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동성애문제]동성애자들, 그 가운데 기독교인이지만 동성애를 지지하거나 동성애자인 경우도 상당한 것으로 관련 단체들이 추정하고 있는 가운데, 기독교 변증가이자 칼럼니스트로 미국내 동성애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 박사가 몇 해 전 유튜부에 올려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동영상 'Answering the Tough Questions Asked by Homosexual'(동성애자들의 곤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주고 있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요 질의응답을 게재한다.(편집자 주)
1. 나는 동성애자이며 또한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니 뭐가 문제입니까?
- 물론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진짜 흥미로운 것은 신약 성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예수여’라고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분은 그의 백성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라고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으라고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미움이건, 탐욕이건 성적인 문제이건, 약물 또는 음주의 문제이건 말이지요.
그분은 긍휼하심으로 잃어버린 영혼인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변화 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죄에서 구원을 당을 수 있도록 하셨죠.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당신은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요. 이것이 바로 하나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변화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니까 문제는 '내가 감상적인 사랑을 갖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당신의 사랑(동성애일지라도)이 진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당신이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변화된 삶에서 증거로 드러날 것입니다.
2.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한 번도 동성애에 대해서 언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중요한 것은 사랑과 은혜에 관한 것이 아닐까요?
- 확실히 이것은 사랑과 은혜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사랑인가요?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동성애를 정죄하지 않으셨다고 말한다면,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소아성애를 정당화하는 것인가요? 주님께서 소아성애를 정죄하시 않으셨다는 이유로 제가 아동학대를 정당화해도 되는 건가요? 예수님께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셨다고 해서 배우자 학대, 구타가 정당화되나요?
주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는 수간, 즉 동물과 성관계를 갖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것을 구체적으로 정죄하지 않으였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동성애의 문제를 3가지 방법으로 말씀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는 1세기의 유대인 선생이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주께서는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성하러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율법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 모든 희생제물과 제사장의 직무 이런 모든 것을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완성하셨습니다.
도덕적 요건이나 성적인 요건들은 어떻게 하셨지요? 그분은 윤리를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리셨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방법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마태복음 19장19절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은 남자와 여자의 일생 동안의 결합이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승인하신 유일한 결혼의 유형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15장에서 모든 성(性)적 부정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복수의 개념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와서 우리를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1세기의 유대인들에게 동성애가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졌는지 또는 동성애가 금지되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1세기의 유대인으로서 예수님께서는 남자-여자의 결합만을 지지하셨고, 이것 밖의 모든 성적인 결합의 형태를 반대하셨고 거부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 건데, 예수님을 어떤 유약한 감상적인 인물로 만들지 맙시다.
예수께서는 다시 한 번 나에게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로 귀결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사람들을 바꾸고 있습니까?
3.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멸하셨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 이상 희생을 드리지 않는 게 아닌가요?
- 예수님께서 율법을 멸하셨다면, 간음도 허락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멸하셨다면, 우상 숭배도 허락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멸하셨다면, 도둑질도 허락됩니다. 아마 살인도 허락되겠지요.
다시 말씀드리는 건데요.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멸하거나 폐하려고 오신 것이 하니고, 율법을 완성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동물 희생에 관해서는 예수님께서는 직접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동물의 희생을 대신하신 것입니다.
그럼, 제가 질문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윤리인 도덕성을 대신하셨나요? 그래서 이제 우리가 정의를 없애나요? 의로움을 없애나요? 가난한 사람들과 상처받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을 없애나요? 이 모든 것들도 율법의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도덕적, 윤리적 조건, 율법의 성적 순결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셨습니다.
율법은 ‘간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다른 여인을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었으면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신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가 너무나 파괴적이고 무거운 것이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죄는 종국에 우리를 다치게 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모세, 예수님, 바울, 모든 성경에 따르면, 동성애는 파괴적이고 해롭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에서 좌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돌아가셨습니다.
4. 모든 사람이 죄를 짓습니다. 이제 우리는 은혜 아래 있는 것이지요.
-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대드릴 능력을 우리가 가졌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에 말씀하시길 "네가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니 은혜 아래 있으며 그러므로 이제 죄를 이길 힘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은혜가 부족하면 어떻하나요? 저도 부족하고 당신도 부족합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모든 사람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의도적으로 죄를 행하고 그것을 정당화할 길을 찾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자신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장'에 말씀하시길 "그러므로 성적인 타락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릴까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고 무시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만약 '나는 죄를 짓지 않아 나는 멀쩡해. 나의 인생에 잘못된 것은 아무 것도 없어'라고 말한다면, 나는 위선자요 거짓말쟁이며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나의 부족함을 알았다고 말하고,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죄로부터 돌이켜서 앞으로 나아간다면 나는 긍휼을 입고 죄사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죄를 인정하고 그것을 내려놓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씻어 주십니다.
우리가 만일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으니까 나는 계속 죄를 지어도 된다고 말하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5. 그런데 저는 태어나길 이렇게(동성애자로) 태어났어요.
첫째, 당신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이지요.
동성애자도 이성애자도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됐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고 하나님이 동일하게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성애자를 동성애자보다 더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타락한 인류입니다. 우리 모두는 부족하며, 성경에 따르면 우리는 이런 본성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로 태어났다는 성경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결론을 내릴 만한 과학적 증거도 없습니다. 어떤 결정적인 사회학적 근거도 없습니다.
