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손현정 기자] 미국 연방대법관이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에 대한 반대가 "두세 달이면 잠잠해질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지난달 미국 전역에서의 동성결혼 합법화에 찬성한 5명의 대법관 중 한 명인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이번 판결을 국기를 태우는 행위를 표현의 자유로 인정한 1989년 판결에 비유하며 이 같이 주장했다.
케네디 대법관은 지난 주 6월의 판결에 대해서 처음으로 견해를 밝히면서, "1989년의 판결이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여론도 변했다"며,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반대도 곧 사그라들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는 1989년 당시를 회상하면서 "80명의 상원의원들이 법원에 반발했고 부시 대통령은 한 주를 할애해 국기 공장을 방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두세 달이 지나자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케네디 대법관의 이러한 발언은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자들이 이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우스텍사스법과대학의 조쉬 블랙맨 교수는 크리스천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동성결혼을 국기를 태우는 일에 비유하다니 정말로 실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블랙맨 교수는 특히 케네디 대법관이 "이제는 신뢰의 자본을 재비축해야 할 때"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이 신뢰의 자본을 인출하고 있고 그래서 신뢰를 재비축해야 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동성결혼 합법화를 통해서 신뢰를 재비축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제껏 신뢰의 자본을 갉아먹어 온 판결은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동성결혼을 금지해 온 주 법들에 대한 비판이냐는 것이다.
케네디 대법관은 지난 6월 28일 내려진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총 9명 가운데 보수 성향 대법관 4명이 반대표를 던진 가운데서 그동안 중립 입장을 보여 왔던 케네디 대법관은 진보 성향의 대법관 4명에 합류해 동성 커플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다수의견에서 "결혼할 권리를 이성 커플에게만 제한하는 것이 오랫동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현재로서는 그렇지 않다. 동성 커플도 결혼이라는 기본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케네디 대법관의 견해와는 달리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이번 결정을 미국 사회에 장기간 영향을 미칠 중대한 과오로 보고 있다. 공화당 차기 대선 주자로 전망되는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은 이번 판결을 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 만큼이나 '사법적극주의(judicial activism: 판결이 판사 개인의 의견이나 정치 성향에 의해 이뤄져도 된다는 견해)'를 보여 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이번 판결에 유감을 표시한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 역시 반대의견문을 통해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은 '동성애자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다수 대법관들의 확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당신이 동성결혼 허용을 바라는 미국인들 중 한 명이라면 이번 판결에 대해 축하하겠지만 이 결정은 헌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동성결혼에 대한 문제는 헌법이나 연방대법원이 판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헌법에는 결혼과 관련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며 이 문제는 연방대법원이 아니라 주 정부가 해석해야 한다. 동성결혼은 법원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법원은 입법부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반대표를 행사한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도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과 관련해 "연방대법원이 초법적인 권력을 행사했다"면서 "이번 판결은 주정부와 투표를 통해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미국 정부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깬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