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미가서 2:1)
박근혜 정부는 지난 10월 12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행정예고를 하였다. 행정 예고를 하는 까닭은, 정부가 추진하려는 행정 사안에 대한 국민의 여론을 수렴, 반영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고시를 확정하는 절차를 밟음으로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지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행정 예고를 하면서, 애초에 계획했던 고시 확정일을 11월 5일(목)에서 3일(화)로 바꾸어 ‘고시 확정’을 결정지었다. 이는 국민의 여론이 무엇인지 검토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국민을 무시하고 그대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도이다.
이와 같은 계략은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고 권력으로 국민을 우롱하며 민주 사회를 퇴행시키는 독재 정권의 전형이다. 이에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는 과거 독재 시대 민주화를 위해 피 흘리며 죽어간 신앙의 선배들을 기억하며, 아래와 같은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국민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수호해 나가고자 한다.
역사에 대한 평가를 왜 정부가 하는가?
역사교과서 내용에 정치권이 개입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헌법 제31조’와 ‘2013년 UN 역사교육지침’ 참조) 역사 해석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함으로써 정치권력의 신격화를 저지하고 민주적인 역사 문화를 창조해가기 위함이다. 이는 독재 사회 속에서 인간의 실존이 비참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 경험에 대한 성찰이다. 조선시대 왕조차도 국사 편찬에 관여할 수 없었던 이유를 깊이 헤아려 볼 일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려는 ‘국정교과서’는 ‘일제강점기를 경제발전기라’고 해석하는 소위,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관을 ‘올바른’ 것이라 선언하면서 전체주의적으로 획일화시키려 한다. 다양한 역사 해석의 가능성들을 ‘그릇된 것’으로 규정하는, 그 같은 오만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버지 박정희의 역사를 미화하려는 이 경악스러운 독재적 발상을 우리는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저지가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임을 선언하는 바이다.
박근혜 정부는 왜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는가?
금일 고시를 확정하였다는 것은 이제 곧 집필진을 구성하여 이 달 안으로 집필에 들어가 2017 학년도부터 일선 중고등학교에 ‘국정교과서’를 보급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고시 확정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이 검토되고 반영되었는가? 애초 ‘국정교과서’에 대한 찬반논란이 첨예한 상황에서 행정 예고는 돌발적인 추진이었다. 의견수렴 기간 동안 ‘국정교과서’ 태스크포스(Task Forth)를 비밀리에 조직, 운영하면서 사실상 실무 작업에 착수했으며, 국민의 의견 수렴 방식도 우편과 팩스로만 제한함으로써 국민의 참여도를 축소시켰다. 결정적으로 고시 확정을 기습적으로 이틀 앞당김으로써, ‘국정교과서’에 대한 국민 여론(100만 건이 넘는 반대서명과 1만8000천여 건의 반대의견서) 수렴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 같이 국민을 우롱하는 기민함과 민주적인 절차를 파행시키는 속도전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행정 예고가 끝나기도 전에 국정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반대의견의 예봉 또한 봉쇄할 방침이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헌법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박근혜 정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독재 정권이다.
고시 확정에 대하여 여당의 주요 인사들은 ‘소모적인 논란을 없애’는 긍정적인 조치라고 평가한다. 그 같은 정치적 망언은, ‘국정교과서 반대자들의 불필요한 논란 때문에 민생을 돌볼 수 없다’거나 ‘경제가 어려운 것은 저 반대자들 탓이’라는 치졸한 공략일 뿐이다. ‘국정교과서’를 추진함으로써 독재 정권을 옹호하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불의한 세력 앞에, 오늘 우리는 구약성경 심판의 예언을 다시 읽는다.
“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미 2:1)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속에 내재되어 있는 박근혜 정부의 독재의식로부터 국민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우리의 결의는, 정의와 공의를 이 땅 위에 내려주신 은총의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제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함께 싸워 나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스스로가 역사의 주체가 되어 오늘의 역사를 바르게 써나가는 길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2015년 11월 3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교회와사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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