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북한에서 덩샤오핑식 개혁개방이 먼저 이루어져야 지도부 내에서 개혁개방세력이 형성되고 김정은 이후 북한에서 집단지도체제가 출범해 '탈(脫)김일성·김정일화'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통일학회(회장 오일환 박사)가 지난달 28일 개최한 광복 70주년·분단 70년 특별 학술심포지엄이 '대북정책, 국가와 교회의 파트너십'을 주제로 개최된 가운데, '통일을 위한 국가와 교회의 역할'을 주제로 발제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정성장 박사는 먼저 '탈북자 중 북한에서 최고위직'을 지낸 황장엽 전 북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의 말을소개하며 "황장엽씨는 생시에 '북한이 스스로 힘으로 덩샤오핑식 개혁개방을 시작하면 결국 자유민주체제로 바뀌어 남한에 흡수될 수밖에 없다'라는 장기적 전망 하에 '김정일 이후의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 정책을 펴도록 해야지' 섣불리 자유민주화까지 요구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며 "황장엽씨의 이같은 주장은 매우 현실적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에서 덩샤오핑식 개혁개방이 먼저 이루어져야 지도부 내에서 개혁개방세력이 형성되고 김정은 이후 북한에서 집단지도체제가 출범해 '탈(脫)김일성·김정일화'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 지도부에서 마침내 고르바초프 같은 급진적 개혁파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노동당 일당 독재를 보장하는 헌법 제11조를 폐기하고 다당제를 도입해 민주화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그러므로 한국정부는 긴 호흡을 가지고 북한체제가 중국식 개혁개방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하고 북한 지도부 내에서 개혁개방 세력이 형성되어 그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며 통일을 위한 한국 정부와 교회의 과제를 제안했다.
■ 한국교회, 북한 종교의 자유 허용할 것 지속적으로 촉구해야
첫째로 그는 "한국 교회는 북한에서의 종교의 자유 억압 실태를 지속적으로 지적하면서 북한 당국이 종교의 자유를 허용할 것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며 "김일성은 1962년 사회안전성(현 인민보안부)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기독교, 천주교에서 집사 이상의 간부들은 모두 재판해서 처단해 버렸고, 그 밖의 일부 종교인들 중에서도 '악질들'은 모두 재판했으며, 일반 종교인들은 본인이 개심하면 일을 시키고 개심하지 않으면 수용소에 가두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1970년대 남북대화가 시작되면서 북한 당국이 대외적 선전 차원에서 '종교단체'를 재조직했지만 그렇다고 기독교에 대한 탄압 정책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며 "북한에 스탈린식 개인절대독재정권이 지속되는 한 앞으로도 장기간 북한이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한국 교회는 하나의 연합체를 구성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실시하면서 지속적으로 북한 당국에 선교와 믿음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설득하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고 했다.
정 박사는 구체적으로는 "한국 교회는 대통령이나 통일부 장관 등 정부 당국자와의 면담을 통해 정부가 북한에서의 종교의 자유 허용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줄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고 제시했다.
그는 "기독교에 대해 북한에서 1981년에 발간된 '현대조선말사전'에서는 '낡은 사회의 불평등과 착취를 가리우고 합리화하며 허황한 천당을 미끼로 하여 지배계급에게 순종할 것을 설교'하는 종교로 설명했으나, 1992년에 발간된 '조선말대사전'에서는'예수 그리스도를 교주로 숭상하며 그의 교리를 신조로 하는 종교'로 설명을 바꾸었고, 2000년에 발간된 '조선대백과사전'에서는 '신의 아들이라는 예수를 크라이스트로 내세우고 그에 의한 인류의 구제를 설교하는 종교'로 설명하고 있다"며 "북한이 기독교에 대한 냉전시대의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부분적으로 완화한 데에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진행된 남북고위급회담 및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이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 중국 덩샤오핑 개방정책 이후 종교에 대한 통제 완화
이어 중국의 예를 들며 "덩샤오핑의 개방정책 이전 중국 당국도 종교를 탄압했지만 개방 이후 종교에 대한 통제를 완화해 2012년 핸재 중국에는 공식적으로 기독교도 1600만명과 교회 5만5000곳이 존재하며 선교사와 교회 자원봉사자가 각각 3만6000명, 10만명에 이르고 18개의 신학교와 성경학교 1800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2년 7월에는 성경이 중국어로 1억권이나 발간되었다"며 "개방 이후 중국에 이처럼 기독교인이 괄목할 정도로 늘어났지만 그것이 중국 정치체제에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 정부와 교회는 북한 당국에게 이 점을 지적하면서 북한도 중국의 모델을 따라 기독교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고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다"며 "북한이 한국처럼 단번에 신앙의 자유를 전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교회는 북한이 중국의 개방 초기 또는 현재와 같은 수준의 종교활동을 허용하는 것이 북한정치에 결코 불안정을 가져오지 않으며 오히려 경제회복과 북한의 대외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덧붙여 "아직은 북한 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정도의 영향력은 없지만 북한 주민의 휴대폰 사용 증가, 북한의 대중 인력 파견 증가, 북한 경제의 대중 의존도 심화, 북한의 경제개발구와 특구 지정으로 인해 경제개방의 확대는 미래에 북한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요소들이다"며 "북한의 경제 개혁과 개방 그리고 남북경제협력의 확대로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된다면 이는 북한 주민들의 '자유에 대한 욕구'를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 한국 교회, 정부에 방북에 대한 과도한 규제 철폐 요구해야
셋째로 정성장 박사는 "한국 교회는 한국 정부가 교회 관계자들의 방북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철폐하도록 요구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 교회가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실시하면서 북한 당국과 북한 지역에서의 교회 설립 및 종교의 자유 허용 문제를 가지고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수시로 북한을 방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민간단체가 방북할 때마다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남북한 간의 관계가 악화되면 한국 정부가 민간단체들의 방북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한국 교회가 북한 당국과 종교의 자유 문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대화를 진행할 수 없다"고 했다.
