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NCCK 언론위원회는 주목하는 시선 2019로 ‘다시 양승태’를 선정했다. 언론위는 “기성 언론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영장 발부 사건을 ‘헌정 사상 초유’라는 헤드 제목으로 일축함으로, 몰역사적인 시각을 보였다”며 “다시 말해 양승태 구속 사건의 본질적 의미를 되짚지 않았다”고 일갈했다. 이어 그들은 “양승태 대법원장은 법의 기준과 원칙을 저버리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재판을 했다”며 “보수, 진보 언론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상식과 원칙에 입각해 보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언론위가 설명하는 선정 이유 전문이다.
'1월의 (주목하는) 시선 2019' "다시 양승태"
양승태가 드디어 구속되었다. NCCK 언론위원회는 2019년 1월의 ‘주목하는 시선’으로 “다시 양승태”를 선정했다. 지난 12월의 「(주목하는)시선 2018」로 “다시 김 군”을 선정한데 이어 ‘다시’가 또 붙었다. NCCK 언론위원회가 주목하는 시선 작업을 처음 시작한 2016년 6월의 주제가 구의역에서 안전문 공사를 하다 숨진 19살 비정규직 김군의 비극을 다룬 “김군의 가방”이었다. 이 주제는 2017년 11월 “19세 현장 실습생의 죽음과 노동이 배제된 한국형 민주주의”로 이어졌고, 2018년 12월 “다시 김군”으로 되풀이되었다. 양승태는 2018년 7월 “사법농단의 주역, 괴물 대법원장 양승태”가 주제로 선정되었고, NCCK 언론위원회에서 사법개혁 긴급간담회로 <양승태 사법농단 – “대한민국 사법부는 죽었다”>까지 연 바 있다. “다시 김군”과 “다시 양승태”는 같은 주제가 되풀이되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 “다시 김 군”의 경우 죽음의 외주화 등 산업현장에서 비정규직 청년들이 위험에 몰리는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사고가 되풀이되는 현실을 고발한 것이라면, “다시 양승태”는 시민들의 분노에 비해서는 매우 더뎠을지 모르지만, 양승태의 구속이라는 뜻 깊은 진전을 이룬 상태에서 앞으로도 가야할 먼 길을 내다보며 주제가 선정되었다는 점이다.
예상 밖의 사필귀정: 양승태 구속
양승태의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직전, 서울구치소 앞에는 보수와 진보 진영 시민 수백 명이 모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현장을 보도한 어떤 기사에 따르면 누군가가 “양승태 구속! 박병대 기각!”이라고 외치자, 극우 진영에선 “통곡과 함께 저주의 고함소리, 섬뜩한 고함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차마 언론에 공개하기도 민망한 고함들이 고요한 검은 하늘을 향해 퍼져나갔다”고 한다. 반면 진보진영은 축제분위기였단다. 진보진영뿐 아니라, 상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사법농단의 주역 양승태가 당연히 구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양승태가 실제로 구속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 사람은 많지 않았던 듯하다. 한겨레는 “그동안 ‘방탄 법원’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법원이 전직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내줄지는 검찰도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썼고, 경향신문도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할 정도로 양승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이 놀라운 사태에 언론의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언론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말은 ‘헌정사상 초유’나 ‘사법부 치욕’이었다. 양승태 구속의 본질적인 의미를 짚기보다 ‘사상 초유’를 강조하는 것은 역사를 강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몰역사적 시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양승태의 구속이 사상 초유의 일임을 강조하는 언론은 대부분 그 이전 양승태 같은 괴물 대법원장은 헌정사상 처음 등장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사법부는 뿌리 깊은 ‘오욕과 회한의 역사’는 계속되었지만, 당시의 나쁜 대법원장들은 양승태 같은 부류는 아니었다. 그들은 독재정권의 압력에 굴복하여 인권의 최후보루라는 사법부 본래의 사명을 지키지 못한 수준이었다면, 양승태는 정권의 입맛에 맞을 재판을 찾아 그 결과를 좌우하는 것으로 정권과 적극적으로 거래를 시도한 것이다. 이런 대법원장은 처음이었다. ‘사법부의 치욕’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사법농단에 대해 내부에서 계속 목소리를 내어온 춘천지법 류영재 판사는 “범죄자의 명예와 신뢰가 범죄자의 범죄행위가 아닌 검찰과 경찰 때문에 추락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일갈했다.
