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한 중학교 1학년 A군은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 2∼3명과 함께 선배들 4∼5명에게 끌려가 돈을 빼앗겼다. 그 뒤로도 수시로 1천∼1만원을 빼앗기고 종종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A군은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학교생활을 했다.

최근 학교에서 `학교폭력 설문조사'를 하자 A군은 용기를 내 이 같은 사실을 알렸고, 학교 측의 신고로 경찰의 조사가 시작됐다.

A군은 경찰조사에서 "부모에게 거짓말을 해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며 "돈이 없는 날은 겁이 나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의 중학생 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돈을 빼앗기고, 흡연을 강요당하고, 물고문까지 받았지만 보복받을까 무서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이 학생의 유서는 오늘날 학교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생생히 보여줬다.

`청소년 폭력 예방재단'이 최근 발표한 `학교폭력 전국 실태조사' 결과도 충격적이다.

이 재단에서 올해 학교 폭력과 관련해 상담한 학생 1만4천939명 중 520명이 자살 충동을 느꼈고, 196명이 자해를 경험했으며, 우울증을 호소한 학생도 1천392명에 달했다.

이 재단의 한 관계자는 "학교 폭력으로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자해를 경험했다는 아이들의 상담이 증가하고 있다"며 "폭력을 당한 아이들이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길이 막혀 있다 보니 극단적인 행동까지 가는 사례가 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육 당국은 학교폭력이 큰 사회문제로 대두할 때마다 호들갑을 떨며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행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아 일과성 전시행정에 그치고 있다.

비근한 예가 작년부터 교과부가 운영하는 `학교문화 선도 학교' 제도이다. 교과부는 지난 7월 150개였던 선도학교를 309개로 늘리고 학교 관리자와 교사를 대상으로 연수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이 웅변하듯이 이런 제도가 효과를 봐 학교 폭력이 눈에 띄게 줄었는지는 의문이다.

충북교육청이 대안교육기관인 `위(We) 센터'를 시ㆍ군별로 설치, `문제학생'을 대상으로 인성교육을 강화하는 것처럼 다른 시ㆍ도교육청도 학교 폭력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시책을 운영하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교육 당국의 정책 실패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이상민 의원은 지난 10월 대전ㆍ충남교육청 국정감사에서 "대전과 충남의 학교 폭력 증가율이 각각 19.6%, 19.2%로 나타났다"며 "특히 대전지역 고등학교의 폭력사건은 55건에서 103건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학교 폭력 발생건수는 지난해 201건(피해학생 391명)에서 올해 1∼10월 178건(〃 339명) 소폭이나마 되레 증가했다. 이 가운데 사건이 커져 검찰과 경찰에 입건된 사례는 지난해 25건에서 올해 10월 말 현재 46건으로 2배로 늘었다. 폭력의 질이 그만큼 나빠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수치조차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일선 학교가 교내 폭력 실상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사례가 많아 실제로 벌어진 학교 폭력은 교육청에 보고된 건수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얘기다.

학교 폭력이 외부로 알려지면 학교 이미지가 실추되고 교육청 등 상급기관의 질책을 받기 때문에 일선 학교에서는 문제가 생기더라도 `쉬쉬'하면서 쌍방 화해를 종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가 학교 폭력으로 얼룩져 있는데도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이 구두 사과나 교내ㆍ외 봉사활동 정도의 경징계에 그쳐 계도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전교조의 한 관계자는 "일부 학교 관리자들은 학내 폭력이 발생해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 문제를 덮기에 급급하다"며 "학생들 사이에서 학교에 말해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불신이 팽배해 학교 폭력에 대한 대책이 탁상공론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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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