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선교신문 이지희 기자] (사례1) 한국 주류교단의 대형교회에서 파송받은 A선교사는 H국에서 현지인 대상 선교를 하다 현지 한인이 증가하면서 한인교회를 세우고 담임목사가 되었다. 한인교회는 담임목회자에게 합당한 사례를 했지만, 한국 파송교회와 후원교회들은 그에게 계속 거액의 선교헌금을 보냈다. 결국 이 일로 구설에 올랐지만 본인과 파송교회는 개의치 않았고, 심지어 파송교단은 그를 한국선교를 빛낸 선교사로 선정해 포상했다. 오랜 세월 문제가 지속된 후 A선교사가 현지에서 지병으로 사망하자, 유품 정리 중 엄청난 금액의 현금이 발견됐다.
(사례2) J국에 파송된 B선교사는 파송교회나 주변 동료들로부터 인정 받는 모범적인 사역자다. 사역에 대한 열정으로 많은 선교사가 그를 존경하고, 크고 작은 선교대회에서 모셔가지만, 몇 해 전부터 부부싸움이 잦아지더니 최근 별거 상태에 들어갔다. 자녀들과 아내를 귀국시킨 B선교사는 J국에서 예전처럼 열심히 사역하고 있다. 파송교회와 단체는 사역이 더 중요하다는 핑계로 B선교사의 가정문제를 덮어두고 있다.
(사례3) C선교사는 사역 열정이 강하고 수완 좋고 포부가 커서 K국 선교사로 파송된 지 2~3년 만에 수십 개의 현지교회를 개척하고 수많은 현지 지도자를 양성한 '거물 선교사'가 되었다. 파송교회와 교단은 C선교사의 업적을 홍보하고 그를 배출한 사실을 공공연히 자랑하지만 현장에서 본 C선교사는 복음적인 사역자와 거리가 멀다. 현지 성도들과 지도자들을 하대하며 극단적인 권위주의를 드러냈다. 동역하던 장단기 사역자들은 오래 견디지 못하고 떠나도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파송교회와 교단은 풍부한 재정과 인력을 지원하고 있다.(※위 사례들은 필요에 따라 유사한 몇 사례를 하나로 묶기도 하고, 특정 지역, 사역 유형, 선교단체나 교단에 국한되지 않은 것임)
최근 제주도 켄싱턴리조트에서 열린 2015년 방콕포럼에서는 선교사 정신건강이 사역과 사역 대상, 공동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한국 선교계와 교계가 선교사 정신건강을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선교사의 정신건강, 왜 중요한가'를 주제로 발제한 국제위클리프 부대표 정민영 선교사는 한국 선교사에 대한 목회적 돌봄과 한국선교의 재정적·사역적 책무 부재 등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며 "선교사의 사역, 사역대상, 소속 공동체에 정신건강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한국교회에 환기시키고, 이 사안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선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선교사나 부부가 본인의 문제를 부인하고 상담치유를 거부할 때 선교공동체가 취할 대안 ▲한 가정에서 정상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사람의 사역과 하나님 나라 확장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재조명 ▲반복음적 자세와 가치관이라도 가시적 성과를 낼지,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하는지 재고 ▲현장에서 드러난 문제를 은폐하고 미화하는 관행 재고 ▲건강한 사역자 검증 후 파송하는 방안 등을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정민영 선교사는 선교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 가지 대안으로 ①공동체의 검증과 걸러내기 강화(사역자를 검증하고 걸러내 양질의 인력을 현장으로 파송) ②사역보다 사람에 초점 맞추기(일 자체보다 일꾼이 중요, 하나님의 형상 회복하고 사람다워지는 것이 사역 조건이자 목표) ③정신건강의 함양 및 치유(한국 교계 및 선교계에 정신건강 중요성에 대한 인식 제고, 이를 위한 노력과 투자) 등을 제안했다. 그는 "한국선교의 미래가 한국 사역자의 정신건강과 긴밀하게 연관된 것을 범교계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첫 단계"라며 이번 방콕포럼이 첫 단추를 끼는 역할을 감당하길 기대했다.
자아 인식과 건강한 영성은 긴밀하게 연결
'정서적으로 건강한 선교'를 주제로 발제한 프론티어 벤처스(Frontier Ventures) 공동대표 김종헌 선교사(Chong H. Kim)는 "우리 자신을 잘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것이고, 또 열방과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며 "자아 인식 없이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자아 인식과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와 함께 예수님의 제자로서 정서적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리의 영성은 건강한 정서적 삶, 건강한 자아 인식, 타인들과 건강한 관계로 번역되어야 하며, 자신의 정서에 정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헌 선교사는 건강한 영성을 위해 ▲정설보다 정행 강조(우리 자신이 메신저가 되는 것이 메시지 자체만큼 중요) ▲동원, 훈련, 파송의 재고 ▲파송교회의 기대 재교육(한국교회가 장기적 안목으로 사역자들에게 투자하고, 결과뿐 아니라 현장에서 그들의 삶을 묻고 평가) ▲선교사 가정(선교현장 가정의 전반적인 정서 건강과 복음 구현) ▲여백과 여유의 창출(자아 인식과 자기 사랑을 향한 여유 창출) ▲안전한 공동체의 필요(건강한 자아 인식 및 정서적 건강 배양에 안전한 신앙공동체) ▲자기 사랑의 신학과 선교학 재고, 개발 등을 제안했다.
한편, 이번 방콕포럼에는 26명의 해외선교단체 멤버케어 담당자, 선교사 상담전문가, 지역교회 목회자, 선교사가 참여해 건강한 선교사상과 바람직한 선교사 모델 등을 다루며 선교사의 정신건강 관리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