대부분의 신문이 양승태의 구속을 1면 톱으로 보도했지만, 유독 조선일보만은 양승태 구속 관련기사를 1면에 싣지 않았다. 대신 조선일보 1면에는 어느 프리랜서 기자가 손석희 JTBC 대표이사로부터 폭행을 당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조선일보는 “사법부 신뢰 하락이 ‘사법농단’ 지적한 판사들 때문”이라는 듯, 사법농단을 지적한 법관들이 다수 소속된 ‘인권법연구회’를 비난하는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다. 양승태의 구속을 사법부 변화의 새로운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신문은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등인 반면, 조선일보ㅡ 중앙일보, 동아일보, 세계일보 등은 사설에서 양승태가 부적절한 행동을 했지만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는 궤변으로 양승태의 구속이 지나친 것이라고 지적하거나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 수사를 보는 시각
한국사회에서 어떤 일을 판단할 때 원칙과 기준에 입각해서 판단하기보다는 진영논리에 의해 모든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법원 내부의 보수파들은 양승태의 구속을 사법권과 검찰권의 대립, 또는 검찰의 사법부에 대한 부당한 침해 등으로 보고 있다. 보수 정치권은 좌파독재의 사법권 장악 시도라고 주장한다. 사법부가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았을 법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사법부에서 블랙리스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조사하려 하자, 일부 판사들과 언론, 정치권에서는 영장 없는 수색은 위법하다는 주장을 강하게 폈다. 김명수 대법원은 이 벽을 넘지 못했다. 자기 손으로 철저히 조사하여 내부 징계할 사람은 내부에서 징계하고 혐의가 엄중하여 형사고발할 사람은 형사고발하는 방식으로 가지 못하고, 처음부터 수사를 의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영장이 없는 컴퓨터 조사는 위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보수진영의 태도였다. 영장 없는 조사는 위법이라는 주장은 상식적으로는 영장을 받아 적법한 조사를 하라는 이야기여야 하는데, 막상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영장이 청구되자 법원의 분열이니, 행정부에 속하는 검찰이 사법부를 압수수색하는 것은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느니 하는 구차한 이유를 들먹이며 또다시 결사적으로 검찰수사를 가로막고 나섰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국민들의 따가운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법농단 관련 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나 구속영장은 번번이 기각되었다. 법원 자체조사도 하지 말고, 검찰 수사도 하지 말라는 것은 사법농단의 추악한 진실을 덮고 그냥 이대로 가자는 얘기일 뿐이다.
자유한국당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청와대의 하명수사라고 비난하면서 좌파 독재의 사법부 장악이 시작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양승태의 구속에 이르게 된 사법농단 수사는 청와대의 하명이 아니라 국민의 명령이었다. 국민 위에 군림하여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국민의 이익을 흥정의 대상으로 삼은 오만방자한 사법엘리트 관료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국민의 추상같은 명령이 검찰수사라는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다. 사법부 장악이란 말도 참으로 오랜 만에 듣는 얘기였다. 민주화 이후 정권이 사법부를 장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자유한국당이 집권당이었던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정권의 사법부 장악이라기보다는 행정부와 사법부가 각각의 권력과 권위를 존중하면서 사이좋게 지내는 유착이 문제였다. 과거 독재정권의 사법부 장악이란 정권이 사법부에 특정 정치적 사건의 처리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방식이었다면,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은 사법부가 행정부를 상대로 정치적 사건의 판결을 두고 흥정을 제안한 새로운 형태의 유착을 말하는 것이었다. 사법농단에 대한 현재의 수사는 정권의 사법부 장악이 아니라,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시절 정권과 사법부의 범죄적 유착관계를 바로잡아 삼권분립의 원칙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사법권이 유린당할 때나 박근혜 정권 시절 사법농단이 한창일 때, 그 문제점에 대해 단 한마디도 안하던 세력이 사법부 장악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는 짓이다.
법원은 변화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은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의 속도는 변화를 바라는 대중들의 마음을 채우기에는 느리기 짝이 없다.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한데, 변화를 가능케 할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것은 우리를 초조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매우 더디기는 해도 우리가 이룬 성과를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 등산에 비유하자면 아직도 정상은 저 멀리 남아있고 다리는 힘이 빠져가지만, 돌아보니 우리가 출발한 지점이 아득해 보일 만큼은 우리가 올라온 것이다. 이 변화를 가능케 한 것은 기본적으로 촛불의 힘이지만, 사법농단 사태를 방관할 수 없었던 소장 판사들의 작고 떨리는 목소리가 이 변화를 가져온 실질적인 동력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양승태가 구속되기 전, 내일신문과의 인터뷰(1월 7일자)에서 류영재 판사는 “사법농단 사건은 판사들이 스스로 진상규명 요구를 해서 여기까지 왔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법원 자체의 1차, 2차 조사와 특조단 조사, 검찰 수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은폐 시도가 있었지만 그것을 막은 것은 일선 판사들이다. 매 국면마다 판사들이 계속 자기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는 결단을 한 것이고 마지막 탄핵 검토 필요성에 이르기까지 동료에 대한 처분이 따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사안이 중대한 위헌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결의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을 진보나 보수의 잣대로, 특히 어느 진영에 유리한지를 따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에서 문제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시기에는 법관이 법과 양심만이 아니라 때로 안기부의 요구에 따라 재판 하였다면, 사법농단 시기에는 법과 양심과 사법 엘리트의 요구에 따라 재판하였다는 데 있다. 사법농단을 은폐하지 않으려던 소장 판사들의 몸부림은 오로지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하겠다는 헌법적 가치를 밀고 나간 것이다. 이것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게임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게임의 룰이다. 법관은 민주주의라는 게임에서 심판관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는데, 사법농단은 법관이 심판이 아니라 때로 한쪽 편의 선수로 뛰고, 때로는 특정 편을 위해 게임의 규칙까지 바꿔주는 그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양심의 명령이다.
