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로 끌려가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 115명의 유골이 민간단체의 노력으로 광복 70년 만에 귀환한다.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 및 유골 귀향 추진위원회' 한국 측 대표단은 11일 일제강점기 홋카이도에서 강제노역하다 숨진 조선인 115명의 유골을 한국으로 봉환하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한다.
대표단은 유족 7명과 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한국 측 대표 평화디딤돌 관계자 등 15명으로 구성됐다.
대표단은 이날 홋카이도에 도착하면 일본 측 대표인 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등 일본 시민사회 단체와 합류해 사흘 동안 홋카이도 전역에서 발굴된 조선인 유골을 인수하며 추도식을 한다.
이 유골들은 1997년부터 18년간 한일 양국의 민간 전문가와 종교인, 학생들이 홋카이도 각지에서 수습한 것들이다.
첫 행사가 열리는 홋카이도 최북단 사루후츠(猿拂)촌에서는 아사지노(淺茅野) 일본육군비행장 건설에 동원됐다가 숨진 유골 34위를 인수한다.
아사지노 비행장은 2차대전 말기인 1942∼1944년 조선인 120여명이 강제로 동원돼 이른바 '타코베야'(たこべや, 문어방)이라는 감금시설에 갇혀 혹한과 구타, 굶주림에 시달린 곳이다.
대표단은 이어 북부 산간지방인 호로카나이쵸(幌加內町) 슈마리나이(朱鞠內) 우류(雨龍)댐으로 이동해 이곳에 강제로 동원됐다가 숨진 조선인 유골 4위를 되찾는다.
우류댐은 1938∼1943년 6년간 건설된 당시 동양 최대 규모(발전용량 500㎾)의 댐으로, 조선인과 일본인들이 강제로 동원돼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곳이다.
다음으로는 비바이(美唄)시 토메이(東明)의 절 조코지(常光寺)에 안치된 조선인 유골 6위를 모신다.
이 유골들의 주인은 1941년 비바이 미츠비시 탄광 갱 내 가스 폭발의 조선인 희생자들이다.
이어 대표단은 삿포로(札晃)시 소재 혼간지(本願寺) 별원으로 이동해 이곳에 모셔져 있는 조선인 유골 71위를 받는다.
이 유골은 홋카이도에서 건설업체를 운영했던 한 일본인이 따로 보관하다가 1997년에 혼간지에 맡긴 것이다.
이렇게 모두 115위를 되찾은 대표단은 배를 타고 해로를 통해 도쿄(東京)까지 간 후 다시 육로로 교토(京都), 오사카(大阪), 히로시마(廣島)를 거쳐 시모노세키(下關)로 이동한다.
이 경로는 일제 당시 조선인들이 강제로 홋카이도로 끌려갔던 육로와 해로를 그대로 돌아오는 길로 구성됐다.
17일 오후 부관 페리 편으로 시모노세키항을 출발하는 유골은 대한해협을 건너 이튿날인 18일 오전 광복 70년 만에 고국 땅을 밟게 된다.
부산항에 도착한 유골은 부산 중구 수미르공원으로 옮겨져 진혼노제를 치르고는 서울 중구 성공회성당에 임시 안치된다.
19일 오후 7시에는 서울광장에서 장례식이 엄수된다.
이 자리에는 지금까지 유골 발굴에 참여했던 평화디딤돌 관계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일제 피해 관련 시민단체, 유족, 박원순 서울시장 등 1천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유골 115위는 20일 서울시가 마련한 파주 서울시립묘지 납골당에 안장되는 것으로 열흘간의 약 3천㎞에 달하는 봉환 대장정이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