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한국에 들어와 떠돌이 생활을 하던 외국인 노숙자가 쓸쓸히 세상을 떠났지만 신원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10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서울 중랑구 신내동 서울의료원에서 60대로 추정되는 외국인 '토머스'씨가 지병인 담도암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토머스 씨는 생전에 자신을 이스라엘 출신이라고 밝혔다. 5년 전 영어교육 사업을 하려고 한국에 왔지만 불법 체류자로 전락해 길거리 생활을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반포 지하상가 등지에서 지내던 그는 올해 초 서울시 다시서기종합센터의 지원을 받아 서울역 인근 고시원에서 생활해왔다.
오랜 거리 생활로 건강은 악화되고, 병원 진료를 받아본 결과 담도암 판정이 나왔다.
다시서기센터 관계자는 "담도암이 주변 장기로 전이돼 몸이 심각하게 망가진 상황이었다"며 "신원과 가족사항을 물었지만 끝까지 답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가 숨을 거두자 서울시는 장례 절차를 밟기 위해 그의 생전 언급에 따라 이스라엘 대사관에 신원조회를 요청했지만 "우리 국민이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영국 여권을 발견해 영국대사관에 확인을 요청했지만 이 역시 위조여권으로 판명났다.
내국인 무연고 사망자는 자치구에서 한 달간 공고를 내고, 가족이 나타나지 않으면 화장해 납골당에 10년간 유골을 안치한다. 가족이 나타났을 때 인계하려는 조치다.
하지만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규정은 없다.
중랑구 관계자는 "토머스씨의 유족을 할 수 있는 데까지 확인해 보겠지만 끝내 가족을 찾지 못하면 내국인 관련 규정에 따라 사후처리 절차를 밟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서울역과 영등포역,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는 모두 430여명이며 이 중 외국인 노숙자는 14명이다.
서울시는 올 1월 대만 국적 노숙인이 동사한 것을 계기로 2월부터 서울 시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숙인을 파악하고 관리 중이다.
대부분은 중국인과 조선족이며 호주, 카자흐스탄, 대만 출신이 각 1명이다.
대부분 불법체류자 신분인 이들은 강제추방에 대한 걱정과 언어 문제 때문에 노숙자를 위한 일시보호시설에도 들어가기를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외국인 노숙자들도 건강에 문제가 발견되면 응급상황으로 간주해 우선 치료를 받게 한다"며 "하지만 불법체류 신분이라면 합법적으로 일자리를 소개하고 자활을 연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국적이 없는 외국인 노숙자도 인간으로서 똑같이 존엄한 권리를 가진 만큼 생존에 위협을 당하는 상황에 대한 지원과 사후 처리 절차 등에 있어서도 내국인과 차별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