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7시 사랑의교회 서초예배당에서 개최된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제9회 생명윤리 수기 공모 시상식에서 대상을 얻은 김순의 선생의 '기쁨이와 평안이'를 소개한다.
사춘기를 요란하게 보낸 아들이 뒤늦게 검정고시를 통과해 대학에 들어갔다. 질풍노도가 좀 자려나 했더니 여전히 밤낮을 거꾸로 살았다. 한번은 급하게 들어오더니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했다. "생일도 아닌데 웬 미역국? 누가 애 낳았냐?"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정말로 애기를 낳았단다. 친구가 사귄 여자가 출산을 했다는 것이다. 벌써 '기쁨'이라고 이름도 지었단다.
2학기 등록을 포기하고 그 돈으로 원룸을 얻었으니 필요한 살림살이도 준비해 달란다. 양쪽 부모 알면 안 되는 일이니 비밀을 지켜야한다는 것이다. 사정을 듣고 보니 거절할 수도 없어 시장으로 향했다. 냉장고와 가스레인지는 중고로 샀다며 간단하게 하라지만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큰 냄비 작은 냄비, 밥그릇 국그릇, 칼 도마, 큰 대야 작은 대야, 주걱 국자, 양념 통, 실 바늘...... 목욕탕에서 쓸 물건까지 챙기느라 한나절을 돌아다녔다.
큰 냄비에 미역국을, 작은 냄비에는 어묵 볶음을 담았다. 우선 먹을 밑반찬과 산모 먹을 나물도 무쳤다. 다락 속에 모아 둔 살림도구까지 챙겨 실려 보내고 나니 그 때야 피곤이 몰려왔다. '살다 살다 별 일을 다 해 보겠네.' 아픈 다리를 주무르면서도 꼼지락거릴 어린 것 생각에 마음은 흐뭇했다.
아들은 처음으로 본 신생아가 신기한 듯 틈만 나면 기쁨이를 보러 다녔다. "엄마! 오늘 기쁨이가 웃었어요. 진짜라니까요. 오늘은 기저귀 채우다 고추에서 오줌이 분수처럼 솟는 바람에 내 옷도 버렸어요. 어떻게 애기 방귀 소리가 그렇게 클 수가 있어요?" '어떤 녀석일까?' 매일 얘기를 듣다보니 살며시 기쁨이가 보고 싶어졌다.
아들은 내 속내를 읽었는지 기쁨이 사진을 가져왔다. 아이 키우느라 방에만 있는 기쁨이 엄마 바람 쐐준다고 시외로 나갔단다. 그런데 정작 그 부모는 연인들처럼 손잡고 다니고 우리 집 녀석이 아기 띠를 매고 있지 않는가. 교우들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 그렇다는 것이다. "야! 장가도 안 간 놈이 아이 안고 다니다 혼인 길 막힐라" 우스갯소리로 넘겼다. 그 집안 형편을 알고 있던 터라 그 상황이 이해가 되면서도 언제쯤 알려야 할지 걱정이었다.
사실 기쁨이 할아버지는 안면이 있는 목사님이시다. 몇 년 사이 두 배로 성장해 좋은 소문이 난 교회다. 그런데 지난여름에 큰 아픔을 겪었다. 필리핀으로 청년부 수련회를 갔다가 큰아들을 잃었다. 물에 빠진 친구를 보고 뛰어 들었다가 익사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칭찬을 달고 자라 일찍이 교사로, 찬양대로 섬기던 아이였다. 더구나 이번 방학에는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아들에게, 네가 가서 섬겨야지 무슨 소리냐며 데려 갔었다니,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목사라서 성도들 앞에서 티도 못 내고 숨 죽여 슬픔을 삭였을 것이다. 사택에는 불 꺼진 시간이 많고 식구들은 급격히 말 수가 줄었다고 한다.
집안이 그 지경인데 사고를 친 것이다. 제 딴엔 목사 아버지 체면 세워준다고, 기숙사에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막일을 하며 생활비를 댔다. 기쁨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뒤집고 앉고 서고...... 우연한 기회에 기쁨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쌍꺼풀 찐 눈이며 웃는 표정까지 할아버지를 쏙 빼 닮지 않았는가.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쉬쉬했는데도 말이 새고 말았다. 그런데 기막힌 시점에 터졌다. 큰아들의 1주기가 다가오자 어떻게 넘겨야 할지주변 사람들이 더 걱정하던 참이었다. 밖에서 손자가 크고 있다는 말을 들은 사모님이 단숨에 달려가 아이를 데려왔다. 아이를 본 목사님 얼굴에 1년 만에 웃음이 번졌다.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은 생명이 떠난 자리를 생명으로 채워주셨다. 그동안 안타깝고 조심스러워 위로의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한 성도들이 더 기뻐했단다. 자칫했으면 목사님 아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비방거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반대로 칭찬거리가 된 것이다. 기쁨이 아빠는, 성도들이 잘했다며 번갈아 등을 두드려주는 바람에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그 일도 아름답게 마무리해 주신 것이다.
