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도로서 미국에 유학왔으나 한국에서부터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신학이라는 학문이 그를 이끌었고 결국 목회에까지 이르게 됐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로 진학해 신학을 마치고 목회자로 안수받았으며 성경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 UC얼바인에서 고전문학으로 Ph.D. 과정을 밟기도 했다.
그는 오렌지카운티 지역을 대표하는 교회인 오렌지카운티제일장로교회의 담임목사로서 12년간 섬기면서 교회의 치유와 부흥을 이끌어 왔고 올 회기 오렌지카운티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을 맡아 이 지역 한인교회들의 연합을 주도하고 있다.
엄영민 목사로부터 그의 목회와 교회연합 사역 이야기를 들어 본다.
기독일보: 오렌지카운티제일장로교회에서 전도사, 부목사를 거쳐서 담임목사까지 되셨는데 이런 케이스가 참 드물지 않습니까?
엄영민 목사: 저는 준비나 능력 면에서 제가 맡기에는 상당히 과분한 교회를 맡았습니다. 담임 목회 경험이 없는 사람이 제일장로교회처럼 큰 교회에 담임으로 부임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한 교회에서 전도사, 부목사를 거친 사람이 곧바로 담임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할 수 있습니다. 한 교회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목회한 비결에 관해 많은 분들이 묻곤 하는데 저는 웃으면서 '제가 갈 곳이 없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합니다.
사실은 제가 성도들의 사랑을 과분하게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저를 전도사 시절부터 주욱 지켜보던 성도들이 누구보다 저를 잘 알았기에 교회가 힘들던 당시 '그래도 교회 사정을 잘 아는 엄영민 목사가 담임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 같습니다. 1992년 1월에 전도사로 부임한 이래, 1994년 6월 부목사가 되고 2000년 2월 담임이 됐으니 이 교회에 20년동안 있었고 담임이 된지는 12년이 된 셈입니다.
기독일보: 그런 관계성의 지속이 목회에도 큰 도움이 되셨겠습니다.
엄영민 목사: 우리 교회는 부목사들이 다른 교회에 비해 사역하는 기간이 깁니다. 풀타임 목회자들은 평균 10여년 가까이 이 교회에서 섬깁니다. 저는 부목사들에게 '오래 있어야 목회가 된다. 목회는 사람과의 관계성이기 때문이다'라고 조언합니다. 저는 한 교회만을 섬겼고 한 교회에서만 목회했기 때문에 그런 면에 있어서는 자신있게 조언해 줄 수 있습니다.
기독일보: 목회의 트렌드를 이야기 함에 있어서 목사님의 그런 목회 스타일은 다소 우직해 보이는데요.
엄영민 목사:목회자들에게도 각각의 성품과 특징이 있습니다. 또 그 성품을 떠나서 목회할 수는 없습니다. 제 경우는 성격 자체가 외향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제가 부임할 당시 교회에 큰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려운 때에 담임이 되어 저는 일을 벌리기 보다는 상처를 치유하고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을 최우선 목회 가치로 설정했습니다. 아마 성도들이 저를 담임으로 청빙한 이유도 저의 이런 면을 알아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첫 담임목회지였기에 큰 의욕이 앞서기도 했고 한번 일을 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와는 달리 교회는 저에게 위로를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제 목회의 스타일과 철학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저는 목회의 경력도 짧았습니다. 목사 안수를 1995년도에 받았는데 그로부터 5년 뒤에 담임이 되었습니다. 비록 제가 부임할 당시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긴 했지만 1대 담임목사님이 닦아 놓은 건강한 토대가 있었기에 곧 교회는 회복되었습니다. 제가 특출나게 무슨 목회를 잘 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기독일보: 목사님의 철학이 치유의 목회라고 한다면, 그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요?
