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윤근일 기자] 민주공화정을 한국의 정체성으로 설정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기독교의 역할과 사상을 돌아보는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은 9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신한빌딩에 위치한 연구원에서 '한국기독교 건국이념'이라는 주제로 월례 세미나를 가졌다.
이 세미나에서 연구원 실행위원인 김명구 박사는 건국과정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한국 기독교를 통해 이들의 건국 사상이 대한민국 정치에 끼친 영향을 설명했다. 특히 김 박사는 이날 발제에서 기독교 건국론을 주장한 이승만, 김구, 김규식에 대한 것을 지양하고 기독교 내부의 민족주의계인 흥사단과 수양동우회, 그리고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서술했다.
김 박사는 헌법에서 대한민국이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언급한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건국의 주역들 중 상당수가 기독교인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기독교 일각에서는 이미 개화시대부터 민주주의를 갈망했으며, 기독교가 민주주의 국가를 이룰 수 있게 한다고 믿고 있었다"며 "교회뿐만 아니라 YMCA나 흥사단과 같은 기독교사회단체들, 배재학당, 이화학당, 경신학교, 숭실학당 등 미션스쿨에서도 자유 민권사상, 만민평등사상,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관 등 가르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방 후 "교회나 교회에 속한 이들은 정치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을 추종하거나 미국의 정책에 순응해서 민주주의나 반공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 박사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상해임시정부는 기독교가 한국의 정체, 곧 '민주공화제'를 설정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고 강조한다. 김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임시헌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은 중경정부에 이르기까지 5번이나 헌정을 개정했지만 계속 유지가 되었다. 해방 후에도 대한민국 헌법 제1조로 계속되고 있다. '민주공화제'라는 표현은 동북아의 어느 국가의 헌법에도 나오지 않는 표현이었다.
김 박사는 "한국 기독교가 미국을 지지하고 적극 협조했던 것은 미국이 기독교회를 존중했고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일제 치하 독립운동에서 공산주의 실체를 경험한 이후 공산주의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며 "반공의식 또한 이 때 생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해방 후 기독교인들이 대부분인 한민당과 흥사단의 인물들은 공산주의가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 이념이라는 데에 이의가 없었고 서구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근대적 인권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국제 감각과 세계성의 인식이 확고해 자유민주주의관은 건국이념이 되었다"고 김 박사는 설명했다. 다만 "기독교계가 미군정, 혹은 미국 정부의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따르지 않았음은 기독교회나 교인들이 갖고 있던 경제관을 보면 알 수 있다"며 "이들은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김 박사는 "남다른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한국 기독교계는 반공을 건국이념으로 삼았다"며 "한국교회는 광복 후 북한에서의 공산정권의 만행을 목도하면서 그 반공의식을 더해갔고 한경직을 비롯한 교회의 인물들은 민주주의 세계의 건설을 위해 공산주의를 타파해야 함은 물론 공산주의자들과는 어떠한 타협이나 합작이 있을 수 없다고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송진우가 처음 사용한 "경제민주주의"를 언급하며 기독교 민족주의계가 사회주의적 요소의 경제정의를 주장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독교 민족주의계가)자유주의 원리를 근간으로 했지만 ▲노동자의 경제적 자주성과 ▲사회적 복리를 주장하였고 원칙상 사유재산제도를 인정하나 ▲ 대기업은 국가가 경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대자본의 전횡도 막으려 하였다"고 밝혔다. 또한 "대토지 소유를 금지하여 자작농 정도로 할 것을 주장하는 등 독점적 자본을 제압하여 근로 대중의 생활 안정을 도모하려 했다"면서 "이들의 의식 속에 있는 성서적 인간관, 곧 신부적(神賦的) 인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연구원 관계자는 "올해 우리 연구원에서는 교회와 국가 그리고 기독교인의 바람직한 관계를 생각하며 한국교회의 위상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이번 세미나는 한국기독교와 건국의 이념 문제를 다루는 매우 흥미 있는 발제가 됐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