기쁨이는 뒷짐 지고 걷는 할아버지 흉내를 내며 졸졸 따라 다닌단다. 녀석의 재롱에 집안에 웃음소리가 그칠 날이 없다니, 고 녀석 이름 값 한번 제대로 한다. 기쁨이 엄마 아빠는 결혼식을 마친 뒤 학생으로, 며느리로 제 자리를 찾았다. 기쁨이네 일은 그렇게 전화위복,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겨울이 되었다. 늘 지갑을 털어가던 아들 녀석이 공사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나다녔다. "추운데 뭔 일이래? 배낭여행이라도 갈 참이냐?" 물었더니 "돈 쓸 데가 있어서요." 했다. "그러니까 어디에 쓸 거냐고?" 하자 "아따 뭘 그리 꼬치꼬치 캐물으세요?" 하기에 그냥 넘어갔다. 하루는 저녁밥을 차려주며 무심코 말을 걸었다. "너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냐?" "그게 무슨 말인데요?" "대학생이라는 놈이 그것도 몰라? 말 그대로 남의 산에 있는 돌로 내 돌을 다듬는다는 뜻이야. 더 쉽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일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갑자기 왜 그 말을 하는 거냐고요?" "갑자기가 아니라 너는 기쁨이네 보면서 배운 게 없냐? 세상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거든. 학교 마치고 직장에 다니면서 준비를 한 다음에 결혼을 해야지 덜컥 아이부터 가지니까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리잖아. 친구를 보면서 잘 배웠을 테니 그 일은 걱정 안 해도 되겠지?" 했더니 순간, 도둑질 하다 들킨 사람처럼 흠칫했다. 표정이 아리송했지만 그 뜻을 알아들었으면 됐다 싶었다.
며칠 뒤, 녀석이 상담할 일이 있다며 음료수를 건넸다. 사연인즉슨, 또 다른 친구가 사고를 쳐서 임신을 시켰단다. 그 어머니는 바른생활 아줌마로 도저히 그런 일을 용납 못할 분이라서 임신중절 수술을 하려고 일을 다닌다는 것이다. "너희 친구들은 왜 다들 그 모양이라니? 힘들게 대학에 들어가서 그게 할 짓이냐?" 한마디 쏘아붙였다. 그랬더니 만약 입장 바꿔 엄마 일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게 질문이라고 하냐? 당연히 애를 낳아야지. 어찌됐건 생명은 하나님 소관이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런 다음 길게 부연 설명을 했다. "준비하고 계획해서 낳았으면 좋았겠지만 어쨌거나 생명이 잉태된 것은 축복이야. 책임질 일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어떻게 지들 맘대로 생명을 죽일 생각을 해? 간덩이가 부었지, 어떻게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할 수 있냐고?
너도 다른 사람들 같으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거다. 지금은 장려금까지 주면서 출산을 권하지만, 국가적으로 산아제한을 하던 때라 셋째는 의료보험 혜택도 안 주는데도 너를 낳았지 않냐? 우리 때에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서 잘 키우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표어가 곳곳에서 볼 수 있었어야. 우리 고향 면사무소 앞에는, 생긴 대로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플랜카드도 붙어 있었다니까. 배불러서 다니다 미개인 취급을 받으면서도 내게 태인 생명 어떻게 해 볼 생각은 꿈에도 안 해 봤다야. 낙태가 유행처럼 번져서 몇 집 건너 병원에 다니는 것이 일이었는데 나는 그런 일로 병원에 가 본 적 없어야. 산부인과 병원은 낙태 수술로 먹고 산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니까.
친구 누구야? 내가 그 집 부모 만나서 얘기 해 볼 테니까 성급한 행동 하지 말라고 해라." 그러자 녀석이 "대쪽 어머니께서 웬 일이세요? 남의 일이라고 상당히 너그럽네요? 알았어요. 친구에게 그렇게 말 할게요" 하며 나갔다.
평생 말씀을 듣다보니 가랑비에 옷 젖듯 예수님의 사상에 물들었나보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신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신 것은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다는 뜻 아니겠는가.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안식일도, 사람들의 비난도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결국 우리 위해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는가. 생명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떤 것과도 타협할 수 없을 만큼 단호하게 굳어버렸다.
