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숭실통일리더십연수원 개원 기념 학술 심포지엄이 15일 오후 1시부터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회고와 전망, 그리고 숭실대학의 역할'을 주제로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 김덕윤 예배실에서 개최된 가운데 통일을 위해 기독교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에 참석자들은 인식을 같이 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전 WCC 중앙위원 박종화 목사의 '한국 에큐메니칼 교회(NCCK)의 한반도 통일운동과 신학',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김명혁 목사의 '한국 복음주의 교회의 한반도 통일운동과 신학',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총회 사무총장 이홍정 박사의 '예장통합의 통일운동의 역사와 신학', 숭실평화통일연구원장 김성배 박사의 '숭실대 평화통일교육의 방향과 역할' 순으로 발제가 진행됐다.
이날 발제 가운데 '한국 복음주의 교회의 한반도 통일운동과 신학'을 주제로 발제한 김명혁 목사는 "김영한 박사는 민족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십자가 신학으로 이해하고 평화신학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종화 박사는 성서가 가르치는 평화가 통일의 신학적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상복 박사는 하나님이 우주와 세계를 다스리시는 통치자라는 사실이 민족 통일의 근거와 방식과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고 소개하며 "저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에베소서 2장에 나타난 대로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 그리고 인간간의 화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인간 구원사역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찾아와서 만나시고 모든 것을 나누어 주시는 사역이며 그리고 구원 받은 인간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찾아가서 만나고 모든 것을 나누게 하시는 사역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화해의 신학과 만남과 나눔의 신학이 곧 통일의 신학이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개인 경험을 나누며 "1999년 1월 19일부터 26일까지 종교인 대표의 한 사람으로 북한의 여러 지역을 방문하고 여러 종류의 북한 사람들을 만났다. 7일 동안 거의 함께 지낸 북한 관리들과는 비교적 친밀하게 만났고 솔직하게 대화했다. 비판도 솔직하게 충고도 솔직하게 했다. 비판할 때는 즉각 거부반응이 나왔지만 그와 같은 비판과 충고가 사실은 북조선 공화국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을 때 알아 듣는 듯했다"며 "우리들과 헤어질 때 북한 관리들은 지금까지 방북한 어떤 사람들보다 우리 종교인들 일행이 '이전분들과는 다릅니다. 아주 솔직하고 순수해서 좋았습니다'고 말하며 마음을 열고 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명혁 목사는 "항상 생각해 오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준비 몇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며 북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도록 힘써야 할 것,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도록 힘써야 할 것, 북한동포 돕기를 힘써야 할 것, 교회의 협력과 일치를 이루도록 힘써야 할 것, 북한교회 발전을 위해 힘써야 할 것, 남북이 자주 만나야 하며 앞으로 북한에 가서 그들과 함께 살도록 해야 할 것, 역사의 진행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인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할 것을 들었다.
이어 그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복협)를 중심으로 어려움에 처한 북한 동포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게 된 이야기를 소개하며 "나는 언제부터인가, 1895년 한국 전라도에 와서 선교 사역을 시작한 유진 벨(Eugene Bell, 1868-1925) 선교사의 4대 손들인, 스티브 린튼 선교사와 존 린튼 선교사와 가까이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저들은 선조들의 조선 사람 사랑을 그대로 내려 받아 한국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으며 특히 어머니 로이스 린튼(인애자) 선교사의 뒤를 이어 남한과 북한의 결핵환자들을 모든 정성을 다 쏟으면서 사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저는 스티브 린튼 박사가 1995년 12월 큰 물 피해를 입은 북한을 다녀오는 길에 홍콩에서 나에게 건 전화를 받고 나서부터 한복협를 통해 북한에 옥수수 등 식량을 보내는 일을 시작했다. 