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차> 변영주 감독/ 김민희, 조성하, 이선균 주연.

문호는 사라진 약혼녀의 집으로 간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지문조차 남기지 않고 증발한 선영. 문호는 옷장을 뒤지다가 구석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것은 문호가 선영에게 선물로 준 공작나비의 번데기다. 취미로 나비를 키우고 싶다는 그녀에게 수의사인 문호가 구해준 것이다.

나비가 되지 못하고 푸르스름한 껍데기로 죽은 이 벌레는 영화의 전체적인 상징이다. 이 사체의 껍질은 선영의 빈 집, 문호가 모르는 선영의 과거와 일치한다. 평범한 행복을 꿈꾸었지만, 단 한순간도 행복하지 못했던 선영의 공허한 마음을 형상화하는 상관물이기도 하다. 옷장 구석에서 서서히 썩어가는 번데기를 문호가 목격할 때. 호숫에서 토막난 시체를 담은 가방이 떠오르는 그 순간. 문호가 사랑했던 선영은 실체를 알 수 없는 낯선 타인으로 그에게 다가온다.

결혼을 앞둔 문호와 선영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문호의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는 두 사람은 서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어머니께서 스카프를 좋아하실까?"라는 선영의 질문에 문호는 아마 그럴 거라고 얼버무린다. 선영은 시어머니께서 자신이 고른 스카프의 색감을 마음에 들어하실지 고민이다. 부모님께 처음으로 인사드리는 자리여서 음식물이 옷에 튈까봐 점심도 빵으로 대신한 그녀. 반면, 문호는 선영의 걱정을 추측과 짐작으로 넘겨짚으며 다 잘될거라고 무심하게 반응한다.

감독은 첫 장면을 통해 두 사람이 각자 무엇에 중점을 두는지 보여준다. 문호에게는 선영의 사랑이 전부지만 선영에게는 자신이 선택한 것, 이에 대한 시어르신들의 반응, 그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이 더 중요하다. 자신의 고향에서 지옥같은 일들을 겪은 선영에게 문호의 고향은 나비의 새로운 고치처럼 상징적이다. 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것처럼, 선영에게 고향은 자신의 태생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피안(彼岸)이다.

이미 배척당한 경험이 있는 그녀는 자신이 또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강박처럼 안고 있다. 선영은 자신이 선택한 것에 집착한다. 선택 전후로 극단적인 삶을 경험한 그녀에게 선택은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다. 하지만 무난한 삶을 산 문호는 낙천적이다. 선영은 문호의 그런 조건들을 사랑한다. '문호'가 아닌 '문호의 생활'이 행복을 줄 것이라고 믿었기에.

"그녀는 항상 혼자였어요." 이 말은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갑자기 사라진 선영을 찾느라 문호가 그녀의 주변인물들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주변에 고향 친구나 회사 친구도 없느냐는 문호의 질문에 사람들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자기 처지가 그랬으니까요." 선영이 잠시 서류 정리 일을 했던 화장품 회사의 책임자가 문호에게 말한다. "일찍 결혼에 실패한 사람이었잖아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항상 갖고 있었어요."

선영의 주위에는 그녀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선영이 진짜 선영이 아닌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오직 문호만 알게된다. 문호는 그녀를 찾고 싶다는 생각에 평소 관계가 뜸했던 형 종근에게 도움을 청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 여자를 찾아야한다는 동생의 절박함에 종근은 선영의 흔적을 찾아나선다. 아내가 근근이 꾸려가는 분식집 수입에 의탁하는 종근은 편의점에서 맥주를 훔치는 동네 양아치도 제압하지 못하는 전직 형사다. 하지만 선영의 모자이크를 완성하며 종근은 잃어버렸던 감을 되찾는다.      

영화를 보고 선영의 선택을 비난하기란 쉽지 않다. 부모가 남긴 빚 때문에 돈을 빌렸고, 그 돈을 막느라 카드현금서비스를 받았고, 그러다 사채를 썼고, 이자는 급속도로 불어나고…… 혀를 도끼처럼 휘두르며 선영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고향을 등지는 것도 여의치 않았던 집요한 악순환.

"재수씨에게 미안하지 않아?"라는 말은 극중 종근이 주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방바닥에 배개를 깔고 무료하게 구인란을 보는 종근이 수사를 하면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 과정은 선영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종근은 초조해하는 문호와 파란(波瀾)을 겪은 선영의 과거를 오가며 인물들의 심리를 양분한다.   

특히 핏물 안에서 날개를 떨며 날지 못하는 공작나비의 이미지가 선영의 선택과 결탁하는 숙명은 영화 제목인 '화차(火車)'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화차는 지옥에 있는 수레로, 불이 일고 있는 이 수레는 죄인을 실어나른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죄질의 정당성은 중요하지 않다. 자본이라는 체제가 개개인의 일상에 균열을 내는 과정이 중요하다.

문호의 품안에서도 악몽의 여운 때문에 몸을 떠는 선영을 본다면 행위의 옳고 그름은 큰 의미가 없다. 비록 지옥같은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남자친구가 낮은 콧노래로 불러주는 그린슬리브스(영어 민요)를 듣는 시간은 선영에게 유일한 행복이다.  

오프닝신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았던 대화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변영주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에 기인한 뒷심이다.  한 장소에 공존했던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동시에 잡아내는 편집감각. 인물과 인물이 스치는 미묘한 경계로 영화의 호흡을 맺고 끊는 전환점은 매끄러운 심리묘사로 이어진다.  

이 영화에서 김민희는 특유의 무표정으로 선영의 복잡한 심리를 섬뜩하게 표현한다. <굿바이 솔로>이후 새로운 연기력을 보여준 그녀는 <박쥐>의 김옥빈처럼 열망과 파국이라는 정서로 또다른 감각을 보여준다. 조성하 역시 <황해>와는 완전히 다른 강렬함으로 영화를 주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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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김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