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27일 오전 미국 뉴욕에 도착하면서 마침내 북미대화의 막이 오르게 됐다.
2009년 12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평양방문 이후 1년7개월만에 북미 양국이 대화테이블에 마주 앉게된 것이다.
이번 북미대화는 6자회담으로 가는 길목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지난 22일 인도네시아 발리 남북 비핵화 회담으로 생성된 대화의 동력을 6자회담 재개로 이어가는 '중간경로'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이에 따라 공식 대좌하는 평양과 워싱턴이 어떤 분위기를 연출하고 어떤 수준에서 접점을 모색하느냐가 앞으로 6자회담 재개의 속도와 방향을 가늠해보는 풍향계가 될 전망이다.
우선 주목할 대목은 이번 대화의 성격과 전망을 둘러싸고 양측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표출되고 있는 점이다. 북한은 "6자회담과 북미관계의 전망을 낙관한다"(김계관 제1부상)며 국면전환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넣고 있으나 미국은 "예비회담"(커트 캠벨 미 동아태 차관보)이라고 일찌감치 선을 긋고 있다.
이는 이번 대화에 임하는 양국의 근본적 입장차를 드러내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식량을 비롯한 경제지원과 관계정상화를 이끌어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미국은 과거의 협상패턴이 되풀이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6자회담 재개에 앞서 북한으로부터 분명한 비핵화 사전조치를 끌어내겠다는 입장이다.
장외(場外)에서 확인된 이 같은 시각차는 28일부터 시작되는 공식대화 무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의 관심은 이번 북미대화에서 다뤄질 의제에 쏠리고 있다.
일단 양측이 지난 2009년 12월 북미대화 때 다뤘던 의제들을 상정해볼 수 있다. 당시 미국은 북한에 대해 9.19 공동성명 이행과 6자회담 복귀선언을 요구했고 북한은 6자회담 복귀 이전 ▲평화협정 논의 ▲북.미관계 정상화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했었다.
그러나 이번 북미대화를 둘러싼 상황과 양측의 전략은 판이해보인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공개라는 메가톤급 이슈가 등장하면서 기존 핵협상의 틀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뀐 셈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한국과 보조를 맞춰 6자회담 재개에 앞서 비핵화 사전조치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UEP를 포함한 모든 핵개발 활동의 중단이 핵심이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9.19 공동성명 이행 확약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의 임시 중지도 사전조치의 리스트에 올라있다.
이에 비해 북한은 평화협정과 북미관계 정상화, 제재해제 등 '고유 어젠다'를 다시 한번 제기하면서도, 조속히 6자회담을 열어 UEP 문제를 논의하자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6자회담 틀에서 UEP의 합법성을 주장하고 핵능력을 과시하며 협상력을 키우려는 전략이다.
양측의 이 같은 입장차 속에서 최대 관건은 비핵화와 관련한 북한의 태도변화 여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미국의 비핵화 사전조치 요구에 어느정도 호응하느냐가 북미대화의 지속 여부와 6자회담 재개흐름을 좌우하는 변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대 어젠다로 등장한 UEP를 놓고는 양측이 물러설 가능성이 높지 않다. 미국은 UEP가 9.19 공동성명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1718, 1874호)를 위배하는 것이라고 보고 6자회담 재개에 앞서 프로그램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으나 북한은 이를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며 반대논리를 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머지 비핵화 사전조치를 놓고는 북한이 일정정도 수용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특히 IAEA 사찰단 복귀와 같은 상징적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관측이다. 북미대화의 동력을 살리려면 북한으로서도 일정한 '성의표시'를 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대북 식량지원 문제는 이번 북미대화에서 다뤄질 긴급한 의제다. 북한으로서는 이번 북미대화를 계기로 미국이 '통 큰' 지원을 희망하고 있으나 미국은 엄격한 분배모니터링을 요구할 것으로 보여 어느정도 접점을 찾을지 주목된다. 다만 북한으로서는 대화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이 요구하는 식량지원 전제조건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대화는 양측이 의미있는 '협상'을 시도하기 보다는 서로의 입장차이를 확인하면서 절충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탐색전'의 성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관전포인트는 이번 북미대화 이후의 '후속대화'다. 이번 예비회담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한 북미 양측은 후속 본회담을 이어가며 합의점을 모색해나갈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는 한국과 중국도 개입하면서 훨씬 고차원적인 외교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한국은 미국과 역할분담을 꾀하며 북한의 비핵화 사전조치를 이끌어내는데 총력전을 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상황이 교착상태에 놓일 경우 6자회담으로의 직행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흐름에서 볼 때 이번 북미대화는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서로 협상의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본격적 외교전의 서막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