국민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사법부에 사법농단 시절을 당연시하는 ‘양승태의 아이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고, 그래도 국민들이 사법부에 희망을 걸어보는 이유는 법원 밖에서 잘 알 수 없는 사법 제도의 운용과 관련된 사법농단 사태가 소장 법관들의 노력에 의해 이만큼 밝혀지고, 양승태의 구속까지 왔다는 점이다. 사법농단에 관련된 법관들에 대한 탄핵이 필요하다는 법관회의의 표결에서 찬성이 53표, 반대와 기권을 합쳐서 52표가 나왔다는 것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팽팽한 균형 속에서 사법부의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조금 더 많았고, 저울의 추가 이제 돌이킬 수 없게 기울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법원 내에서 사법농단에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낸 판사들이 사회적 기준에서 꼭 진보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판사사회가 지극히 보수적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들의 상당수도 사회적으로 보면 보수에 속한다고 봐야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법농단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이들의 선택은 우리의 역사를 크게 진보시키는 역할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역사의 진보를 진보진영만이 이뤄낸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보주의자들의 천박한 오만일 뿐이다. 양심과 상식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만, 특정한 시기에 특별한 위치에 서있는 사람들 중 최소한 일부가 양심과 상식을 지키지 않는다면 역사의 진보는 기대할 수 없다.
아직도 먼 사법개혁의 길
양승태의 구속영장 발부는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도 깜짝 놀랄 만큼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비유하자면 양승태의 구속은 우리가 식당 문 안에 들어선 것이지 아직 밥을 먹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밥을 먹어도 그저 끼니만 떼운 것일 수도 있고, 제대로 맛있게 먹을 수도 있고, 이걸 돈 내고 먹어야 하냐는 화나는 경우일 수도 있고, 먹고 배탈이 나 고생할 수도 있다. 양승태 구속으로 이제 비로소 사법농단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기회가 도래한 것인데,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 준비가 되어있을까?
양승태의 구속이 꼭 그의 유죄 판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벌써부터 양승태나 사법농단에 관여한 법관들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하기에 무리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승태 구속 당일 법원 게시판에는 현직 부장판사 한 사람이 “재판개입 의혹은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헌법상 “법관은 (자신의) 사건과 관련해 ‘독립하여’ 심판할 권한이 있을 뿐 다른 법관이나 외부 사람은 그에 관여할 권한 자체가 없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법관 인사권을 가지고 있거나 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관이 사건 담당 법관에게 청탁을 한 경우”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화일보 2019년 1월 28일) 류영재 판사도 “재판거래 등이 입법미비로 무죄라 아무 문제없다는 주장”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 “가장 두려운 시각”이라면서 “앞으로 정정당당하게 대법관이 청와대와 특정 재판의 결론을 위해 협의하고 법원이 재판을 앞둔 사안에 대해 법률자문을 해주고, 법관을 사찰하고 대신 법률문서를 써주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라고 반문했다.