저는 동성애자 활동가들의 말을 인용하고 또 인용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언젠가는 동성애 유전자를 발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것이 입증된 것은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비록 당신이 그렇게 태어났다고 말한다고 해도, 저는 믿지 않을 것이며 수용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만에 하나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예수님께서는 그것(게이로 태어난 것)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본성에 의해 우리는 타락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본성에 의해 탐욕이 자연스럽게 오면 분노가 자연스럽게 오고, 정욕이 자연스럽게 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이성애적인 난잡함이 자연스레 오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동성애가 자연스레 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히 안과 밖을 변화시키려고 오셨습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새 피조물이 됩니다. 그리고 사실은 사람들이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수년 동안 알아 온 사람들도 있는데 예전에 동성애자였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성애를 그냥 억누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과거에는 동성에 끌렸었지만, 지금은 이성에 끌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께서 과연 그렇게 하실 수 있을까'하고 묻겠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동성애의 축복을 주셨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축복인 번식하는 능력이 당신에게서는 허락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요? 당신과 당신의 파트너가 아무리 서로를 사랑한다 하지라도 결합해 당신만의 독특함을 가진 자손을 낳을 수 없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부족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진정한 온전함을 가져다주실 수 있으며, 우리는 수천 개의 여러 영역에서 번성할 수 있게 됩니다.
6. 나는 동성애자 크리스천이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 삶이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심판자가 되실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경고하겠습니다. 당신의 경험으로만 판단의 근거를 삼을 수 없습니다.
제가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한 남녀가 있었는데 그들은 각각 이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배우자와 이혼을 하고 서로 각자 결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는 간음을 하기 전에 기도했고, 주님의 임재를 느겼다고 답했습니다.
말씀에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은 기도 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주님이신 그분께 우리를 복종시키고 우리를 구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분은 죄 중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려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즉 그분이 우리의 대장이시며 우리의 주인이란 뜻입니다. 또한 그분의 방법에 우리를 복종시켜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증언에 따르면 동성애를 하는 것은 금지돼 있습니다.
그렇다고 동성애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 보시기에 보통 인간들보다 더 역겨운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타락한 자들이나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예수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저는 동성에 대한 욕망으로 갈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성 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잘못된 것인 줄 압니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당신 말을 믿어요. 당신의 신앙고백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저는 동성 행위를 하며 게이이거나 레즈비언인 것을 자인하고 이런 삶의 방식을 행하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따른다고 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것 둘은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7. 성경에 어떤 말씀이 동성애를 정죄하고 있나요?
이 문제는 두 가지 수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첫 째는 직접적으로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 말씀들입니다.
‘레위기 18장’이 흔히 인용되는데 '남자가 다른 남자와 더불어 성적 관계를 가지면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먹는 것도 가증한 것이 될 수가 있으니까라고 말할 수 있지만, 레위기에 보면 이 행위만을 뽑아서 유일하게 가증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레위기 18장’을 끝까지 읽어보십시오. 이것(동성애)이 전 인류에게 만연한 하나님께서 정죄한 죄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도 이 죄를 지었고, 이집트 사람들도 이 죄를 지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상숭배를 하는 이방 민족이 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죄를 그들에게 물으시고, 이 죄로 인해서 심판을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에게는 너무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금지된 살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금지된 도둑질과 불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성애도 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완성하러 오셨다고 재차 강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적 윤리를 더 깊고 높게 다루소 계십니다. 남자와 여자 간의 결혼을 강화하십니다.
처음부터 이러했습니다. 성경의 처 번째 책인 창세기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목적을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성역할의 보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이 남녀의 결합에 나타납니다. 그것이 근본적인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남녀 간의 결혼 외의 모든 유형의 성적 행위가 어떻게 우리를 더럽게 하는지를 강조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명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러분이 그리스어를 읽을 수 있다면 로마서 1장을 그리스어로 읽고 창세기 1장을 '70인역'이라 불리는 그리스어 번역본과 비교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익숙한 구절을 바울이 명백하게 진술하고 있다. 즉 동성애 행위는 창조 질서에 반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자연에 반하는 것입니다. 남성 여성의 질서에 반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남자든 여자와 여자든, 이런 것은 하나님께서 반대하시는 것이며, 인간에게 내린 축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의 욕망에 복종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신약 성경 전반을 통해 거짓 신앙 고백, 거짓 크리스천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제일 먼저 하는 말씀은 회개입니다. 저는 이것을 신약 전체를 통해 증빙할 수 있습니다. 즉, '신앙 방식에서 돌아서'라는 말입니다. '삶의 방식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하라'는 것입니다. 은혜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물입니다. 고치시는 능력입니다. 당신을 씻으시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또한 신약성경에서 반복적으로 똑같은 메시지를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고전6장’, ‘,갈5장’, ‘엡5장’, ‘골3장’에서 입니다.
사람이 의도적으로 죄의 길을 걸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요1에서 분명하게 나와 있듯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계명을 지킵니다.
당신은 그러면 사랑이 어디 있느냐고 말합니다. 저 역시 한 때 헤로인을 맞고 악으로 가득 찼으며 내 아버지로부터 돈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교만으로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저를 변화시키려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행하는 외적인 모습뿐만 아닙니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새로운 탄생의 유일한 증거는 새로운 삶"이라고요.
계시록의 마지막에 가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이 예수님의 피로 씻김을 받아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살인자이거나 우상 숭배자, 또는 회개하지 않은 교만에 행하는 자, 성적으로 부도덕한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랑이 어디 있나고요? 예수님께서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일어버린,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자신을 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를 바꾸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기뻐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