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비 50%로 생활비가 줄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벌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통하여 나는 작년까지 풍족한 생활을 했다. 개척과 동시에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 돈을 벌 수록 내 안에 허무함을 느꼈다. 많이 가져도 내안에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을 느꼈다. 주님과 씨름하며 돈 이라는 것에서 자유할 수 있었다. 가끔 나가면 나도 돈 벌 수 있는데 하는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 다 내려 놓기로 결심하였다.
내가 꼭 필요한 물질은 무엇인가. 혹시 필요하지 않는데 쓰고 있는 돈은 없는지 살피면서 재정 관리를 시작했다. 모든 것에 절제에 들어 갔다. 그러지 않고는 살림을 할 수 가 없었다. 나는 지금 사례비가 없다. 하나님이 간신히 꾸려갈 정도의 물질만 주시고 계시다.
개척하고 느끼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한시도 목회할 수가 없다. 그분의 도우심이 늘 현장 가운데 살아계시는 하나님으로 증언하고 계신다. 때로는 가슴이 떨리기도 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그 하나님 앞에 겸허히 나간다. 성도들의 헌금을 어떻게 하면 귀하게 쓸까 나는 늘 고민한다. 지금은 작지만 헌금의 투명성과 헌금의 바른 재정 사용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
이번주는 아들의 등록금을 내는 마지막 학기다. 하나님께 채워달라고 기도 했는데 뜻하지 않게 딸에게 메일을 열어 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나는 딸과 메일을 주고 받을 정도의 살거운 모녀 지간이 아니다. 딸이지만 늘 어렵다.
"엄마 사고 싶은 거 사구 엄마 먹고 싶은 거 먹고 엄마가 썼음 좋겠엄 ㅎ 옴마 사랑햄 그리고 앞으로 더 잘해 줄겜 아빠도 있다 집에서 보쟘!"
간단한 문장속에 딸이 하고 싶은 말이 다 있었다.
100만원을 보태준다는 것이다. 자식이 있으므로 감사하는 순간이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지금 딸이 있는 직장은 정말 눈물로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예비한 직장이다. 그 아이가 면접 보러 갈 때 눈물로 기도했던 직장이다. 딸은 이 사실을 잘 모른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딸은 어느 누구보다 부럽지 않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 딸을 보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놀랍다는 생각을 한다. 딸에 능력에 비해서 모든 환경이 남이 부러울 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받은 돈을 가지고 아들 등록금을 내는데 보너스가 있었다. 장학금이 두 개나 받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기도했던 등록금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준비한 돈이 남았다.
자식을 키워보니 하나님의 마음을 더 많이 느낀다. 끝없이 사랑하는 자식을 향한 마음. 그 아이가 부족해도 완전하지 않아도 내안에 자식을 향한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처럼.
자식에게 돈을 받는 것은 시리다. 서서 받는 느낌이다. 아프다. 때가 되면 우리 딸에게 몇배로 돌려 줄 참이다. 교회가 재정의 자립을 통하여 이웃을 향해 나눔의 사역에 조금이라도 동참하고 싶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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