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교회=이선규 목사] 예년과 같이 금년 농사도 대풍 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농민들이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수매가가 기대에 못 미치어 울상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많은 것으로 축복해 주셨건만 인간의 계산에 의 에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고” (시116:12)
여기 ‘은혜’란 말이 있고 또 ‘보답’이란 말이 있습니다. 은혜는 값없이 받는 선물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생은 실로 은혜로 시작하여 은혜로 끝맺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은혜로 태어납니다.
엄마젖을 빠는 것도 은혜고 입는 옷도, 누운 자리도 은혜로 준비 되었습니다.
또한 인간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이 지은 수의를 입고 남이 만든 관에 눕고 남이 메어다 남이 판 무덤에 남이 묻어줍니다.
이렇게 인간이 마지막도 은혜로 마칩니다.
이렇게 태어나서 부터 사망에 이르는 그 어간의 삶도 거의 은혜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은혜는 말 할 수 없고 인간의 받은 은혜가 이렇게 막대 하거니와 인간의 삶의 배후에 있는 천지와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의 은혜는 어떻습니까?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인간이 하루라도 아니 한 순간이라도 우리의 육신 생활이 가능합니까? 햇볕도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시편 시인은 “여호와 하나니은 해와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공기도 물도 오곡백과와 이른 비 늦은 비 천연자원 지하자원 광물 자원 총 틀어서 모두 거저 주셨습니다. 금도 주시고 은도 거저 주시고 철도 석탄과 현대 생활의 필수적인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육신 생활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을 생각해 봅시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우리의 구주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 받은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지 못합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그 선행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성경말씀 그대로 누구나 구원은 은혜로 거저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자랑 할 사람도 없고 뽐낼 것도 없습니다. 다만 누구나 이 크신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가 하는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해답은 하나님이 미쁘시기 때문입니다.
9 절입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여기서 ‘미쁘시다’ 는 말은 신실하다. 믿을만하다. 모든 일에 빈틈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따라 우리의 삶을 미쁘시게 인도해 가십니다.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며 우리의 길을 평탄케 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 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분으로 생각하고 불신하고 의심하고 부인한다면 어떻게 감사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의 삶을 당신의 뜻대로 아름답게 섭리해 가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고 의지 할 때 그 속에서 감사가 나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일이 무엇인가?
9절을 봅시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주님의 부름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먼저 주님을 부른 것이 아니요 우리가 먼저 주님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먼저 불러 주시고 믿을 수 있도록 믿음을 주셨기에 주님을 주님으로 믿고 살게 된 것입니다.
은혜가 무엇 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받을 자 격이 없는 내가 그 은혜를 거저 받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3: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주님이 먼저 사랑으로 다가 오셔서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본문에 바울이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4절을 다시 보십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로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 하노니’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은혜와 감사는 쌍둥이처럼 떼 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시편 90편에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까? 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거처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얼마나 사고, 재난, 질병이 많은지 모릅니다.
이렇게 위험한 세상에 안전한 거처가 필요한데 하나님이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신다면 그 보다 안전한 거처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시고 지키시는 거처가 되신다면 아무도 해칠 자가 없습니다.
시편 139:14에 “내가 주께 감사함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 막측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하고 은혜를 알아야 감사하게 됩니다.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절실히 느낄 수 있어야 감사도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면 감사 자체가 불가능해 집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세 가지를 잘 해야 합니다.
첫째는 남은 인생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죽음의 날이 언제 닥칠지 계산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시90편에서 지혜로운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살아온 날 수 보다는 앞으로 남은 날 수에 주목해야 합니다.
결국 인생은 돌아갈 인생인데 잠깐 왔다가 돌아가야 할 인생입니다.
약4:14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리고 우리 인생은 나그네라고 여러 곳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생은 짧습니다. 그 짧은 연수도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잠깐 왔다가는 인생임을 알 때 어떻게 허송세월을 보낼 수 있으며 감사의 생활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받은 축복을 헤아릴 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늘 당부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지난 과거의 세월 속에서 너희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잊지 말아라.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는 수고의 질서요. 다른 하나는 은총의 질서입니다.
전자는 수고하여 인간이 원하는 바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자는 인간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에 의한 것입니다.
수고로 얻은 것이 아무리 큰들 은총으로 얻는 것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은총에 의한 것이 천만 배 그 이상의 큰 축복 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열심히 수고하여 얻은 것들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다 주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받은 지위, 내가 받은 대우, 재물, 건강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원래 내 것이란 있지도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우리가 누리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감사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언제나 감사로 시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루의 시작을 ‘아이고 죽겠네’, ‘못 살겠네’로 출발 한다면 그 하루는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의 주님 오늘도 좋은 하루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합니다. 감사로 시작하면 행복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늘 감사 할 수 있는가? 본문은 늘 항상 감사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항상 (always)를 보면 all부와 ways길 또는 방법들을 뜻하는 단어가 합쳐진 복합어입니다. 항상 감사한다는 것은 때를 가리지 않고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좋을 때든 나쁠 때든 슬픈 때든 기쁠 때든 고통스러울 때도 행복할 때든 죽을 때든 살 때든 그 어느 때든 항상 범사에 감사하는 인생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야만이 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람들은 모든 일에 대해서 감사하는 사람들 이어야 합니다. 주안에서 감사 하라 우리의 모든 감사는 주 안에서 나와야 합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인해 항상 감사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야 말로 곳간이자 뿌리인 것입니다. 모든 감사가 이 곳에서 생산되고 공급되는 것입니다.
나로서는 항상 감사 할 수 없습니다.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의 변경에 따라 반응이 수시로 달라집니다. 조건이 좋아지면 감사 했다가도 나빠지는 순간 이내 불평이 튀어 나옵니다.
우리가 항상 감사하기 위해서는 능력주시는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을 찬양합니다.
감사는 축복의 통로를 열어 줍니다.
흑인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에 오른 넬슨 만델라가 백인 정부에 의해 27년간 감옥 생활을 하였다가 출옥을 하였을 때 사람들은 그가 허약한 상태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70세가 넘었는데도 건강하게 나왔습니다. 건강의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 하였습니다.
“나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하늘을 보고 뜬 구름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고 정의는 승리 한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창틀 넘어 자연을 보고 감사하였고 물 한 모금 마시면서도 감사 했습니다.”
그가 건강과 축복된 삶을 산 것은 감사의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성공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유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기적과 축복의 씨앗입니다.
하박국 선지와 같이 없고, 없고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자신이 행복합니다. 모든 것을 변화시켜 줍니다.
감사로 승리 합시다. 감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추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