때로는 스티브 린튼 박사와 함께 중국에 가서 옥수수를 사서 북한에 보내기도 했고 때로는 농사에 필요한 콤바인 5대를 사서 보내기도 했다"며 "그동안 한복협이 주로 한 것은 결핵환자들을 위한 약품과 의료기구를 보내는 일이었는데 1995년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유진 벨 재단을 통해서 북한에 보낸 식량과 의약품 등의 가격은 매년 3천만 원 상당으로 12억 2천 만원에 달한다. 한복협은 지금도 유진벨 재단을 통해 북한의 결핵환자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김명혁 목사는 "그 동안 다른 채널을 통해서 북한을 도운 액수도 7000여 만원에 달한다. 지난 14년 동안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주로 유진 벨 재단을 통해서 북한 동포들을 돕게 된 이유는 우선 나 자신이 스티브 린튼 박사와 존 린튼 박사를 친하게 사귀면서 깊이 신뢰한 것과 함께 내가 여러 경로를 통해서 발견한 사실은 유진 벨 재단을 통한 북한 동포 돕기가 그 어느 기관을 통한 것보다 가장 투명하고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신뢰할만한 것이기 때문이었다"며 "어떤 의미에서 두 사람은 북한 사람들로부터 홀대를 받으면서까지 북한 동포 돕기의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했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스티브 린튼 박사는 자기는 짐을 나르는 당나귀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며 "후원하는 개인이나 교회나 단체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적어서 북한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너무 충성스런 당나귀라고 생각한다"고 중심으로 존경을 표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강원도의 감자 1690톤을 트럭 99대에 실어 북한에 보낸 일과 밀가루 300톤을 가지고 개성에 간 일'에 대해 소개하며 기독교계와 천주교, 불교, 원불교, 한국적십자사까지 힘을 모아 1997년 4월 강원도 평창에서 1,690톤의 감자를 사서 북한동포들에게 보낸 이야기를 전했다.
김 목사는 "제가 1997년 3월 15일 토요일 밤 9시 MBC 뉴스를 듣던 중 강원도 고산지의 감자 수천톤이 썩어 간다는 소식을 접했다. '북한에는 지금 먹을 곡식과 채소가 없어서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남한에서는 감자가 너무 많아서 썩어가다니!'하는 의분 같은 것을 느껴서 뉴스를 제공한 춘천 MBC에 전화를 걸어 평창군 지형근 계장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너무 좋아하면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러나 저는 그 일이 현 정치 상황에 비추어 보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설명하며 노력해 보자고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다음 날인 3월 16일 주일 저는 청담동 강변교회에서 '마음을 물 쏟듯 할찌어다"'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서 지금 우리는 북한 동포를 바라보면서 첫째 눈물을 강처럼 흘려야 하고 둘째 마음을 물 쏟듯이 쏟아야 하며 셋째 주를 향하여 손을 들고 항복하면서 강원도의 썩어 가는 감자를 아주 썩기 전에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래서 3월 17일 월요일 아침부터 한 주간 동안 저는 이곳 저곳에 연락하며 그 일이 성사되도록 최선을 다해서 3월 22일 토요일에는 평창 군수 김용욱씨를 서울에서 만나고 24일 월요일 아침에는 기독교 북한동포 후원연합회 모임을 갖고 감자를 사서 보내기로 합의했다. 결국 기독교에서 1,000톤을, 천주교에서 340톤을, 불교에서 140톤을, 원불교에서 60톤을, 한국적십자사에서 150톤을, 총 1,690톤의 감자를 사서 북한에 보내기로 합의했다"고 과정을 말했다.
이어 김 목사는 "25일 저녁 6시 15분 북한으로부터 감자를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 왔고 25일 밤부터 평창군에서는 감자 포장작업이 시작됐다. 26일 밤 9시 MBC는 그 동안 진행 과정을 다시 한번 보도했고 3월 31일 월요일 아침 우리는 평창군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감자를 구입해서 트럭에 실어 인천으로 보내기 위해서였다. 구입비 전달식을 마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불렀을 때 우리 모두는 감격에 쌓였다. 그리고 4월 3일 1,690톤의 감자는 인천항을 떠나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어 졌다. 2주 반 만에 이루어진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그때의 감격을 회고했다.
끝으로 김명혁 목사는 "교회가 먼저 낮은 자세를 지니고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룰 때 양극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도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저 하는 자극과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적대적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도 이루어질 것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