조선일보 등에서는 양승태 구속 이후 재판할 맛이 안 난다며 사표를 던지는 판사들이 많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사법농단에 직간접으로 간여한 판사들이 법원에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양승태를 비롯하여 사법농단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되는 법관들의 재판을 이들이 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은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특별 재판부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자유한국당 등 보수 세력과 양승태가 세운 사법 엘리트들은 특별재판부 도입에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양승태가 키운 사법 엘리트들이 만약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자들의 재판을 맡게 된다면 입법미비를 이유로 상당 부분 무죄를 선고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직권남용죄는 일반 행정관료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지 사법농단이나 과거 공안조작 사건 같은 특수상황을 상정하여 입법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고문이나 불법구금 등 수사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인정되어 수사관이 처벌받은 사례는 있지만, 고문조작사건에서 고문을 묵인한 검사나 법관이 민ㆍ형사상의 책임을 진 사례는 단 한건도 없다. 사법농단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사법방해죄나 법왜곡죄의 신설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법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개정안은 고 노회찬 의원이 정성을 쏟았던 사안이기도 했다. 독일은 나치 시절과 동독 공산정권 시절 상당수의 법관과 검사들이 재판권과 검찰권을 왜곡하여 국민의 인권을 법의 탈을 쓰고 유린한 경험에 대한 반성에서 법왜곡죄를 도입했다. 강제징용 재판과 같이 대법관들이 행정부와 재판에 대해서 협의한 것은 명백한 삼권분립 위반이지만, 직권남용죄의 법리를 구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사법방해죄나 법왜곡죄 도입은 가능할까? 이 또한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18년 7월의 <시선>에서 자세하게 지적했지만, 모든 법안이 거쳐 가야 할 국회 법사위원회의 위원장은 ‘새끼 양승태’ 여상규로 조작간첩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김정인씨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장본인이다. 여상규는 양승태에 대한 구속 영장이 발부되자 양승태처럼 열심히 일한 대법원장이 검찰 출신 판사에 의해 구속된다면 “그저 몸보신 걱정이나 하고 일이나 적당히 하는 체 하면서 놀고먹는 공무원 풍조를 불러들이지 않을까 심히 걱정할 수밖에 없다”면서 사법농단 관련 법관들을 주관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해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촛불은 박근혜 정부의 퇴진을 가져왔고, 양승태의 구속으로 사법부에도 일대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촛불에도 변함이 없는 것은 국회였다. 1960년 4월혁명 당시 자유당이 다수였던 4대 국회는 임기가 2년 남았음에도 새로운 헌법을 만들고 해산해버렸다. 1987년 6월항쟁 후 12대 국회 역시 임기가 2년 가까이 남았음에도 직선제 헌법을 만들고 해산하여 13대 국회를 새롭게 구성했다. 그런데 촛불항쟁 당시 국회는 탄핵을 가결시켰다는 이유로 촛불항쟁의 한 주역인 것처럼 되면서 해산을 모면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 당시 물 밑에서의 민심 이반으로 자유한국당이 원내 제1당 자리를 놓치는 이변이 발생했다고 하지만, 수구세력이 여전히 국회 내에서 개혁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사법농단을 제도적으로 정리하려면 몇몇 분야에서의 법률 개정이나 새로운 입법이 불가피한데, 국회가 오히려 사법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편이다. 법관이 동료 법관의 탄핵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실제로 사법농단 관련 법관의 탄핵이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이다.
사법부는 당분간은 내부적인 혼란과 갈등을 겪게 될 전망이다. ‘양승태의 아이들’이 상층부에 버티고 있는 한 – 아니, 꼭 상층부만은 아니다 –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사법 엘리트들과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사법부를 재건하려는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양승태나 차한성, 박병대, 고영한, 임종헌 등은 법복을 벗은 전직 신분이지만, 당장 현직 법관으로 기소되는 사람들이 줄지어 나올 것이다. 상고법원 도입을 꿈꾸며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와 흥정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은 최소 15건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쌍용차 일부 사건이 해결되고, 원세훈 등 국정원 댓글 사건이 유죄 확정되고, 말 많고 탈 많았던 강제징용사건도 피해자의 승소로 마무리 되었지만, 아직도 이석기 등 통진당 의원 사건, 전교조 관련사건 등 여러 건이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사건의 상당수는 재심을 요구할 것인데, 이 과정에서 보수 성향이 강한 사법 엘리트들과 소장 판사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예상된다.
사법부 내부에서의 개혁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법부 내부의 개혁은 역시 사법부가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촛불에 의해 탄생한 김명수 사법부도 쌍생아인 문재인 행정부처럼 큰 기대 속에 출발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법부 내에서는 진행은 더디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추진되고 있다. 사법제도의 운용과 관련된 부분은 일반 시민들이 잘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사법부 내부의 개혁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소장 판사들이 적극적으로 사법부 내에서 어떤 논의가 진전되고 있는지를 시민들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지난 7월의 <시선>에서도 지적했지만, 1987년 개헌 과정에서 국민들은 사법부의 권한을 상당 부분 회복시켜 주었다. 안타깝게도 1987년 국민들은 군사독재만 몰아내면 된다는 생각에 군사독재에 협력했던 자들이 사법부 내에서 엘리트로 성장하여 결국 양승태 같은 괴물 대법원장을 낳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류영재 판사는 “사법부의 독립은 법원이 쟁취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준 것이다. 법원은 독재정권의 편이었던 부끄러운 과거를 뉘우치고 정권과 선을 긋고 재판독립을 지켜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막았어야 하는데, 거꾸로 법원 조직의 성장을 위해 총칼도 없는 청와대에 스스로 접근했다”면서 “우리 국민들은 사법부를 완전히 믿고 독립시켜줬는데, 법원은 독립을 스스로 놔버렸다”고 고백했다. 이 같은 반성은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사법부가 다시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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