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 : 마 28:11-20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2. 묵상
"아버지, 십자가에서 도망간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 앞에 서나이다. 그 중에는 의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 함께 하시며, 사명을 주십니다. 세상과 진리 사이에서 의혹하는 종이 다시 부활의 주님 앞에 서나이다.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의 최후 명령 앞에 아멘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예수 부활의 소식은 무서움과 큰 기쁨의 소식이다.
부활을 목도한 여인들은 속히 제자들에게 달려가 갈릴리로 가라는 주의 명령을 전한다.
한편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도 속히 대제사장에게 가서 부활의 전말을 전한다.
소식을 접한 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의논하여 예수 부활의 소식을 은폐시킨다(12절).
진리를 듣고도, 보고도 끝까지 은폐한 대제사장들, 그들은 진리보다 종교가 주는 권력과 부에 취해 멸망의 길을 간다.
이들은 경비병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말하게 한다(13절).
이 말들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두루 퍼진다(15절).
곧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기절한 후 무덤에서 깨어났다는 것이다.
가룟유다를 제외한 열한 제자들은 갈릴리로 가서 부활의 주님을 경배한다(16절).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여전히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17절).
그러나 예수께서는 개의치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하신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18-20절).
예수의 이 말씀은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지상명령'으로 불리고 있다.
먼저, 하나님은 부활하신 아들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셨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아들을 지극히 높이셨다.
그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신 것이다(빌 2:9).
그리하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빌 2:10).
모든 이름들, 곧 모든 존재들이 예수를 '주'라 시인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 것이다(빌 2:11).
그런데 하나님이 아들에게 주신 '모든 권세'는 한시적이다.
아들에게 위임된 권세는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를 아버지께 바칠 때까지이다(고전 15:24).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복음의 광채를 막는 원수가 정복될 때까지 왕노릇 하신다(고전 15:25).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인바, 그 원수가 멸망 받을 때 아들은 권세를 다시 아버지께 넘겨드린다(고전 15:26-27).
만물이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게 될 때 아들 자신도 아버지께 복종하게 되는데, 이로써 하나님이 만물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게 되는 것이다(고전 15:28).
그러면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들에게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이는 모든 족속, 모든 민족을 제자 삼기 위함이다.
오늘 말씀 18-20절에서 명령형 동사는 오직 하나, '제자 삼으라'이다.
"가라, 세례를 주라, (지키도록) 가르치라"는 명령형에 종속되는 분사형으로 되어 있다.
즉 헬라어 표기로는 포류센테스(가라), 밥티존테스(세례를 주라), 디다콘테스(가르치라)인데, 여기서 분사의 접미어 '테스'(접미어)는 '마세튜사테'(제자 삼으라)에 종속된다.
그런데 간혹 명령어에 종속된 분사가 명령어보다 선행하면 명령법적 의미를 갖는 경향이 있다.
선교학에서는 '가라'(go)가 중요하기 때문에, '제자 삼으라'는 명령어보다 선행하는 '가라'를 강조한다.
물론 이것은 중심에서 벗어난 예외적이고 특수한 해석이다.
본문에서 '가라, 세례를 주라, 가르치라'는 모두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종속된다.
이를 제대로 번역하면 '가면서... 세례주면서... 가르치면서... 제자 삼으라'이다.
즉 우리가 가는 곳이면 어디서든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지, 선교사로 나가거나 특별한 장소로 가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가라'를 명령했다면 아예 처음부터 명령어를 썼을 것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은 '제자 삼으라'이다.
제자의 의미는 초대교회와 복음서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의 단순한 추종자가 아니라 헌신자를 말한다.
물론 아리마대 요셉도 제자의 무리들 중에 있으므로 열둘 만이 제자는 아니다.
또한 누가복음에서는 열둘을 사도로 표기하고, 믿는 자를 모두 제자로 부른다.
이는 누가가 쓴 사도행전에서도 그대로 전수된다.
그렇다면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아들과 관련된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아들이 가진 모든 권세의 목적이 영생을 주는 것이라고 증거한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 이로소이다"(요 17:2).
그리고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 17:3).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사람은 모든 민족, 모든 사람이 그 대상이다.
그들에게 영생을 주는 것은 제자를 삼는 것이며, 세례를 주는 것이다.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주어진다.
곧 성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은 하나님과 연합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 당시 세례의 개념은 연합의 개념으로 쓰여졌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롬 6:3-5).
영생을 얻는 것은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의 실제에 들어가는 것이다.
영생얻은 자 안에 아들이 있고, 아버지가 아들 안에 거하여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된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이것이 영생얻는 것이며, 제자되는 것이며, 성삼위 하나님의 세례를 받는 것이다.
제자 삼는 것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들이 명령한 것을 삼위 하나님과 연합된 이들로 지키게 하는 것으로 진전된다.