엄영민 목사: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성도들은 불안해집니다. 그리고 성품이 사나워집니다. 이전에는 전혀 문제가 안되던 일들도 교회가 불안해지면 문제로 불거집니다. 저는 부임한 후, 교회에 있는 문제의 소지를 줄여 나가려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문제가 줄어들수록 교회는 안정되고 성도들 안에 있는 불안감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자가 많이 참고 인내하면서 성도 한명 한명을 조심스럽게 대하고 그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에도 성도들 사이에 갈등이 생길 것 같으면 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지만 3-4년이 지나고 나면 성도들이 이제 앞으로 나와 일하려 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예수님의 목회는 위로요 안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무슨 일을 제대로 하려면 성도들을 좀 몰아치기도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중에는 아직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거나 힘듦을 주고 싶진 않습니다. 그들은 몰아치기 보다 예배를 통해 은혜받고 힘을 얻으면 자연스럽게 일을 하려 합니다. 저는 그런 위로와 안식을 성도들에게 주고 싶습니다.
기독일보: 목사님이 부임하신 이래 겉으로 드러나진 않아도 면면히 다양한 사역이 진행되어 왔다고 들었습니다.
엄영민 목사: 우리 교회는 전반적으로 볼 때 보수적인 교회입니다. 그렇다 보니 외부로 사역을 알리고 홍보하는 데에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 돌아 보면 참 좋은 일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홈리스 사역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 사역을 15년째 해 오고 있습니다. 많은 한인교회들이 홈리스 사역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우리 교회가 15년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이 사역을 멈추지 않고 꾸준히 했다는 점은 큰 자랑입니다. 1년에 한두번 정도만 빠지고 매주 했으니 어림잡아도 수백번입니다. 15년이나 하다 보니 이제는 홈리스들의 참여도 뜨겁습니다. 과거 홈리스이던 한 사람은 지금은 홈리스가 아니지만 저희가 사역하는 장소에 나와서 헌금을 하고 자원봉사를 하기도 합니다. 이 사역을 통해 성도들은 힘들기보다 오히려 은혜를 받게 됩니다.
여성예배도 아마 우리 교회가 가진 특별한 사역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교회가 보수적 교회이다 보니 여성들이 교회를 열심히 섬김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자리가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게 됐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하면서 여성반을 맡아 가르쳤는데 우리 교회 여성들이 그렇게 뛰어날 수 없습니다. 리더십이나 영성이나 헌신이나 어느 것 하나 빠질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능력을 적극적으로 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성예배를 신설했는데 4년동안 은혜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이 예배를 통해 은혜받고 회복되고 기도하며 찬양하니 너무도 좋습니다.
기독일보: 요즘 제일장로교회에 이전과는 다른 뜨거운 움직임이 있다고 하는데요.
엄영민 목사: 제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 변화가 온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요즘 기도하고 설교하는 중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많이 합니다.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은 더해가고 말씀에 대한 갈급함도 더 커졌습니다. 복음에 대한 확신도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요즘 어떤 성도들은 “우리 목사님이 부흥사가 되셨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특히 요즘 신년을 맞이해 특별새벽기도회를 했는데 전통적인 장로교회인 우리 교회에서 나오는 기도들에 성령이 폭발하는 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독일보: 제일장로교회가 오렌지카운티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모교회인데 그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엄영민 목사:1977년 창립됐으나 올해로 35년 됐습니다. 우리 교회는 한인교계 여러 면에서 훌륭한 지도자들을 배출했고 섬겨온 교회입니다. 30주년을 기념해 제가 한번 집계를 해 보니, 목회자가 30여명 우리 교회에서 배출됐고 선교사도 10여명 이상이 나왔습니다. 우리 교회 목회자 출신 중에 교단 총회장을 하신 분이 두 분이나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분립되어 나간 교회도 어림잡아 6군데가 넘습니다. 한인사회적으로 보면 한인회장도 수명이 배출됐습니다.
지금은 한인교회가 많아지고 규모가 큰 교회도 많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감당해야 할 부담이 많이 줄어들긴 했습니다. 그러나 지역사회를 이끄는 리더십을 가진 교회로서의 책임감만은 여전히 줄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교계는 물론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 온 자랑스런 교회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 교회에서는 물론이고 각종 사회 단체나 기관에서도 열심히 섬기라고 당부합니다. 제가 장로님들을 모시고 다니면서 여기 저기 단체를 소개해 주기도 합니다. 성도는 교회를 섬길 뿐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세상을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독일보: 오렌지카운티 한인사회에 대해 평가하신다면.
