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4월 2일 성동구청으로 부터 주택개량 제 22호로 허가를 받아 1층 80평, 2층 80평, 3층 종탑 포함 18평 연건평 178평을 브로크 조 내벽, 적벽돌 외벽으로 새 예배당을 신축했다. 1973년 10월 3일 교회 설립 제 3주년 기념예배로 입당예배를 드렸고 1975년 3월 1일 장재효 목사를 성은교회 위임 목사로 세웠다.

1976년 3월 26일, 옥수동 424-569의 양옥 2층 짜리 시유지 41평을 매입하여 윗층은 당회장 목양실로 1층은 경비실 겸 사찰 주거지로 사용했다. 예배당을 지을 때 교회 정문에서 15m정도의 거리에 공동수도가 있었다.

시멘트, 콘크리트를 반죽하기 위해 물이 많이 필요했는데 공동 수도 집에서 교회에는 수돗물을 팔지 않겠다고 했다. 부득이 170m이상 떨어진 내리막길 아래쪽 공동수도에서 물을 지고 올리느라 성도들이 엄청 고생을 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교회 주변의 주민들이 예배당 짓는 것을 훼방하기 위해 공론을 모아 공동 수도 집에 성은교회에는 물을 팔지 못하도록 강요했고 그들도 기꺼이 합세하여 물을 팔지 않았었는데 그 이듬해 공동수도집 부인이 암으로 여러달 고생하며 수술한다고 경제 부담이 컸지만 많은 빚을 남기고 결국 별세하고 말았다.

또 교회 주변에 목수일을 한다는 B씨가 있었는데 예배당 건립을 위해 철근 골조로 철근을 배근하고 판넬로 둘러싸서 시멘트 반죽을 부어 굳기를 기다리는 데 밤 중에 기둥 하나를 뽑아버리는 파손을 했다. 다시 세우기를 3번이나 했지만, 계속 파손하기 때문에 그 기둥자리를 포기하고, 건물의 벽이 비딱하게 꺽여져 3층까지 그 모양이 되어 건물이 반듯하지 못했다. 보는 사람마다 건물이 반듯하지 못하고 왜 이렇게 보기 싫게 지었느냐고 했고 성도들도 그 일로 마음이 상하였다.

그 이듬해 어느 날 B씨가 밤에 자다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예배당이 우뚝 서고 진리정통한 권능의 말씀이 선포되며 불같은 성령님의 다양한 은사와 영력이 나타나는 중 많은 체험들이 영적 체질 신앙으로 열심이 특심한 가운데 교회는 계속 부흥했다.

♣최근 굿뉴스미션워싱턴필름(대표 이태봉 목사)이 한국성은교회 장재효 목사의 목회 일대기를 다큐멘터리(http://www.youtube.com/watch?v=ozEoEVL7-qc&feature=player_embedded)로 제작했으며, 기독일보에서는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된 장재효 목사의 목회 에세이 '야향(野香) 장재효(張在孝) 목사의 목회와 선교'를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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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