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당국 국장급 협의가 27일 재개됐지만 입장차만 확인한 채 공전했다.
외교부 이상덕 동북아시아국장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약 4시간 동안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만나 비공개 협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 국장은 이하라 국장에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진전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국장은 또 아사히신문 오보 인정 이후 일본 내 위안부 동원 강제성 부정 흐름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아울러 일본 측이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고노담화를 계승한다는 스스로의 공언을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이 국장은 일본 내 혐한 시위를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또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과 관련해 우리 입장을 반영하고 투명성 있게 진행하라고 요구했다.
이 국장은 또 내년 안중근 의사 서거 105주기를 앞두고 있음을 강조하고 이하라 국장에게 안 의사 유해발굴을 위한 일본측 자료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협의와 관련, "상당히 심도 있고 구체적인 논의는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며 "지구가 자전하고 있지만 움직이는 것은 잘 모른다. 그러면서도 지구는 움직이고 낮과 밤은 바뀌는 게 세상사다. 이 문제도 당장 성급한 진전을 기대하긴 어려워도 인내심을 갖고 긴 호흡으로 대응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에 이하라 국장은 고노담화를 계승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하라 국장은 고노담화에서 밝힌 대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고 항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도 그는 1차 아베 내각 때인 2007년 각의 의결대로 '군위안부 강제연행을 입증할 자료가 없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이하라 국장은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공판 문제와 우리 해군의 독도 방어훈련, 수산물 수입금지, 대마도 불상 도난, 납북 피해자 문제 등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하라 국장은 이번 협의 과정에서 다소 소극적인 자세로 임한 것으로 보인다. 한·중·일 외교장관회담이나 한·중·일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독도 영유권 문제나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부각시키지 않으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음달 중순 선거를 앞두고 선거의 논점을 아베노믹스와 소비세 증세 등 경제문제에 국한시키려는 자민당이 위안부 문제 등으로까지 전선을 확장하지 않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국장급 협의에서 위안부 문제가 재부각될 경우 선거국면에서 되레 야당에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음 국장급 협의는 다음달 중으로 일본에서 열기로 했다. 다만 일본 총선이란 변수 탓에 일정이 조정될 수 있어보인다. 아울러 연내에 개최키로 했던 한·중·일 외교장관회담 역시 일본 총선 결과에 따라 시기가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외교부는 3국간 협의 상황을 보면서 외교장관회담 시기를 조율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