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한국구세군] 구세군은 인간의 영혼만을 구원하는 개인구원의 차원을 넘어 그 개인이 살아가는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고 잘못된 사회구조로 인하여 고통 받고 소외된 자들의 육체적 필요를 채워주는 전인적 구원을 그 선교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교정신에서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 Heart to God, Hand to Man)'라는 선교 모토를 갖고 지난 150년간 발전해 왔습니다.
초기 구세군은 '가라! 영혼에게로, 극악한 자에게로'라는 창립자의 외침과 복음적 열정을 따라 주로 거리에서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대중을 향해 나갔습니다. 당시 영국사회는 산업혁명의 여파로 도시빈민과 실직자들이 거리에 즐비하였습니다. 구세군의 전투적인 복음전도의 방법은 때로 반대와 핍박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힘을 잃고 소망 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대중들에게 마음의 위안과 그리스도 안에 새 삶의 희망을 갖게 하였습니다. 특히 오늘날 사회복지의 고전으로 알려진 창립자 윌리엄 부스의 저서 '최 암흑의 영국과 그 출로 :In Darkest England & The Way Out, 1890'는 19세기 말, 영국사회를 일깨우며 구세군의 존재와 위력을 널리 알리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구세군 발전에 주목할 만한 대목은 1870년 기독교 선교회 법규에 여성이 전도활동과 운영에서 남성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활동할 수 있도록 명시함으로 구세군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확고하게 규정하였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여성도 남자사관들과 같은 권위와 지위를 임명받게 되었고, 때로는 남자 사관보다 더 높은 위치 임명받기도 하였습니다. 최초 사관을 양성하기 시작한 1879년에도 남학생과 여학생이 동등한 자격을 갖고 교육의 기회를 제공 받았고, 동등한 사관의 자격을 갖고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남녀가 함께 사역자로 동역할 수 있다는 진보적인 의식과 방법은 구세군 발전에 빼놓을 수 없는 요인으로 자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창기부터 구세군의 거룩한 구령(球靈) 사역에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음악은 구세군 역사에 창의적인 전도와 발전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찬양을 통해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였으나 1878년부터는 솔즈버리(Salisbury)거리에서 금관악기를 연주하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 구세군의 브라스 밴드(Brass Bend)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복음 선교를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준 군대식 조직과 체제를 갖춘 구세군이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영국을 넘어 전 세계의 모든 대륙에 확장되기 시작한 시기는 1880년부터였다. 이후 미국을 시작으로 1912년 창립자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1829~1912)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세계 58개 나라에 구세군이 확장되었다. 영국 동부런던에 가면 윌리엄 부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 동상은 구세군에서 세운 것이 아니다. 동부 런던 빈민들의 친구였으며, 산업혁명 이후 죄악으로 어두워져 가는 영국 사회를 구원하는 일에 자신의 일생을 바친 구세군의 창립자 윌리암 부스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세워진 것이다.
창립자와 그의 아내였던 캐더린 부스가 세상을 떠나면 구세군도 없어질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 구세군은 세계 126개 나라 세계 도처에서 발전하고 있으며, 복음전도 사역과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위해 봉사하는 지구촌의 선한 이웃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공 및 출처] 한국구세군 [구세군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