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지난 5년 동안 개인강사 117회, 대담 22회. 전체 139회동안 매주 목요일마다 진행됐던 양화진문화원의 목요강좌가 지난달 27일을 끝으로 1년간 휴식기에 들어간다.
목요강좌를 진행한 양화진문화원 지강유철 선임연구원은 "30개국 이상에서 교민들이 목요강좌를 보셨고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신 강좌였다"며 "5년간 (진행)했는데 이제는 이 옷을 벗고 우리 사회와 시대가 요구하는 소리를 듣고 반응해야될 필요성을 느껴서 1년간 모색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어떤 형태로 모습으로 돌아올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날 마지막 강좌의 초청강사는 '기타리스트' 함춘호 서울신대 실용음악과 교수였다. 그는 '마음으로 시작하다'는 주제로 강의하며 기타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힘들었던 순간들, 자신의 음악 세계, 대중음악 가수들과의 만남 등에 관해 말했다.
함 교수는 "지금은 유튜브에 정보들이 많지만 그때는 기타연주를 배우려고 해도 남대문 시장 초입에 외국잡지들이 나오는 것을 보든지 판을 듣고 카피 하든지 노래책을 듣고 따라치는 것 밖에 없었다. 저는 그걸 듣고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 한곡을 완성시키는 연습을 했다"며 "내가 들은 소리 중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겠다고 생각했다. 기타는 손에서 나오는 소리인데 파열음이 강한 것이 있을 수 있고 부드럽게 나올 수 있는데 참 예쁘다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연습했다. 노래가 끝날때 쯤에 코드를 잘못 잡아서 실수해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한곡을 완성하기까지 진짜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한곡을 완성하니 자신감이 생기고 레파토리가 늘어났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한 "기타를 치는게 너무 좋았던 것 같다. 저는 기교적으로 뛰어나기보다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친다. 그게 제 연주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며 가수 전인권을 만나며 마음으로 음악을 듣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고도 전했다.
함 교수는 "고등학교 졸업할 즈음 빨리 가수가 되고 싶었던 꿈, 음악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때 졸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 무대에서 만난 사람이 전인권 선배다"며 "종로와 청계천 사이에 골목이 있었는데 청년문화가 활발하게 이뤄지던 곳이었다. 그때 전인권 선배가 제가 노래하고 있으면 저 뒤에서 듣다가 '노래 잘하시네요' 말하면 저는 그 말이 진짜인줄 알았다"고 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당시만 해도 서울이면서도 시골적인 동네였던 삼청동에서 음악을 배웠다. 저는 성악을 했고 송창식의 영향을 받고 클래식적 창법을 하는 사람이 익숙한데 전인권이 야수처럼 내는 소리가 음악이 멋있더라. 음악을 듣는 방법을 거기서 배웠다. 음악을 머리로 듣는게 아니고 가슴으로 듣더라"며 "전인권 선배는 음악을 틀어놓고는 코드 구상이 어떻고, 음악 구상이 어떻니가 아니라 어떤 느낌이니,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니 라고 물어봤다. 항상 머리로만 듣고 이해만 하려고 하고 기술만 익히려던 나에게는 새로웠다. 그런데 그때부터 노래의 주제가 들리기 시작하고 가슴이 뭉클해지고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머리로 완성하는게 가장 좋은 케이스라고 본다. 저는 음악 할때 머리를 쓰지 않는다. 음악을 들었을때 슬픈 노래다 하면 슬픈 감정으로 연주를 한다"며 덧붙여 "가수분들은 가사를 잘 외우더라만 저는 멜로디가 잘 외워진다. 그리고 멜로디를 외우고 나서 기본적 틀이 있으면-재즈 용어 중에 즉흥 연주라고 한다- 만들어서 치는 것이다. 매번 똑같은 게 나올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틀이 있으면 잘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또 시인과 촌장 시절 발표됐던 '가시나무'를 연주하기 전에는 그 곡에 얽힌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는 "하덕규 씨와 같이 생활할때 제가 그분을 아프게 했던 것 같다. 섬세하신 분이라 그게 상처가 됐었던 것 같다"며 "내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내 안에 하나님이 들어올 자리가 없을만큼 내 자신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을 받을 자리가 없다는 내용이다"고 곡을 소개했다.
그의 기타 인생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형이 너도 한번 해보라며 건네준 기타를 너무 잘쳐 스스로도 '함춘호 너무 멋진데' 했던 그 처음부터 360명 정원에 356명의 여자친구들 사이에서 학교를 다니며 예쁜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어 열심히 기타를 치던 그 시절로 이어졌다.
