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중견 가전업체 '모뉴엘'의 수천억대 대출사기 의혹 등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검사 김범기)는 27일 수출입은행장 비서실장 서모(54)씨와 한국무역보험공사 부장 허모(52)씨 등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모뉴엘의 대출지급보증 업무와 관련해 편의를 봐주고 수천만원의 뒷돈을 받아 챙긴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서씨는 수출입은행 대출담당 부서장으로 재직하던 2012년 당시 모뉴엘의 대출한도를 높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박홍석(52·구속기소) 모뉴엘 대표로부터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허씨 역시 모뉴엘의 대출지급보증과 관련해 업무상 편의를 제공하고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에 대한 구속여부는 오는 2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결정된다.
앞서 검찰은 박 대표 등 관련자들에 대한 계좌추적과 검찰 조사 과정에서 진술 등을 통해 이들에게 금품이 건네진 구체적인 정황을 포착, 지난 26일 이들을 체포한 뒤 조사했다. 검찰은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의 다른 전·현직 임직원들도 모뉴엘 측으로부터 뒷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모뉴엘 사건이 금융권 전반에 걸친 대형 비리 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중소·중견기업 사업을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이모(60) 전 무역진흥본부장 등 무역보험공사 전·현직 임직원 여러 명에 대해서는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모뉴엘에 대한 보증업무를 담당하면서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정황이 포착된 영업총괄부장 정모(47)씨는 모뉴엘의 법정관리 신청 전 해외로 도주한 상태다. 이외에도 모뉴엘로부터 제품을 납품받아 이를 해외 유통업체에 판매한 KT ENS의 연루 여부 역시 수사 대상이다. 검찰은 KT ENS의 직원에게도 모뉴엘 측의 뒷돈이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관세청은 KT ENS가 모뉴엘로부터 제품을 구매한 뒤 2000억원대의 수출채권을 발행하고 모뉴엘이 해당 채권을 다시 시중 은행 등 금융권에 할인 판매한 사실을 적발, KT ENS 직원 등을 허위수출에 관여한 혐의로 입건한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무역보험공사와 수출입은행에 대해서만 수사하고 있다"면서도 "사건 자체가 워낙 '봉이 김선달'식으로 발생했는데 그런 일이 한 두 사람에 의해서만 발생했다고 보기에는 의아하지 않느냐"며 수사 확대 가능성을 내비쳤다.
모뉴엘은 로봇청소기와 홈시어터PC 등을 생산하는 국내 중견 종합가전기업이다. 은행에 갚아야 할 수출환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돌연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현재 모뉴엘은 허위 국외매출 등을 근거로 국내 금융권에서 6700여억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상태다.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잔액은 3100억여원에 달하며, 수출입은행 역시 보증이나 담보 없이 모뉴엘에 1135억여원의 신용대출을 집행했다. 이밖에 기업은행 1500억여원, 산업은행 1250억여원, 외환은행 1090억여원, 국민은행 760억여원, 농협 750억여원 등의 대출 잔액이 있다.
박 대표 등 경영진 3명은 수출가격을 부풀려 수조원대 허위 매출을 올리고 수백억원 상당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관세법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국외재산도피 등)로 지난 24일 구속 기소됐다. 박 대표 등은 2009년부터 지난 7월까지 미국, 홍콩 등 해외 지사에서 수출대금 액수를 부풀리거나 허위 매출을 올리는 수법으로 1조2000억원대의 해외매출을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아울러 361억여원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와 함께 해외 페이퍼컴퍼니 계좌 등을 이용해 2조8000억여원을 입·출금 하면서 외환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혐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