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윤근일 기자] 청와대 문건 유출과 관련한 내부 조사를 담당해왔던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항명 사퇴' 논란이 채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이번엔 현직 청와대 행정관이 이번 문건 논란의 배후로 '탈박(脫박근혜)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지목했다는 주장이 14일 제기됐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청와대 홍보수석실 음종환 선임행정관(2급)이 이날 오후 사표를 전격 제출했다고 밝혔다. 민 대변인은 "음 행정관은 최근 자신이 했다고 보도된 발언과 관련해 본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며 "그러나 공직자로서 적절치 못한 처신으로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책임을 지고 오늘 사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인중이며 곧 음 행정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면직 처리할 예정이라고 민 대변인은 덧붙였다.
이같은 논란의 시작은 지난 12일 김 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수첩을 보는 모습이 한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면서다. 당시 김 대표의 수첩에는 '문건 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이니셜의 주인공에 대해 설이 분분하다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출신인 이준석씨가 최근 술자리에서 음 행정관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지목해 문건배후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주장했으나 음 행정관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이날 이 전 비대위원에 따르면 해당 발언을 음 행정관으로부터 들은 것은 지난해 12월1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주점에서다. 당시 음 행정관은 이동빈 청와대 제2부속실 비서관, 신용한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 손수조 부산 사상구 당협위원장 등과 이곳에서 술자리를 갖고 있었다.
음 행정관은 이 전 비대위원이 이 자리에 도착한 직후 "요새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 ○○○로부터 지령받나"라는 말을 시작으로 이 전 비대위원과 여타 정치평론가들이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속 등장한 소위 '십상시'와 관련해 종합편성채널에서 논평하는 것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음 행정관이 이 전 비대위원에게 "팩트(사실)가 아닌 얘기하지 말라"고 하자 이 전 비대위원은 "신문에 나온 이야기로 논평할 뿐이다. 그렇다면 팩트를 달라"는 식으로 반응했다고 전했다. 그러자 음 행정관이 김 대표의 수첩 메모에서 논란이 된 "문건 파동 배후는 김무성, 유승민"라는 언급을 했다는 게 이 전 비대위원의 설명이다. 또한 김 대표가 적은 메모 속 'K'와 'Y'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의 이니셜이라고 했다. 다만 해당 메모에서 이어진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단호한 문구는 다른 이야기와 섞인 것으로 보인다는 게 이 전 비대위원의 분석이다
이와 관련 당시 동석했던 손 당협위원장은 이후 김 대표가 발언 확인을 요청했으나 말을 아낀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사실이 전해지자 거론된 인사들은 불쾌해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가진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런 음해를 당한 것도 사실 기가 막히다"고 말했으며 유 의원은 전날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너무나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못박았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문건 유출 파문을 사과한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을 완전히 털고 가려던 차에 이번 일로 다시금 문건 파동이 재연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논란과 김 전 수석의 항명 파문에 이은 이번 사건으로 자칫 공직기강 해이 논란이 다시 불거질 것을 우려한 것. 관련보도 하루만에 속전속결로 음 행정관을 경질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와 관련해 음 행정관은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당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에 대해 언급한 것은 맞지만 그 배후로 김 대표와 유 의원을 지목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하며 "(이 비대위원과 회식 당시) 검찰 조사에서도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구속시키지 못하고 있을 때였는데 내가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만일 음 행정관이 K와 Y의 주인공으로 김 대표와 유 의원을 지목한 것이 사실이라면 문건 유출 파문을 여권 내부에서 벌어진 권력 암투의 결과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정치권에선 김 대표가 그동안 "당청은 한 몸"이라며 한껏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이며 노력한 상황과 달리 이번 사태로 당청 간 갈등이 쉽게 봉합되기 어려운 상황까지 왔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한 그동안 누적돼왔던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 등 여권 내 갈등이 한층 더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