그리고 아버지가 준 레슨비로 기타를 사고 친구들에게 신세진 것 갚는다고 레슨을 못받아 중학교 2학년으로 넘어가던 그때 자숙의 기간을 보내느라 학교에 빠져 공부에 흥미를 잃고 기타에만 더 몰두했던 학창시절을 지나 가수 전인권을 만난 이야기, 21살이라는 나이에 녹음실에 들어갔지만 조그만 실수에도 호된 꾸지람을 받아야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23살에 악기를 싸 지방으로 가 울산, 부산, 대구 나이트클럽을 전전했던 이야기.
24살 되던 해에 함춘호 교수를 찾아온 하덕규 목사의 권유로 '시인과 촌장'에 합류한 이야기, 그렇게 35년 동안 세션이라는 직업을 택해 음반을 만드는 일을 해왔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하루에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없어서 입이 돌아간 적도 있다. 자고 일어나 밥을 먹는데 밥을 떠넣으니 밥이 툭툭 떨어진 일도 있었다"며 "그때만 해도 연주자가 많이 없었는데 제가 연주하는 것이 히트가 나니 제작자, 편곡자들이 저하고 많은 일들을 하고 싶어했다. 그런 이유로 인해서 관계를 맺다보니 잠도 못자고 24시간을 바보처럼 일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저를 위해서 많은 시간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또 "점점 기타치는 것에 대해서 회의가 들어서 내가 가진 능력 밖인가보다 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었다. "며 "기타 칠때 저희들이 하는 일이라는것이 지극히 단순하다. 기능만 가지면 악보 가지고 음표 있으면 음표보고 연주하면 되는데 녹음 하러 들어가면 편곡자가 무슨 얘기를 하냐면 '선생님, 새벽 호숫가에 피는 물안개처럼 기타 쳐주세요' 그런식으로 주문을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연주자가 악보를 잘 보고 연주를 잘하면 최고의 연주자로 뽑혔는데 이제는 유행이 바뀌어서 악보를 못봐도 얼마나 감각적으로 연주를 할 수 있느냐, 얼마나 상상을 많이 할 수 있느냐가 음악을 사로잡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튜디오에서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음악을)똑같이 같이 하는 건 저에게 있어서 음악적인 생명이 단축되는 일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외국 음악도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집중적으로 듣지 못한다. 저는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니 대중음악의 유행만 듣고 나머지는 감각이 어떻구나 유행의 흐름만 파악한다. 대중들보다 아주 조금 앞서가는 그런 역할을 해야하니... 어느 한곳에 치중하지 않고 많은 음악을 잡식처럼 접하고 유행을 만들어내는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실용음악과 교수로 일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함 교수는 "지금 서울신대 실용음악과 학과장으로 있는데 성결교단에서 저한테 요청을 했을때 예전에 교회에서 제가 머리가 길다고 이럴거면 연예인교회에 가라고 했던 그때가 생각이 났다. 교회 안에서 음악을 하려 했던 많은 청소년들이 있는데 이들이 클래식이나 일반음악을 해서 스타가 되고 싶다 하면 일반학교에 가야 한다. 그러면 신앙을 많이 잃게된다는 생각이 돼서 서울신대에 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희는 신학과 관련된 커리큘럼은 받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워십 밴드를 만들라고 하는데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학생들이 정말 학교에서 좋은 영향을 받으면 신학 하겠다고 마음 먹을 것이고 M.Div.를 해서 목회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학생들이 음악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선교 하러 나간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기대했다.
또 음반판매 수익과 분배 구조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애플에서 음원을 판매하게 되면 1~2불에 판매되면 수익의 30%를 애플에서 갖고 나머지를 작품자한테 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멜론이라든지 소리바다라든지 서비스를 하는 곳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가고 제작자가 50% 가까이 갖고 간다. 그 나머지로 작사, 작곡, 연주가가 나눠 갖는데 저희는 그 부분에서 6% 지분을 갖게 됐다"며 "지금의 구조로서는 음원을 유통해서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신인작곡가는 작사 하나에 100만원, 작곡 하나에 100만원을 받아서 생활이 됐는데 언제부턴가 저작권협회에서 개인과 장사하는 건 안되니 저작권협회에 등록하고 인지를 붙여야 유통하게 허락하겠다고 했다. 100만원을 받으려면 몇 장 팔아야 되냐면 10만장을 팔아야 된다. 이건 아티스트의 목을 죄는 상황이어서 많은 분들이 작품활동에서 손을 뗐다. 기존에 하던 분들은 다른 업종을 하거나 너무 힘들게 살아가는 상황이다"며 공정한 유통 분배를 위해 관심을 가져주기를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음악을 MP3로 듣는게 좋은가, CD나 LP로 듣는게 좋은가?'라는 질문에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다. 흉내내다 보면 여러분도 모르게 훌륭한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니 당연히 음질이 좋은 CD나 LP를 들으시고 멋있는 음악을 꿈꾸시고 인생도 멋있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