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총회(총회장 정서영 목사)는 지난 14일 긴급 징계위원회를 열어 이근안씨의 목사직 면직 결정을 내렸다고 18일 밝혔다.
교단 측은 "이근안 씨는 당시로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목사가 됐으며 '겸손하게 선교를 할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면직도 감수하겠다'고 약속했다"며 "하지만 이후 애국자처럼 말하고 다녔고 김근태 고문의 빈소에서 회개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 등 여러 면에서 결격 사유를 드러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씨가 목사로서의 품위와 교단의 위상을 떨어뜨렸으며 겸손하게 선교하겠다는 약속도 어겼다는 판단에 따라 이같이 징계했다"고 전했다. 덧붙여 교단 측은 "한 번 면직이 되면 복직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앞서 이씨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8년까지 대공 방첩 담당 수사관으로 활동하며 일명 '고문기술자'로 불리었다. 그러다 군사정권 붕괴 이후 1988년 12월부터 12년간 이씨는 불법 체포 및 고문 혐의로 수배돼 2000년 체포, 7년간 수감생활을 하며 통신교육으로 신학교를 마쳤다.
이후 총회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2008년 10월 장로회 분파 중 한 곳에서 나이 70세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이씨는 이후 교정 선교 활동 중 신앙 간증 및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고문기술자가 아닌 애국자"라고 표현해 논란이 돼왔다.
지난해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도 “나는 고문 기술자가 아니고 굳이 기술자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심문 기술자’가 맞을 것”이라면서 “그런 의미에서 심문도 하나의 예술이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씨가 "당시 시대 상황에선 고문이 애국이었다"고 밝힌 내용이 최근 김근태 고문이 별세하자 몇몇 트위터리안이 문제삼아 다시 논란이 됐다.
또 김근태 고문이 별세하자 '고문 휴유증'이라는 얘기가 나왔고 이근안씨가 빈소나 장례식장을 방문할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지만, 이근안씨는 빈소나 장례식장을 찾지는 않았다.
이에 한국종교개혁시민연대(한종련)와 한국교회정화운동협의회(한정협) 등 단체들은 "이근안 씨의 목사 안수를 철회하라"며 서명운동을 벌이고 철회 요청서를 해당 교단에 제출한 바 있다.
또 국내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이근안 목사안수 철회' 청원이 올라와 △한국교회는 더 이상 목사를 남발하지 말 것 △이근안은 고인과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목사직을 사임할 것 △교단은 이근안을 목사직에서 사임시킬 것 등을 요구했다.
한편 소설가 공지영씨는 김근태 고문의 별세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몇 년 전 김 상임고문을 뵈었을 때 우연히 이근안을 만났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당시 이근안이 울며 ‘잘못했다, 용서해 달라’고 했을 때 너무 가식처럼 느껴져 도저히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 그게 몇 달 후까지 자신을 괴롭힌다며 ‘나 너무 옹졸한가’라고 물으셨다”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