엄영민 목사: 오렌지카운티를 설명할 때 이곳을 LA와 비교한다면 그곳에 비해서는 안정된 지역입니다. LA와는 달리 보수적인 공화당 지역이며 한인교회의 정서도 이와 비슷합니다. 보수적이며 안정된 지역성의 영향을 교회도 받습니다. 한인들의 경우도 이민 온 지 연수가 오래 되신 분들이 많습니다. 전체적인 정서가 상당히 신앙적이며 경제적인 여유도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오렌지카운티 지역 한인교회가 남가주 전체와 미주 전체 한인교회를 위해,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좀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런 점으로 인해 오히려 한인교회에 안 좋은 영향도 있을 수 있습니다. 미국 생활이 오래 되고 안정되다 보니 미국적인 삶의 윤택함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으며 이는 교회에 대한 헌신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우리 한인교회의 역할은 하나님께서 한인과 한국에 주신 독특한 영성으로 하나님 나라와 미국을 섬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독일보: 교회가 이런 점을 어떻게 독려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엄영민 목사: 교회가 자기 교회만의 이기주의를 넘어 성도들에게 끊임없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사고의 틀, 즉 세계관을 기독교적으로 교회가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교회가 성도들에게 선교의 길을 보여 준다든지, 봉사의 길을 제시한다든지 해야 합니다.
기독일보: 한인교회의 사명 중 2세 사역에 대한 것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엄영민 목사: 2세 사역은 교회마다 고민하는 주제입니다. 우리 교회도 2세 사역에 있어서 아주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인교회의 방향이 대체로 2세들을 키워서 2세들에게 2세 사역을 맡기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세들은 1세들에 대한 실망감도 갖고 있고 어른들과 문화적, 언어적인 면에서 독립적입니다. 우리 교회의 경우는 우리가 2세 사역자들의 사례비만 책임지고 나머지는 2세 교회가 모두 자립적으로 재정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세 교회의 독립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독립한 많은 교회들이 사실 방향성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1세와 2세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멘토링 해 주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서로 보완해 주고 돕는 성숙한 동반자적 관계가 세워지면 다같이 부흥할 수 있습니다.
기독일보: OC교협 회장이 되셨는데 책임이 막중하시겠습니다.
엄영민 목사: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역사회에 대한 교회의 섬김, 2세 사역 등의 문제는 반드시 교회가 연합해야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OC교협에서는 조만간 2세 교회와 1세 교회의 대화의 창을 열고자 합니다. 금년에는 교회를 위한 교회연합체로서 교협이 할 수 있는 본연의 일들을 찾아 가고자 합니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연합하고 서로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한편, 주류교회와도 연합해 미국교회의 일원으로서 기능하고자 합니다.
또 그에만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에도 적극 나서고자 합니다. 최근에는 오렌지카운티 단체장 조찬기도회를 열어서 단체장들을 초청, 위로하고 섬기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매우 반응이 좋았습니다.
교협 자체적으로는 후원이사회도 생기면서 재정적인 안정을 도모하고 있으며 교협 뿐 아니라 오렌지카운티목사회, 오렌지카운티전도연합회 등과도 연합해서 큰 일들을 추진해 가려 합니다. 각자 전문 분야에 맡는 일을 하고 그것을 다른 단체들이 도와 주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교협이 연합부흥회를 한다면 나머지 두 단체가 도와 주고, 목사회가 세미나를 개최하면 다른 단체들이 협력하는 형식입니다. 교계 단체들 간에 경쟁의식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낭비일 뿐입니다.
보통 연합회에 나가면 개교회 목회에는 도움이 안된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사실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가진 책임을 생각할 때 연합하지 않는 것은 책임회피입니다. 교회가 연합할 때만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 교회들의 도움과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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