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스카프를 쓴 늙은 여인이 혼자 런던 거리를 걷는 것으로 시작한다. 구부정한 모습으로 상점에 들어선 여자는 우유 한 팩을 산다. 그러다 신문을 본다. 1면에는 테러리즘이 대서특필 되어있다. 여자는 신문이 얼마냐고 묻는다. "50센트입니다." 여자는 우유 값과 신문 값을 같이 계산하며 지폐와 동전들을 계산대에 올려둔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신문이 얼마라고 했죠?"
<철의 여인>은 '대처 수상'이 아닌, '마가렛 대처'라는 여성의 내면을 깊이 파고든다. 남편 데니스와 사별한 대처가 그의 유품을 정리하는 며칠이 이 영화의 현재다. 알츠하이머와 신경 쇠약, 환각 등에 시달리는 대처는 '늙고 병든 여자'다. 이미 죽은 데니스의 환상은 그녀에게 위안을 주는 동시에 절망적인 현실을 각인시킨다. 영화는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는 대처의 손끝에서 소품을 이용한 연상 작용을 통해 과거의 시점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마가렛 대처는 1925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서머짓 칼리지에서 철학과 화학을 전공한 뒤, 교육부 장관과 보수당 당수를 거쳐 총리가 되었다. 이는 영국 최초일 뿐만 아니라, 서구 사회 최초로 첫 여성 총리가 재임한 순간이었다.
영화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대처의 일면을 모호하게 윤색한다. 다양한 사실들을 다채롭게 열거하지만 그것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특히 정치인이라는 특성상 대외적 '이미지'와 제도를 좌우하는 '선택'이 일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논란 대신 보편적 감성이 산재해 있고, 정치가 아닌 정치인 마가렛 대처가 있다.
감독이 추구하는 것은 대처의 의상변화를 통해 시각적으로 나타난다. 영화 초반 대처의 의상은 대부분 파란색이다. 냉정과 소신, 이성을 관철하는 이 색감은 그녀의 성공과 함께 정형화된 검은 정장으로 퇴색한다. 대처가 총리직을 사임할 때는 붉은색 투피스로 마무리된다. 정치로 점철된 11년이라는 시간을 열정과 감성으로 봉인한 지점에서 감독은 가치판단을 최대한 배제하고 대처의 여성성에 골몰한다.
<철의 여인>에는 인상적인 대사들이 있다. "생각이 말을 만들고, 말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운명을 만든다.", "요즘 사람들은 기분을 중시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신념이다." 이 대사들은 대처의 소신을 반영한다.
그녀가 노조문제로 한참 고심하고 있을 때, 주변 동료들은 모두 그녀를 만류한다. 그녀 근처의 남성들은, 대처의 아버지를 제외한다면 항상 그녀를 말렸다. 단 한번, 그녀를 총리직으로 추대할 때를 제외한다면. 남성은 대처에게 벽과 같은 존재였다. 남자 의원들 한가운데 그녀가 위치한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 구조 내에서 목도하는 남성들의 시선과 아우라는 더욱 완고하고, 그것에 맞서 영국의 불황(일명 ‘영국병’)을 타파해야 할 대처의 선구적인 위치는 부각된다.
회의 도중 정전이 되었을 때 핸드백에서 손전등을 꺼내는 대처의 모습은 그녀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녀가 추진하려는 강경한 정책에 맞서는 남성의원들에게 대처는 이렇게 말한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이 약을 먹어야 영국은 건강해진다." 그녀의 동료들이 권력을 추구하며 입장을 수시로 바꿨다면, 대처는 지지율보다는 더 나은 영국을 위해, 영국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선택하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다. 대처에 대한 평가는 대내외적으로, 극단적으로 엇갈리지만 결과가 아닌 시작이라는 측면에서 대처의 진정성은 '국민'이었다.
이미 <맘마 미마!>를 통해 호흡을 같이 했던 필리다 로이드 감독과 메릴 스트립은 더 긴밀한 감각으로 조응하며 영화에 접근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영화의 입체적인 구성은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지만, 배우 연기의 변곡점이 된다. 이 분야에선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전문이다. <더 리더>에서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를 최대화하기 위해 영화의 프레임을 배우에게 잘 맞는 옷으로 재단한 것처럼, 필리다 로이드 감독은 애초에 마가렛 대처도, 관객도 아닌 메릴 스트립에 무게중심을 두고 영화를 진행한다.
메릴 스트립의 관록은 아카데미에 17번 지명되었다는 사실이 전부가 아니다. 그녀는 <디 아워스>에서 버지니아 울프로 열연한 니콜 키드먼과 줄리안 무어 사이에서 극의 중심을 양분했으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다이앤 키튼과는 <마빈스룸>에서 섬세한 앙상블 연기를 보여줬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프란체스카 존슨을 연기하며 전환점을 맞이한 메릴 스트립이었지만,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은 <데드맨 워킹>의 수잔 서랜든이 받았다. 2006년에는 <악마를 프라다를 입는다>로 독보적인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를 연기했지만, 마찬가지로 여우주연상은 <더 퀸>의 '엘리자베스 여왕' 헬렌 미렌이 수상했다.
올해 메릴 스트립은 <철의 여인>에서 두 번 다시 소화하기 힘든 비중 있는 존재감으로 모사연기의 방점을 찍었다. 물론 이야기의 산만한 얼개와 엉성한 구성, 이 모두를 상쇄하고 묘한 여운까지 선사하는 것은 오로지 메릴 스트립의 연기력에 기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