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간다. 청마(靑馬)의 해로 활기차게 시작했던 올해는 '지록위마'(指鹿爲馬·거짓된 행동으로 윗사람을 농락하는 모습)로 마무리 되고 있다. 60년 만에 한 번 온다는 갑오년(甲午年) 청마해 시작 즈음에는 달리는 말처럼 힘찬 발전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다. 2014년은 힘든 역경의 시기이자 도약의 시기였다. 대한민국 전체를 눈물 짓게 한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정윤회씨 국정 개입 의혹 논란까지 많은 일이 있었지만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기독일보는 한 해를 정리하며 다음과 같이 올해 10대 국내뉴스를 선정했다. <편집자 주>
[1] 304명 희생된 '세월호 참사'
2014년 진도 앞바다는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블랙홀'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안전 불감증을 올해 대한민국의 화두에 올린 초대형 사고였다. 세월호는 4월 16일 오전 8시48분께 전남 진도군 병풍도 부근 해상을 지나다가 조타수의 조타 실수로 왼쪽으로 기울었다. 과적에다 묶기(고박)도 부실한 화물이 쏠리고 경사가 더해지면서 전복 후 침몰했다. 어이없는 세월호 침몰과 더 어이없는 구조작업 부실로 수학여행중이던 안산 단원고 학생을 포함해 300명이 넘는 사망·실종자를 낸 참사에 온 나라가 눈물을 쏟으며 분노하고 자책했다. 이에 더해 11월11일 수색이 종료될 때까지 9명은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가 수색 종료를 선언한 날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 15명은 1심에서 징역 5~36년을 선고받았다. 아울러 수사·기소권 보장 등을 놓고 벌어진 첨예한 갈등 속에 세월호 3법이 11월7일 국회에서 통과돼 참사 진상 규명 작업은 새해에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2] 프란치스코 교황 '訪韓'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8월 한국을 첫 방한했다. 즉위 후 세 번째 외국 방문지이자 아시아 첫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낮은 곳으로 임하는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 지난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두 차례에 걸친 방한에 이어 세 번째 카톨릭 교황의 방한이며 필리핀 등 전통적 카톨릭 우세 국가가 아닌 한국만 방문해 화제를 뿌렸다. 교황은 4박5일, 100시간의 체류 기간에 공식 방한 행사 외에 사회의 약자들을 가까이서 보듬는 모습을 보여줬다. 교황은 방한 첫날부터 세월호 참사 유족과 장애인, 새터민, 이주 노동자 등 소외되고 상처입은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빡빡한 일정에서도 네 차례나 세월호 유족을 만나 이들의 아픔을 달랬다. 명동성당에서 집전한 미사에서는 남북한이 서로 진심 어린 대화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에 나설 것을 주문하면서 세계 유일의 분단지역인 한반도를 위해 남북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메시지도 전달했다. 소탈하면서도 낮은 곳으로 임하는 교황의 모습은 종파를 초월해 큰 인상을 남겼다.
[3] 청와대 비선 의혹…'정윤회 문건' 유출 파문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동선 의혹으로 인해 고개를 든 정윤회 파문은 지난달 28일 청와대 내부 문건 유출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국의 뇌관이 됐다. 세계일보의 청와대 내부문건 입수 보도로 촉발된 논란은 정권 심장부의 기밀문서 유출이라는 사고를 뛰어넘어 비선라인의 '국정농단' 의혹, 나아가 대통령 측근 간의 '권력암투설'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고 결국 검찰수사로 이어졌다. 청와대는 문건 내용을 '찌라시(증권가 정보지)' 수준으로 규정하는 한편, 세계일보와 문건 작성자이자 유출자로 의심되는 경찰 출신 전직 행정관을 검찰에 고소 및 수사 의뢰하며 적극 진화에 나섰다. 박 대통령도 수차례 문건 내용이 '사실무근'임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12월 3주 기준 37%(한국갤럽)를 기록, 취임 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파문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문건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정윤회 씨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문건 내용의 신빙성과 유출 경로를 놓고 폭로전을 벌이기까지 했다. 또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문체부 국·과장 인사에까지 개입한 듯한 취지로 말하면서 파문을 더욱 키웠다. 문서유출 혐의를 받은 최모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유서를 통해 '청와대 회유' 사실을 밝히면서 진실공방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4] 통진당 해산 결정...헌정 사상 최초
19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대 1' 의견으로 통합진보당 해산 명령과 함께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제기된 정당해산 심판사건으로 당초 평가결과가 첨예할 것으로 보였지만 해산에 필요한 6명을 크게 뛰어넘는 8명이 인용의견을 냈다.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통진당 해산 결정을 놓고 내년에도 진보·보수 진영 간 이념 대립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부 진보 세력은 이미 새로운 정당 건설을 위한 활로 모색에 나서고 있다. 이 와중에 보수단체들은 통합진보당 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 거센 후폭풍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5] '땅콩' 하나 때문에…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몰락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 공분을 불렀다. 대한항공 오너가(家) 3세인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항공기 회항' 논란이 올 연말을 달구었다. 조 전 부사장은 자신이 타고 있던 미국 뉴욕발 인천행 항공기의 이륙 과정에서 승무원이 땅콩을 봉지 째 준 기내 서비스를 문제 삼아 이미 출발한 항공기를 되돌리고 사무장을 내리게 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재벌 3세의 일탈 행위"라며 비판이 들끓었다. 국토부는 대한항공에 대해 운항정지 등 제재 계획을 발표했으며, 검찰은 조 전 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30일 밤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6] 민낯 드러난 軍…잇단 대형 사건·비리에 휘청