그랬는데 보름 후 쯤 일이 터졌다. 지난 번 상담했던 주인공이 친구가 아니고 바로 지 놈이라는 것이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혀도 유분수지 어이없고 황당했다. 돌이켜 보니 수상쩍은 일도 많았는데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여자 친구가 임신했다는 걸 알고 수술비 마련하려고 일을 하러 다녔단다. 내 반응을 보려고 친구 핑계 대고 넌지시 떠 봤는데 아이를 낳아야한다는 말에 생각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동안 질서에 대해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일렀으니 이해 못 할 줄 알았던가 보다. 병원에 가려고 모은 돈으로 임신복도 사고 몸보신도 시켰다는 말을 들으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문득 타산지석에 대해 길게 설명했던 일이 생각나서 물었다. "야! 타산지석에 대해서 말 할 때 찔리지도 않던? 어떻게 그렇게 시치미 떼고 능청스럽게 듣고 있었냐?" "아따, 엄마가 느닷없이 그런 말을 하니까 뜨끔했죠. 무슨 눈치를 챈 줄 알고 놀랬다니까요." "에라 이 나쁜 놈아! 그 일이 그렇게 좋아 보여서 따라 했냐?"며 등짝을 세게 후려쳤다. 자칫 학생이 애 낳아서 어쩔 거냐고 함부로 말했더라면 어쩔 뻔 했는가. 뭐든 반듯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시원하게 답을 했을까? 자격증도 없으면서 상담 한번 끝내주게 잘 했다.
먼저 며느리 될 아가씨를 불렀다. "예쁘게 잘 컸네. 그런데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어떡해! 내 아들이지만 별로 맘에 안 들거든." 아들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첫 인사를 했다. 우선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칭찬을 해 줬다. 한 송이 꽃이 피는데도 소쩍새와 천둥이 울고 긴 날 무서리가 내리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잉태되기까지 무한한 섭리가 있었음을 얘기했다. 햇빛과 공기, 믿음이나 사랑처럼 가장 귀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데 자식도 그 중 하나라고, 이 세상에는 아이 못 가진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고, 아이 하나 낳는 것이 평생소원인 사람도 많다고, 이번 일이 네 인생에서 가장 탁월한 결정이 될 거라고 긴 설교를 했다.
그러고 나니 그 쪽 부모가 걱정되었다. 딸이 아이 가진 것을 알면 얼마나 놀랄까? 더구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분들이라 더 힘들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주님을 영접한 것은 이 때를 위함이 아니겠는가. 그 분들은 내가 품어야 할 또 하나의 생명으로 여겨졌다. 며칠 뒤 그 부모와 만났는데 염려했던 대로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잘 한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애를 낳기로 했다니까 우리가 받아주자고 사정했다. 예쁘게 키운 딸 넉넉하게 품어 주겠다며, 그 쪽에서 하자는 대로 따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배 불러오기 전에 결혼식을 하기로 하고 급하게 날을 잡았다. 평소 혼전순결을 강조하던 목사님께서도 사정을 알고 흔쾌히 주례를 서 주셨다. 주례사에는 사돈과 그 친척들을 향한 복음의 메시지도 들어 있었다. 철부지 부부를 몇 번씩 불러 부부가 지켜야 할 도리와, 좋은 부모 되기를 가르쳐 주셨다.
그렇게 며느리는 오월의 신부가 되어 우리 집으로 왔다. 학생 신랑을 만났으니 우선 함께 살기로 하고 신혼 방을 꾸몄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괜히 서러운 시집살이, 몸도 무거운데 얼마나 힘들까 싶어 부지런히 밥을 해 먹였다. 그렇게 달을 채워 건강한 손자를 봤다. 태명이 평안이었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집에 평화를 가져왔다. 장가가면 철난다더니 밖으로 돌던 아들이 부쩍 아빠다워졌다. 퇴직해서 무료하던 남편도 아이 씻기고 먹이고 베이비시터가 다 되었다. 아들이 직장을 갖게 되어 분가했는데 평안이는 친가 외가를 넘나들며 평화의 메신저 노릇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세뇌를 시켰더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할머니는 누구?" 하면 "생명의 은인"이요 한다. 그 뜻이 궁금했던지 "할머니! 그런데 생명의 은인이 뭐 야?" 하기에 아주 많이 고마운 사람이라고 해놓고 한바탕 웃었다.
기쁨이는 여덟 살로 학생이 되었고 평안이는 유치원에 다닌다. 나이는 한 살 차이인데 둘 사이엔 서열이 분명하다. 기쁨이는 평안이를 숫제 애기 취급이고 평안이는 깎듯이 형아라고 부른다. 며칠 전 바닷가에 바람 쐬러 나갔다가 아들 친구들을 만났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틈에서 기쁨이와 평안이도 뛰어다니고 있었다. 두 녀석 모두 속도위반 딱지를 달고 나와서인지 달리기도 잘 한다. '건강하게 자라서 평안과 기쁨의 씨앗을 온 누리에 뿌리거라.' 축복의 손을 모았다. 녀석들이 만들어 갈 미래가 가을 하늘처럼 높고 푸르러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