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새길기독사회문화연구원 2014 가을 일요신학강좌의 마지막 시간인 지난달 30일 오후 1시 20분 강남청소년수련관 로비에는 이 강의를 기다리는 성도들로 붐볐다. 대부분은 노년.중년의 성도들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교회 출석 성도의 90%이상이 교수로, 지식인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라고 설명했다.
또 새길기독사회문화연구원은 새길교회가 2001년 만든 문화원으로 1987년 3월 7일 네 명의 말씀증거자를 중심으로 설립된 초교파 평신도교회로, 담임목사도, 교역자도 없다. 그러나 개방적이고 친절한 성도들의 모습은 '좋은 교회'라는 이미지를 갖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아무튼 이날 강좌는 '주님 어찌하여?-악과 하나님의 문제'라는 주제였다. 강사로 나선 새길기독사회문화연구원 원장 정경일 박사는 먼저 자신의 얼굴이 많이 초췌해보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몇년 전 유니온신학교에서 '하나님, 고통, 악'에 대해 한 학기 동안 세미나를 했는데 그때 제임스 콘 교수를 찾아가서 주제와 저와의 거리두기를 할 수 없어서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신학은 그렇게 하는거라고, 실존에 바탕을 두고 하는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 그러면서 제대로 신학 하고 있는 것이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격려해주셨던 기억이 있다"고 말하며 이날의 초췌함도 주제의 '무게'에서 비롯된 것임을 말했다.
그는 "한국은 그렇지 않지만 아마존 사이트에 들어가서 '신정론'(Theodicy)나 '악의 문제'(Problem of Evil)로 북서치를 해보면 수백권, 수천권 책이 나온다. 그렇게 맣은 연구서와 연구자, 그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답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답이 분명히 있었다면 간단히 해결되지 않겠나"며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연구해서 책 쓰는 사람은 지금 없다. 객관적 사실로 확인됐으니 그렇다. 그러나 신정론 문제는 답을 찾기 어려우니 계속 연구되고 있다"고도 했다.
정 박사는 "'신정론'이라는 말은 라이프니츠(Leibniz)가 1710년 냈던 '신정론'이라는 책 제목에서 유래했다. 악과 고통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의로움을 변호하는 것이 내용이며 목적이다"며 "'신을 변호한다'는'변신론'으로 번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라이프니치의 사후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이 일어났는데 이때는 지진, 화재, 해일이라는 3중적 자연악이 발생한다"며 "이 사건이 서양 철학계와 지성계에 미친 영향이 굉장히 컸다. 세계가 파괴된 것 같은 대재앙이라 라이프니치의 신정론에 반기를 들며 비판적인 신의 이해, 신정론 이해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에서 수많은 유대인이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당시 유럽 유대인 3분의 2가 죽임을 당했다. '홀로'는 그리스어로 '전체'라는 의미이고 '코스트'는 '불타다'는 의미이다. 전체를 태워서 제물로 드리는 '희생제물'이란 뜻이다. 인류의 가장 깊은 잔인했던 악이 괴테, 칸트, 베토벤, 문학과 철학과 음악이 그토록 아름답게 꽃피웠던 독일사회에서 일어났다"며 "그 죽임 앞에 하나님도, 유대인도 죽었다. 홀로코스트를 경험하며 유대인 중에 무신론자도 꽤 생겼다"고 했다.
그는 "현대 사상가 스탕달은 악의 현실 앞에서 하나님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변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홀로코스트는 신정론을 무덤으로 들어가게 했던 사건이다"고 말했다.
이어 정경일 박사는 "올해 4월 세월호가 가라앉으면서 국가의 악, 교회의 악, 우리 자신의 악까지 우리 사회의 모든 악이 떠올랐다"며 "악과 고통의 참혹한 현실은 신정론의 문제만이 아니라 신정론의 악을 드러낸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테렌스 틸레이 교수(Terrence W. tilley)는 신정론은 폐기되어야 하는 파괴적 담론이다고까지 얘기한다. 왜 유대인 600만인지 지적으로 탐구하느라 그들의 고통을 경험하지 못할때 그것이 '신정론의 악'이다는 것이다"며 "세월호의 고통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말한 것도 파괴적 담론으로의 신정론 이해라고 볼 수 있겠다. 지금 고통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비다"고 했다.