군(軍)에서는 올해 전례 없는 사건·사고가 이어졌다. 후임병 폭행 사망, 총기 난사, 병영 내 잇단 성추행, 방산비리 등 유난히 많은 군 관련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4월 육군 28사단에서는 윤모 일병이 선임병들의 지속적이고 엽기적인 가혹 행위로 숨졌으나 군은 3개월 가까이 은폐한 의혹으로 지탄받았다. 6월에는 동부전선 22사단 GOP(일반전초) 부대에서 임모 병장이 총기를 난사해 동료 장병 5명이 숨졌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던 각종 병영 내 가혹행위와 성추행 혐의가 이후 잇따라 터져 나왔다. 17사단장이 여군 부하를 성추행한 혐의로 긴급 체포돼 구속되는 사건도 10월에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첨단 수상함 구조함인 통영함에 장착된 음파탐지기와 수중무인탐사기가 불량 장비로 드러나 오랜 기간 전력화되지 못하는 사실이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부각됐다. 결국 통영함 납품비리 의혹은 대대적인 방산비리 합동수사를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앞서 3월에는 241개 군납업체가 2천749건의 시험성적서를 위·변조해 각종 국산 무기에 들어가는 불량 부품을 무더기 납품한 사실도 드러났다.
[7] 잇단 수능 '출제오류'…교육당국 신뢰 추락
2년 연속 출제 오류로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 올해 치러진 2015학년도 수능에서 생명과학Ⅱ 8번과 영어 25번의 복수정답이 인정됐다. 대입결과가 뒤바뀐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재채점을 통해 1만명에 가까운 수험생의 세계지리 등급이 올랐고, 작년 수능에서 이 문제로 피해를 본 수험생들은 정원 외로 대학에 입학하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이 문제를 틀려 하향지원한 수험생은 구제하지 못하는 등 후유증은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어 2015학년도 수능에서도 생명과학Ⅱ와 영어에서 한 문제씩 복수정답을 인정하면서 수험생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교육 당국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잇단 출제오류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여론이 확산했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개선을 지시하자 곧바로 '수능개선위원회'가 꾸려졌다.
[8]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건희 회장...삼성은 '실적 둔화'
이건희(74)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월 10일 밤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을 일으켰다. 이 회장은 자택 인근 순천향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돼 막힌 심혈관을 넓히는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았지만, 뇌·장기 손상을 최소화하는 저체온·진정 치료를 받고 입원 보름 만에 혼수상태에서 회복했다. 하지만 현재 휠체어 운동을 포함해 재활치료를 받고 있지만 아직 인지기능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현재까지 8개월째 병상에 있다. 이 회장이 쓰러지면서 엎친데 덮친격으로 삼성은 스마트폰 실적 둔화의 수렁에 빠져드는 등 경영 리스크가 불거졌다. 그러나 삼성은 제일모직·삼성SDS 등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며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 중심으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본격화 하고 있다.
[9] '경기침체' 장기화와 '무상복지' 논쟁 격화
내수·투자 부진에 세월호 참사 등이 겹치면서 올해도 저성장이 이어졌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3.5∼3.7%에 그칠 것으로 전망돼 2011년부터 지속한 3% 성장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1%대에 그쳐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확산했다. 이런 흐름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연구기관이 내년 성장률로 3%대 중후반을 제시하고 물가도 1%대를 예측하는 곳이 많아 저성장, 저물가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경기 침체에 따른 세수 부족이 심화하는 가운데 올해 예산안 국회 논의 과정에 누리과정, 무상급식 예산 문제가 발생하면서 무상복지 논란이 벌어졌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무리한 선거공약이 빚은 한계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내년에도 세수 부족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무상복지는 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의 경제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게 됐다.
[10] 북한 실세 3인방 '기습' 방한
지난 10월 4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 북한의 실세 3인방이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인천을 깜짝 방문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통일부가 긴급 브리핑을 통해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 정권 실세 3인방의 남한 방문 소식을 밝힌 지 수시간 만에 이들이 인천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이들의 전격적인 방문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북한의 승부수로 해석됐다. 북한은 인천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함께 대규모 응원단을 보내려 했으나 남북간 이견으로 응원단 파견이 무산돼 남북관계에 먹구름이 낀 상황이었다. 이들 북한 3인방은 인천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규현 국가안보실 1차장, 류길재 통일부장관과 오찬 회동을 했으며 아시안게임 폐막식장에서는 정홍원 국무총리를 만났다. 실세 3인방이 2차 고위급 접촉에 합의하면서 일각에서는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조심스레 제기됐다. 이 자리에서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로 열어가자"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로는 열리지 않았고 남북은 대북전단 살포와 북한 인권문제 등으로 갈등을 거듭했다. 정부가 29일 "내년 1월 중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열자"고 북한에 공식 제안함에 따라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