아들이 명령한 것은 아버지의 명령이며(요 12:50), 아버지의 명령은 아버지의 뜻이다.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다(요 6:40).
즉, 하나님과의 연합된 자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영생의 진리를 전해 그로 하여금 하나님과 연합된 자리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생의 복된 공동체를 통해서 실현된다(요일 1:1-4).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들과 함께 하신다.
영생을 얻고 영생의 말씀을 전하여 영혼들을 하나님과 연합의 진리로 이끄는 이들과 세상 끝날까지 그들과 함께 하신다.
진실로 그러하다! 기독교 역사에서 영생의 말씀, 곧 하나님과 연합된 진리는 한 번도 중단되지 않고 증거되고 있다.
하나님이 아들에게 주신 권세는 세상적인 권세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는 마술적 권세가 결코 아니다.
선행과 충성을 다하면 보상을 주는 그런 권세도 아니다.
오직 하나 영생을 얻게 하는 권세이다.
주님은 그 권세로 영생을 살며 영생을 전하는 이들에게 함께 하신다.
이제 영생얻은 우리는 어디든지 가면 된다.
가서 모든 사람에게 영생의 진리를 전하면 된다.
전하게 하시고 사람을 보내시고 듣게 하시는 이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시다.
영생을 살며, 영생을 전하는 자, 그는 진실로 복되다!
세상 끝날까지 주님이 함께 하시며, 그로 하여금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얻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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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오해한 자였다.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를 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보이는 교회를 확장하고, 그것을 위해 성도들을 겁박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주님의 권세를 오해한 자였다.
그 권세를 기도하면 응답받는 능력, 충성하면 잘되는 권세로 오용하였다.
제자 삼는 참 뜻이 영생인 것도 알지 못하고, 제자훈련을 시킨다며 영혼들을 닦달하였다.
제자훈련을 받은 영혼들은 육신으로 율법을 행하여 더욱 교만해지고 완고해져갔다.
세례를 주는 것을 교리적으로 물세례 주는 것 정도로 알았다.
성삼위 하나님과 연합의 진리에 무지한 채 신앙생활하고 목회하였던 것이다.
어찌 하나님과 연합되지 않은 자가 하나님과 연합되는 진리를 전할 수 있었겠는가!
주님의 권세는 오직 하나, 영생을 얻게 하는 것으로 한정된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은 바로 영생을 살고 전하는 이들과 함께 하신다.
말씀 앞에 나의 무지가 드러나고 파행적 신앙과 목회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진리를 알지 못한 나는 진실로 부끄럽고 부끄럽다!
그런 나를 향해 주님은 여전히 말씀하신다.
"하늘과 땅의 권세가 내게 있으니 가서 제자를 삼으라!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리라"
영생을 살고 영생을 전하는 삶이 녹록치 않다.
나는 갈수록 쇠하고 부족함은 더해진다. 상황은 열악하고 관계는 적막하다.
그런데 주님은 모든 권세가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주님 자신에게 있다고 하신다. 문제는 주님의 능력이 내게 머무는 것이다
주님의 능력은 어디에 머무시는가? 친히 말씀하신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그러므로 내가 도리어 크게 기뻐한다,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도록 함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한다.
바로 그 때. 내가 약한 그 때가 그리스도로 강해지는 때이다(고후 12:10).
나의 약함으로 온전해지는 그리스도의 권세를 찬양한다.
나의 약함을 도리어 기뻐하며 그리스도의 권세만을 의지하여 영생의 말씀을 전한다.
주님의 현존은 주님의 보호와 확신과 평강이다. 주님이 친히 열매를 거두시리라.
3. 기도
아버지...
영적으로 무지한 자를 불쌍히 여기소서.
제자 삼는 것을 교회 부흥으로 여겼습니다.
제자 삼는다 하면서 갖가지 훈련을 시키며 영혼들을 유린했습니다.
주님의 권세를 무한정 남용하던 자였습니다.
충성에 대한 보상의 능력으로, 기도응답의 권세로, 귀신 내쫓는 권세로 사용하였습니다.
오, 주님 무지 속에서 행한 일이 심히 부끄럽습니다.
저는 진실로 패역하고 무참한 자였습니다.
아버지...
그러나 웬 은혜인지요!
심판의 자리에서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제 보니 오직 주님의 권세였습니다.
주님의 권세는 오직 영생을 주시기 위한 권세입니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불쌍히 여기소서!
아버지...
영생을 알고 전하나 척박합니다.
제게는 아무런 능력이나 권세가 없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권세는 제가 가장 약할 때 강해집니다.
약하고 비참한 자리에서 영생이 증거되고 사람들이 영생을 얻습니다.
오직 주님의 권세로만 증거하게 하소서.
모든 족속을 제자삼게 하소서. 모든 족속이 영생을 얻게 하소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서 목사는 하나님의 검증을 마친 영적지도자다.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