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로비 관련 자료를 은닉·인멸한 혐의로 기소된 박준호(49) 전 상무와 이용기(43) 전 비서실장이 27일 일부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정치권 로비 의혹과 증거인멸을 위한 조직적 공모 혐의에 대해선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이헌숙 판사 심리로 이날 열린 1차 공판에서 두 피고인 측 변호인은 "이들이 증거를 은닉한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한다"면서도 "정치권 로비 의혹으로 인해 범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변호인은 "이들이 증거를 숨기려 한 이유는 당시 진행되고 있던 자원외교 비리 수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로비 의혹에 대한 증거를 은닉하려 했다는 검찰 측 공소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이 경남기업을 압수수색한 배경은 자원외교 비리 수사이며, 이 사건으로 영장이 청구된 성 전 회장이 사망하는 바람에 검찰 수사 방향이 '성완종 리스트'로 바뀐 것"이라며 "두 사람은 성 전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이와 같은 은닉 행위를 시도했고, '성완종 리스트' 발견 이후 새롭게 나타난 자료를 은닉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증거를 은닉했다는 검찰 측 주장 또한 부인했다. 이들은 "박 전 상무와 이 전 실장이 개별적으로 증거를 숨기려 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를 공모했다는 부분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또 회사 내부 폐쇄회로(CC)TV를 끄고 직원들을 동원해 회사 내부 자료 등을 폐기한 혐의에 대해서도 "CCTV는 다른 직원이 '끌까요?' 물어서 승인한 것일 뿐, 자료를 파쇄한 사실은 몰랐다"고 부인했다.
반면 검찰은 "이번 수사(증거인멸 수사)는 사실상 성 전 회장의 정치권 로비 의혹을 규명하는 수사와 동일하다"며 "이들은 관련 자료를 폐기·은닉하는데 있어 선별 기준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원외교 비리 사건 자체에 대해서도 이들은 증거를 은닉·인멸하려 했다"며 "변호인측 주장은 성 전 회장의 사망으로 인해 피고인들의 행위가 가벌성이 적다는 취지로 이해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검찰은 "이 사건(증거은닉·인멸)은 정치권 로비 의혹 관련 수사의 본체라고 할 수 있다"며 "현재 관련자 추가 기소, 자료 추적 등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건이 별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11일 이들을 성 전 회장의 정치권 금품로비 의혹과 관련한 자료를 조직적으로 은닉·폐기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경남기업 본사에 대한 검찰의 첫번째 압수수색이 시작되기 1시간25분 전인 지난 3월18일 오전 6시35분께 회장실 여비서 조모씨에게 전화를 걸어 회장실에 있는 자료를 치울 것을 지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의 2차 압수수색이 진행되기 전인 3월25일에는 성 전 회장의 지시를 받은 박 전 상무가 CCTV를 끄고 직원들을 동원해 각종 자료를 빼돌려 옆 건물 지하주차장에 옮겨 실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총 2차례에 걸쳐 진행된 조직적 증거인멸 과정에서 자금 관련 자료 등이 지하 1층에 설치된 파쇄기를 통해 폐기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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