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 사건인 병인박해(1866)를 사실적으로 그린이탈리아판 의혹의 원본이 발굴됐다고 27일 뉴시스가 보도했다.
병인박해는 조선교구 제4대 교구장 성 베르뇌 주교(1814~1866)를 비롯해 프랑스 사제 9명과 천주교도 8000여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뉴시스에 따르면 병인박해 10년 뒤, 지금으로부터 138년 전인 1877년, 구한말의 병인박해를 사실적으로 그린 이탈리아어판 희곡 '종교와 조국 또는 조선의 순교자들'(Religione e Patria o i Martiri Coreani)의 초판 원본이 발굴됐다.
지난해 5월 발견된 53쪽 분량의 영문 초판(1887)보다 무려 10년 앞서 나온 초판 원본을 고서점 아트뱅크 윤형원(69) 대표가 해외 고서 웹사이트에서 찾았다.
'조선의 순교자들'은 베르뇌 주교가 서울 용산구 이촌로에 있는 새남터 형장에서 순교한 사건을 극화한 것으로 저자인 이탈리아 빌라노바 태생 안토니오 이솔레리(1845~1932) 신부는 "순교를 기록하기 위해 전업 작가가 아님에도 병인박해를 소재로 희곡을 창작했다"고 밝혔다.
윤 대표는 "'조선의 순교자들'은 한국을 소재로 한 최초의 서구 문학작품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다"며 "이전까지는 1892년 '춘향전'을 프랑스어로 펴낸 '봄의 향기'(Printemps Parfume·번역 홍종우 로즈니)를 꼽았는데, 15년이나 앞서 나온 문학작품이 '조선의 순교자들'"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봄의 향기'가 번역 작품인데 반해 '조선의 순교자들'은 순수 창작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 높다"고 평가했다. "순교 당시 실존인물들이 대거 등장해 구한말 천주교의 상황과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탈리아어판이나 영문판 모두 희귀자료"라고 전했다.
이솔레리 신부는 1876년부터 1878년 사이 모두 3권으로 구성된 '리라 레로니카: 소네트, 오드, 노래, 시, 비극, 희극의 모음'(Lira leronica: ossia, Raccolta di sonetti, odi, canzoni, carmi, cantiche, tragedie, commedie)을 펴냈다.
제1권 서정시, 제2권 비극, 제3권 희곡으로 나눴으며 '조선의 순교자들'은 제2권인 비극편에 실렸다. 제2권 115쪽부터 187쪽까지 72쪽 분량이다. 이어 188쪽과 189쪽에 비가(悲歌·Elegia), 190쪽과 191쪽에 나의 견해(Il Mio Parere)를 수록했다. 192쪽부터 200쪽까지는 추록이다.
이솔레리 신부는 '나의 견해'에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 동기로 "순교가 일반인들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겠으나 성직자로서 기록의 필요성을 느꼈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 전업 작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시간을 내 순교를 기록했다"고 썼다. 또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하기 위해 객관적 사실을 기술하기보다 희곡으로 썼다고 덧붙였다.
작품에 대해서는 "주인공은 실존인물이 모델이나 극적인 장치를 위해 창조한 인물도 있으며 사건이 일어난 날짜도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또 "순교에 대해 쓰다보면 보통 가해자는 악하고 순교자는 선하게 그리기 마련인데 그런 이분법을 경계했으며, 비록 극적인 요소를 집어넣었으나 역사에 가깝게 그렸다"고 강조했다.
아쉬움도 있다. "구성이 꼭 마음에 들지는 않은데, 전업 작가가 아닌 데다 집필 당시 건강도 좋지 않았다"며 양해를 구했다.
'나의 견해'에서 병인박해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24세(1869년)에 제노바에 있는 해외선교대학을 졸업한 이솔레리 신부가 극동지역에서 일하길 원했던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 관심이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적 바람과 달리 미국으로 파송된 그는 1870년 1월5일 필라델피아 땅을 밟았다. 이탈리아 천주교회가 미국에 세운 첫 성당인 '산타 마리아 마타레나 데 바치(Santa Maria Maddalena de Pazzi)'를 세웠고 1926년까지 56년간 그곳에서 신부로 봉직했다. 이민 공동체 '리틀 이탈리' 형성에 크게 기여한 그는 1932년 미국에서 사망했다.
3권짜리 문학선집을 낸 것도 이 기간이다. 1876년부터 3년간 전3권의 문학선집을 펴냈고, 1887년에는 '조선의 순교자들'만 따로 직접 영문으로 번역해 필라델피아 D J 갤러거 출판사를 통해 출간했다. 이탈리아어판 초판원본에는 출판사가 명기돼 있지 않다.
영문판을 검토한 가톨릭신문에 따르면 이 희곡은 베르뇌 주교가 새남터에서 순교한 1866년 3월7일 저녁기도에서 3월8일 저녁기도까지 이틀간 일어난 일을 담았다. 등장인물 중 법정관리를 제외하면 브르트니에르·도리·볼리외 신부, 1856년 베르뇌 주교의 조선 입국을 안내한 홍봉주, 판서 김병학 등 모두 실존인물이다.
제1장 '왕궁에서', 제2장 '신자 홍봉주 토마스의 집에서', 제3장 '의금부 법정에서', 제4장 '감옥에서', 제5장 '서울의 도성 밖 네거리와 새남터로 향하는 길에서'로 이뤄져 있다. 1장 시작에 앞서 시대적 배경을 '철종이 죽고 고종이 즉위한 후 베르뇌 주교는 오래지 않아 박해의 두려움을 느끼게 됐다'고 묘사했다.
병인박해는 그해 프랑스 함대가 흥선대원군(1820~1898)의 천주교도 학살 탄압을 이유로 강화도에 침범한 병인양요로 이어지기도 했다.
순교 10년 전인 1856년, 조선에 입국해 충북 제천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베론신학교를 설립한 베르뇌 주교는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이었다. 그는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금압령 이후 출국을 거부하다 체포돼 목이 베어져 매달리는 군문 효수형에 처해졌다. 당시 탈출한 프랑스 신부 리델이 중국 톈진에 있던 프랑스 해군사령관 로즈 제독에게 이를 알리면서 발발한 것이 바로 병인양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