넷째로는 "한국교회가 국제사회, 특히 국제적인 교회 연합체, 국제인권기구와 협력해 북한이 종교의 자유 탄압을 중단하고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식량난으로 탈북자가 급증하면서 경제적인 이유로 탈북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처벌은 완화면서도 남한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과 접촉한 탈북자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 신앙과 관련된 탈북자들을 모두 정치범으로 규정하여 처벌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종교 탄압 실상을 소개했다.
다섯째로는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 중 통일 이후 북한에서 선교할 일군들을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남한과 북한 주민들은 모두 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동안 남북한의 언어가 상당히 이질화되어 탈북자들이 입국 후 초기에 남한 사람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남한 사람들도 탈북자들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남북한 주민들의 의식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통일 이후 남한 사람들보다는 탈북자들이 북한 지역에 올라가 선교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고 전망했다.
정성장 박사는 "한국 교회는 한국 정부에게 남북 교류협력의 확대를 제한하는 과도한 규제를 철폐하고 남북 당국간 대화의 제도화를 통해 '작은 통일'에서 '큰 통일'로 나아가도록 촉구하면서 대북 선교를 위한 '씨앗'을 뿌리는 노력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고 마무리했다.
■ 한계 상황에 대한 분노에 근거한, 하나님의 개입에 대한…'희망적 기대'
이 발제에 대한 논평한 남광규 박사(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는 "북한 '조기붕괴론'에 대한 한계를 설득력 있게 잘 분석해 주셨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의 남북관계, 대북정책도 주관적인 '희망적 기대'에 근거해 현실성 없는 북한붕괴론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과 실제 북한 내 급변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북한 체제 내에서 대체가 가능하며 한국과 미국을 비롯해 외부에서 개입해 정상화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하기 어렵다"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북한 변화나 혹은 붕괴를 말할 때 수반되는 '희망적 기대'라는 의미는 북한체제의 기본적 성경을 감안할 때, 현실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 사실 가까울 수 있다"며 "그러나 사람들이 '희망적 기대'를 할 때는 차마 인간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대한 분노에 근거해 '희망적 기대'를 현실에 투영하기도 한다. 또한 객관적 현실과 상관없이 인간이 역사를 바꾸어 왔다는 것, 혹은 교회사적 관점에서 때가 되면 하나님이 그러한 변화에 역사에 개입해 왔다는 해석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독일)통일이 가능했던 동독의 교회에 대해 말하면서 북한 내에 그러한 변화가 가능하기를 역시 '희망적으로 기대'한다. 동독 정권은 정권 수립 후부터 몰락에 이르기까지 동독 내 교회를 해체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은 성공하지 못하였고, 그 배경에는 서독교회의 재정적 지원(서독교회 예산 40%)이 뒷받침되었다"고 했다.
그는 "동독 국민들이 평화혁명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사회주의 정권의 탄압에 신음하는 국민들의 피난처가 되었고, 대언자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동독 전역에 저항네트워크를 조성하는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며 "반면 서독교회는 재정과 물자 지원, 신학과 교계 인적, 인프라 교류 등을 늦추지 않았다. 1957~1990년 사이에 서독교회가 동독교회가 지원한 액수는 상상을 초월한 천문학적 금액이며 동독에서 정치범으로 수감된 이들을 보석금을 주고 서독으로 데려오는 활동도 했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1963년부터 1989년까지 서독 정부는 정치범 석방거래를 위해 약 34억 4000만 마르크(약 1조 7000억원)의 현금과 물자를 동독에 주고 3만 4000여명의 정치범을 데려왔다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통일세와 같은 의무적인 형식은 아니지만, 통일을 대비하는 우리 사회의 자율적인 역량 강화와 준비 차원에서 교회가 중심이 되어 통일재원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사회의 특성상 동독과 같은 종교 조직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동독의 교회와 같은 역할을 북한 내에서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현실이다"며 "현재로서는 정 박산짐이 제시한 교회의 역할 방향을 중심으로 남북교류에 있어 종교계가 갖는 성경을 활용한 대북지원과 교류를 통해 북한 사회 내에 영향을 미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북한이 호응해 올 수 있느냐 하는 점 역시 '희망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실에서는 역시 어려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희망이 사라지면 모든 '진짜 나'도, 참된 생명도 기대하기 어려운 한계적 존재가 아닌가 한다"며 에스라 6장 16절과 같은 '38선 이북의 회복'을 '희망적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