그는 '신정론'의 유형을 소개하며 그 중 하나로 '동고(同苦) 신정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정경일 박사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서 나온 엘리 위젤이 소설로 전하는 홀로코스트 이야기 '밤'에 소개되는 한 이야기를 전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서 어른 3명과 어린이 1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어른 3명은 빨리 숨이 끊어졌지만 몸이 가벼운데다 야위기까지 한 어린아이는 숨이 끊어지지 않고 30분 가까이 괴로워하며 줄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이 어린아이의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엘리 위젤 주변의 수형자들 사이에서는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하는 탄식의 소리가 나왔다. 그때 어딘가에서 '하나님은 저기 매달려 죽어가고 계시지'하는 소리가 나오더라는 얘기다.
정경일 박사는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우리와 고통을 겪고 계시고 고통을 겪는 자가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엘리 위젤로부터 영감을 많이 받아서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신학적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고 신학적으로 얘기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고통받는 인간과 함께하신다는 동고 신정론을 발전시켰다"고 했다.
그러나 "동고 신정론의 신 이해는 신학적, 철학적으로는 문제가 많다. 절대타자인 하나님, 즉 신성이 고통을 겪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철학적으로 중세때부터 고대때부터 논의돼왔던 것이다"며 "머리로는 신학적으로는 문제 있는 설명인 것이 분명한데 그런 하나님은 참 자비로우신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그런 하나님으로 고백되고 경험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동고 신정론은 왜 악이 존재하는지 말 하지 못하지만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박사는 "신정론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으셨다는 완전한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에서 출발한다. 저는 이 물음을 전복시켜 왜 악한 세계에 선이 존재하는가 묻고 싶다. 사실 인간의 역사를 묻고 세월호 이후의 삶을 보게 되면 도대체 왜 악이 존재하는가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선이 존재하는가를 더 묻게 된다"며 "저는 이것을 인간적 선의 신비라고 부르고 싶다. 극단적 악과 고통의 상황에서,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을 선택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월호만 해도 그렇다. 실종자 가족들이 수중수색 중단을 결정했는데 가족 잃은 슬픔은 우리가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행여라도 잠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게 되어 그들 가족들이 자신들이 겪는 슬픔을 겪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며 "실종자 중 제 마음에 기도하는 두 분이 있다. 6살 혁규와 그의 아버지이다"고 했다.
그는 "혁규는 5살 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주고 아빠, 엄마 찾아올께 하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시신으로 돌아오고 아빠와 혁규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6살 혁규가 세월호의 악에서 선을 선택할 것을 누가 가르쳐줬겠나? 그게 신비라고 생각한다. 고통 받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고통을 선택하고 선하게 살았던 것이 선의 신비이고, 그것을 인정론(人正論)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덧붙여 "제가 혁규를 위해서 기도했던 것 하나는 아빠를 찾은 혁규가 아빠 품에 안겨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한 예를 들며 정경일 박사는 "이슬람 지역에서 공습으로 건물 잔해에 매몰된 14개월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주민들이 포크레인이나 중장비 하나 없이 손으로 흙을 파내 아이를 죽음에서 살려내는 동영상이다"며 "여기에서 이 사람들이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치지만 저는 '인간은 위대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겪는 악의 문제, 고통이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그게 제가 찾은 사랑의 신비이고 선의 신비다"고 했다.
그는 "'인간은 위대하다'고 말한 것은 신이 위대하지 않다라든가 신을 부정하는게 아니라 인간을 선하게 도우시는 하나님 사랑의 신비를 봤기 때문이다"고 했다.
정 박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이 되셔서 같은 피조물인 인간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을 두시고 인간이 되셨다. 그 이야기의 절정이 성육신과 십자가라고 생각한다"며 "하나님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신정론이 아니라 신애론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출애굽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사건을 통해 보여주신 것은 동고(同苦), 경청(傾聽), 동행(同行)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울음 소리나는 곳을 돌아보고 다가가서 함께 울고 저항하는 것, 인간이 서로 돕는 선의 신비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샘솟는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 프레드릭 뷰크너의 글을 소개하며 강의를 마쳤다.
"답 아닌 답은 예수 그리스도다.
하나님은 답을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을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