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윤근일 기자] 정부가 남북 고위급접촉이 사실상 무산됐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북한이 보수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강하게 주장해온 만큼 북한은 3인방(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의 깜짝 방남으로 기대됐던 남북 대화 분위기보다 대북전단 살포를 저지하는 데 관심이 있는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통일부 임병철 대변인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북한이 부당한 전제조건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며 "현재 정부가 별도의 대북조치를 할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임 대변인은 "북한이 어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통해 민간의 자율적 전단살포를 우리 정부가 비호·지원한다고 왜곡하고 이를 빌미로 남북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한 것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나아가 북한이 우리 대통령을 실명으로 비난하고 국민에 대해 처단 운운하는 것은 남북합의와 국제규범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언동"이라고 비판했다.
임 대변인은 그러면서 "정부는 우리 국민의 안전에 위해를 가하려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처할 것임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임 대변인은 그러나 '북한이 대화를 제의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에 "만약 그럴 경우에는 북한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절히 대응하겠다"며 "앞으로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이 개최될지 여부는 북한이 부당한 전제조건을 철회하는지 마는지 북한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답했다.
그는 또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모든 현안 문제를 대화의 장에서 협의 해결해 나간다는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다만 북한의 도발 위협이나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원칙에 따라 단호하고 일관되게 대처해 나가겠다"고 방침을 밝혔다.
앞서 북한 대남기구 조평통은 전날 성명에서 "우리의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삐라살포 망동을 제지하기는커녕 비호·두둔·조장하는 자들과 그 무슨 대화를 하고 북남관계개선을 논의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며 "남조선당국은 삐라살포망동이 계속되는 한 우리와 마주앉아 대화할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는 북한이 대북전단 뿌리기를 자국의 '최고존엄'을 위협하는 것으로 해석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공세를 편 것도 이와 관련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조평통은 "제반 사실은 남조선 삐라살포놀음의 주범은 괴뢰당국이며 그 배후주모자는 박근혜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며 "박근혜는 지난 시기 반공화국심리전에 이용해오던 애기봉 등탑을 아랫것들이 철거한 데 대해서도 뒤늦게 알고 야단법석함으로써 자기의 대결적 심보를 여지없이 드러냈다"고 했고 이에 정부 또한 강경기조로 급선회해 그동안 헌법논리로 내세워온 대응 수위를 높이며 '고위급 접촉 무산'을 선언했다.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겨졌던 고위급접촉이 이처럼 남북 최고권력자간 자존심 싸움 끝에 무산되면서 양측의 관계개선 의지와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한편으로는 북한으로부터 남북관계 경색 책임을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란 지적이다.