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의 주범으로 지목된 소위 '일진'의 실태 조사를 시작으로 학교폭력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일선 경찰들이 '학교 측 협조를 받아 수사하라'는 경찰청 지침이 내려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경찰청이 지난 15일 일선 경찰관서에 교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일단 학교 측 협조를 구하고, 여의치 않으면 첩보 수집 등 간접적인 방법을 쓰라는 등의 내용이 들어있는 '학교폭력 대응 요령'을 하달했다.
학교폭력에 대해 강경 일변도의 자세로 일관하던 경찰이 한발 물러서 처음으로 자제성 지침을 공식 하달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이 '무리하지 말라'는 지침에 대해 일선의 전담 경찰들 사이에서 그런 식으로는 학교폭력 수사를 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딱 떨어지는 진술을 확보하고 가도 '우리 학교에 그런 일 없다'고 발뺌하는데 학교 측의 자발적 협조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 어차피 학생과 교사를 상대로 얘기를 들어야 하는 학교폭력 수사의 속성상 학교 측 협조가 없는 한 '주변 첩보수집'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부분의 전담 경찰들의 의견이다.
대구의 한 학교폭력 전담 경찰은 "'폭력을 행사한 '일진'한테 다른 학생을 구타하고 금품을 빼앗았다는 진술을 받아 들고 찾아가도 해당 학교 측은 '왜 왔느냐'는 식으로 나온다"면서 "이번 본청 지침으로 학교 측 협조를 받는 것은 이제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전담 경찰은 "상습 폭력이나 금품갈취로 일진을 적발한다 해도 일진임을 인정하는 자술서를 쉽게 쓰겠느냐"면서 "학교 측 기분 상하지 않게 수사를 하라는 것은 손 떼라는 얘기와 같다"고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1990년대 기승을 부린 '일진회' 형태의 교내 폭력서클이 포착되면 학교 측이 반발하더라고 강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폭력성이 강하고 조직화된 '일진'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수사할 수밖에 없고, 그런 경우라 해도 해당 학교의 협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데 상황임을 윗선에서 충분히 감안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경찰 수사가 학교 측의 비협조로 지연된다며 그것은 일진들이 더 활개치게 놔두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선량한 학생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받게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