 돈의 유사전능성을 의지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더불어 그는 “사람들이 돈을 우상처럼 떠받드는 건 바로 돈의 권력성 곧 ‘신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일례로, 그는 “미투 운동도 남성 주체가 여성 주체를 쾌락의 대상화로 전락 시킨데 서 촉발 됐다”고 덧붙였다.
이런 유사전능성의 욕구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범죄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그는 “하나님은 전능하길 꿈꾸는 인간을 낙원에서 추방했다”며 “선악의 판단 주체, 곧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그는 “헤겔은 이를 신의 자기 소외”라고 인용했다. 즉 그는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을 하나님이 추방하기보다, 선악과를 따먹을 때 했던 인간의 사고 자체가 신에 대해 등 돌림”이라고 역설했다. 인간이 스스로를 추방한 것이다.
결국 가인과 아벨 이야기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며 그는 강조했다. 그는 “성경에서 가인의 제물을 하나님이 왜 받지 않으셨는가를 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성경은 그런 상황에 놓인 가인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말해준다”고 힘주어 말했다. 즉 그는 “제사에 성공한 아벨의 존재는 결국 가인의 존재 부정 이었다”며 “사람의 존재 자체가 내게 곧 부정이 되는, 이게 바로 인간 삶의 구조”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가인이 화가 난 대상은 아벨의 존재 자체가 아닌, 아벨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제사를 부정한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 전했다. “이는 영화 밀양의 아람이 엄마와도 마찬가지였다”며 “하나님께 사랑받는 대상을 제거하기 위해, 결국 자살로서 스스로를 부정한 셈”이라 그는 전했다. 그는 “하나님이 해야 할 일을 가인이, 그리고 아람이 엄마가 스스로 행하는 것이 아마 선악과의 교만”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그는 “하나님은 그런 가인에게 ‘네 동생이 어디 있느냐’고 질문 하신다”며 “그 질문은 ‘너의 있음은 바로 네 동생을 돌보는 자여야 한다”를 내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여, 그는 ”우리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 그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사람으로 세워가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때, 우린 타락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성경은 하나의 답을 말함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설교를 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성서의 드러난 텍스트가 아니”라며 “텍스트 속에 숨겨진 소위 ‘히든 텍스트(Hidden Text)’에 주목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히든 텍스트(Hidden Text)를 우리 삶으로 끌어 들여, 우리 삶으로 재 맥락화해야 한다”며 창세기 22장 이삭번제를 예로 들었다. 그는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4일 길을 가는데, 중간 과정이 생략돼 있다”며 “이는 서양문학의 변전”이라고 덧붙였다.
가령, 그는 “서양 문학의 탄생은 바로 주전 8C 호메로스 이야기에 있다”며 “이는 성경이 탄생했을 적과 비슷한 시기”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호메로스적 문체란 결국 이야기 안에 독자들이 궁금한 점을 빼곡히 채워 설명하는 것”이라며 “이와 달리, 성서의 문체는 생략을 통해, 도리어 풍부한 맥락과 함의를 불어 넣는 점”을 부각시켰다. 하여 그는 “이런 성경의 원근법적 문체로, 창세기 22장을 비롯한 성경 전체 뒤에 숨겨진 ‘히든 텍스트(Hidden Text)'를 추려내는 게 중요하다”며 예비 목회자들에게 설교 방법론을 당부했다.
특히 그는 “많은 한국의 목회자들은 설교할 때, 창세기 22장을 놓고 ‘아브라함은 믿음, 이삭은 순종의 챔피언’이라 설교한다”고 전했다. 이 지점에서, 그는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과연 아브라함이 사라와 상의했을까”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그는 “질문을 해야 한다”며 “신학자들은 안하지만, 예술가들은 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그는 마르크 샤갈의 ‘이삭번제’란 작품을 제시했다.
그는 “샤갈의 작품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으려는 순간, 저 위에는 십자가를 지는 예수의 모습이 보인다”며 “그 모습을 보며 우는 여인들과 더불어, 좌측에는 나무 한그루, 염소 한 마리 그리고 무릎을 꿇고 경악하는 사라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창세기 22장을 총체적으로 보기 위해서 사라의 시선을 통해서도 봐야 한다”며 “그 사건 속에서 예수 십자가를 두고 애통해 하는 여인들의 모습도 봐야 한다”고 성경을 바라보는 다층적 시각을 주문했다. 하여, 그는 “한 가지 정답이 고정돼 있지 않은, 내 삶의 상황에 따라 텍스트를 바라보는 의미는 달라지는 것”이라 역설했다.
한국 교회 강단 설교의 문제점을 밝히며, 김기석 목사는 자기의 생각을 힘주어 밝혔다. 그는 “문제는 성경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 있는 것처럼 배우고 가르친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그는 “성경을 주름 잡힌 텍스트(다른 해석이 많음)에서 매끈한 텍스트(정형화된 하나의 답)으로 환원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하여, 그는 “아무리 엉뚱하더라도 이런 해석 자체를 경시하는 것은 성서의 풍부한 함의를 상쇄하는 것”이라 힘주어 말했다.
이 대목에서 신학도였던 이승우 소설가에게 질문한 기억을 더듬으며, 정형화된 텍스트와 정답에 따른 삶의 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이승우 소설가에게 “머리에 구성한 상태로 이야기를 진행 시키는가”라는 질문에, 이승우 소설가는 “머리 속에 얼개 그림을 이미 그려놓지만, 소설을 쓰다보면 다른 길로 빠져 간다”고 대답했다. 이에 그는 “10중 중 9명의 소설가가 똑같이 대답했다”며 “결국 글쓰기는 내가 몰랐던 텍스트,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그는 논의를 확장해, “작가, 작품, 독자, 그 책은 시대에 다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고 전했다. 가령, 그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주류해석은 ‘샤일록은 나쁜 놈’이었다”며 “그러나 요즘은 ‘16C 주류였던 기독교 문명 속에서 박해 받던 아픔과 한을 폭로하는 주체’로 해석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그는 “문학처럼 성서해석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며 “시대는 성경을 다르게 보게끔 외연을 확장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그는 “경험과 사유는 세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시간의 흐름 따라, 심화와 확장의 경험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성경을 인문학적으로 봐야한다는 도발적 제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라며 “다만 인문학적 성서 읽기는 문학과 기독교를 비교하며, 기독교의 풍부한 함의를 도출해준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문학은 답을 내리지 않고, 질문으로서 끝없이 의미와 함의를 다층화 시킨다”며 “이런 질문 방식을 통해 현실에 당도하려 한다”고 역설했다. 하여 그는 “문학, 철학 등 인문학은 성서 텍스트에 대한 풍부한 질문을 던져 준다”며 “답을 내리는 능력보다 질문의 능력이 성서해석의 길이를 줄 수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그것이 성경을 우리 시대에 재맥락화 하는데 탁월한 도구가 된다”며 강연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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