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본격적인 ‘조문 정국’이 시작된 가운데, 기독교계가 ‘애도’하고 ‘조문’하는 것이 합당한지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평화와통일을위한기독인연대(평통기연)는 “한국 정부와 교계가 김 위원장 사망에 대해 조문할 것과 사랑이 담긴 인도적 생필품 지원에 어느 때보다 적극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는 입장을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앞서 진보측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김영주 목사)와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 유정성 목사)도 “한국 정부는 종교계를 비롯해 시민사회 진영을 포함하는 조문단을 구성해 북측에 보내라”고 요청한 바 있다.
평통기연은 “생전 김정일은 故 김대중 대통령과 6·15선언을, 故 노무현 대통령과 10·4선언을 합의한 바 있기에 고인의 이러한 유지를 받들어 남북한 당국자들은 그 합의에 기초한 보다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결의를 이끌어내길 소망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한국 교계의 보수와 진보를 아울러 평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평통기연에서 “교계가 김 위원장 사망에 대해 조문할 것”, “김정일의 유지를 받들어” 등의 문구를 포함시킨 것을 놓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종훈 사무총장 “합리적 범주에서 제안한 것”
평통기연 성명 초안을 작성한 정종훈 사무총장(연세대 교수)은 “정치인들이 정치적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조문을 간다면, 교계는 평화의 선봉자로서 민간 차원에서도 참여하는 게 필요하다”며 “복음의 핵심이 사랑이고 평화인데, 모든 교인들이 다 동의하기는 어렵겠지만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주에서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사무총장은 “이 부분에 대해 비판의 소지가 없는 건 아니다”면서도 “그럼에도 교회는 피스메이커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주장을 한 것”이라고 했다.
정 사무총장은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게 기독교의 사랑이라 생각한다”며 “인간적으로 원수 관계라도 원수를 사랑하고 품고 기도하는 자체도 중요한 일이지만, 특히 그 다음을 생각하자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제까지는 적대적 관계가 설정됐더라도 이번 일을 기점으로 살아있는 자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차원에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유지’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어찌됐건 김정일과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6·15, 10·4 선언에 합의했는데 이번은 김정일 사망 관련 사안이니 이에 대해 일정 부분을 인정하면서 다음을 모색하자는 것”이라며 “그 부분에 대한 인정도 중요하고 합의도 평가하지만 더 계승하고 발전적으로 구체화시키는 게 우리 과제”라고 해명했다.
그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른다’는 뜻에 대해 “평통기연은 폐쇄적인 이념성향에 매몰되지 않고 언제든 보다 나은 입장을 추구하는 열린 보수, 열린 진보 인사들이 동참하고 있다”며 “이번 성명도 상임공동대표 되시는 분들께 다 이메일을 보내고 특별한 이의나 문제제기가 없어 발표했고, 보수라 해도 다양한 보수가 있지 않느냐”고 했다.
서경석 목사 “정부의 현 입장이 가장 온당하다”
서경석 목사(기독교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는 ‘김정일 조문’에 대해 “정몽헌 씨나 김대중 전 대통령 가족들의 조문은 허용하고, 정부는 조문하지 않겠다는 현재 정부 입장이 가장 온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정부가 모든 사람이 무차별로 조문하겠다고 해서 허용하는 것은 맞지 않고, 조문은 주장할 수 있겠지만 국민 정서를 생각할 때 정부가 취한 입장이 가장 적절하다”고 밝혔다.
서 목사는 “그동안 김정일이 저지른 악행을 생각하면 조문은 있을 수 없지만, 나라 장래를 종합적으로 생각할 때 한편에서 조문을 통해 북한 체제와 연결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일도 필요하다”며 “다만 정부가 조문하겠다는 사람들에 대해 적절한 선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조문하겠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특히 친북좌파들은 조문하겠다고 나설 것”이라며 “그런 이야기에 일일이 언급하거나 이에 대해 평가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인터넷 보수 교계 논객인 안희환 목사(예수비전교회)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이상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그 사람 자체는 불쌍하지만, 그의 행동이나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가한 고통 자체는 용납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그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면,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그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당하고 말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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