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열린교회(김남준 목사)는 ‘제3회 웨스트민스터 컨퍼런스 인 코리아’를 개최했다. 최근 열린 교회 본당 예배실에서 열린 이번 세미나 주제는 ‘4차 산업혁명과 개혁주의 신학’이었다. 이날 특별 강연으로 김남준 열린교회 담임목사 겸 총신대 조교수는 ‘신학공부를 위한 인문학’이라는 주제를 전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신학 교수이기도 한 그는 “인문학은 인간이 누구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지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신학공부에 꼭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인문학의 어원을 살펴보며, 인문학의 존재 이유를 생각했다. 그는 “인문학은 자유 학예(aretes liberales)를 지시하며, 이는 고대 그리스 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지식”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당시 노예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하면 되었지만, 자유인 특히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사회 구성요소를 결합하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책임을 지닌 사람들”이라며 “이를 위해 그들은 자유롭고 창조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로 교육되어야 했다”고 전했다.
하여, 그는 “인문학의 가치는 인간을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데 있다”며 “교양 있는 사람이란 진리를 발견해 삶과 사회에 적용하며 나아가 관습과 기성의 사고체계를 깨뜨리는 창의적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이 지점에서 인문학 공부가 신학에 어떤 유익을 줄까? 그는 “성경을 통해 계시된 믿음의 대의는 양보할 수 없는 진리”라며 “그러나 어떤 분야의 학문에 종사하든지 인문학적 훈련은 편견과 아집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고, 사유를 진전시켜 나가 사상들을 통합하여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 그는 “인문학적 사고는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진리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적인 사고를 배양해 준다”며 “눈에 보이는 현상의 배후에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준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당시 로마 카톨릭의 공로주의를 부수고 오직은혜, 오직믿음, 오직성경을 주창한 운동이었다. 여기서 부터 카톨릭의 교황권이 무너졌고, 개인의 성경 접근권이 용이해져 금속활자가 발전됐다. 하여, 정보량은 폭발적으로 증가돼, 근대 계몽주의 태동을 용이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교황의 정치적 입지 약화로 베스트팔렌조약이 이끈 근대 주권 국가의 탄생까지 이어지며, 근대의 시작은 루터의 종교 개혁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인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신학이 성경적 진리가 아닌 비 진리적 관습을 부수고 하나님이 의도하지 않으신 인간에 대한 속박들로부터 벗어나,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진짜 자유를 발견할 수 있는 정신을 함양해준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학문과 기술에 관한 지식 그 자체는 인간이 그 기술을 사용해 참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도덕적 판단을 내려 주지 못 한다”며 “인문학의 근본 관심사는 인간이기에, 인간은 만물의 중심에 있다는 관점을 견지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현실적 행복과 직결된다”고 했다.
가령 그는 “‘인간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우주의 의미는 무엇인가?’ ‘선악은 무엇인가?’ ‘인간의 종말은 어디인가?’ ‘시간과 공간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인문학이 던져준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그는 “인문학은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 현실과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문제들을 가지고 씨름을 시작 한다”고 역설했다.
다만 그는 “인문학이 거대한 자본의 흐름 속에서 과도한 소비로 인한 말초자극 문화의 과잉, 그로 인한 관계의 단절, 돈에 대한 맹목적 추구, 거시서 비롯된 자아상의 상실 같은 현대적 질병을 어느 정도 경감시켜 줄 수 있다”며 “그러나 온전한 치유에 이르지는 못 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그는 “인문학이 신학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필터링 돼 이용해야한다”며 “인문학이 궁중의 시녀들을 다스리는 상궁이라면, 신학은 상궁의 섬김을 받으며 상궁과 모든 궁녀들을 다스리는 여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모든 지식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며 “모든 지식은 사물과 관련되며,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물은 창조된 것”이라고 전했다.
왜냐면 그는 “그 사물은 시간과 공간, 혹은 인간의 상상력 안에 존재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지성의 관념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라며 “자연과학이나 인문학은 신학을 대치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신앙으로 발견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창조 세계에서 연역해 내려오는 기능에 국한 된다”고 밝혔다.
한편, 그는 “인문학 안에 인간의 궁극적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신학을 공부하기 전 인문학적 사유의 훈련이 되어 있다면 기독교를 통해 발견하는 진리가 그에게 더욱 탁월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여겨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그는 어거스틴이 고백록에서 한 말을 인용했다. 내용은 이렇다.
“제가 먼저 당신의 성경을 익숙히 알아서 친숙하게 됨으로서 그 달콤함을 맛본 후에 저런 다른 책들을 읽게 되었다면, 아마 그것들은 저의 견고한 경건의 뿌리를 느슨하게 찢어놓았을 것입니다. 비록 이미 흡수한 건실한 사랑의 감정이 남아 있었다고 할지라도, 저는 그 책들만 가지고 연구해도 누구든지 성경을 읽을 때와 똑같은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어 그는 “인문학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신학을 공부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며 “다만 지식의 깊이와 사상의 전체성에 있어 상당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목회자에게 있어 인문학적 교양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것으로 인간들을 이해하고 신자뿐 아니라 불신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목회자들은 이미 훌륭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설교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 아닌, 그렇지 못한 사람들, 특히 교회 안에 있으나 진리에 회의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과 심지어 불신자에게도 설교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인문학은 인류역사의 영향을 끼진 위대한 문사철의 작품들을 통해 사유방식을 배우는 학문”이라며 “나아가 보편인류가 추구해 온 정신적 가치와 사고방식에 대한 지식을 폭넓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인문학은 사유를 훈련하고, 삶의 존재 방식에 질문하는 훈련을 더하여 기독교 신앙이 절실히 요구하는 삶의 의미와 관련된 해답을 불신자에게 던져 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은 목회와 신학에 풍성한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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